구태의연한 선거인단 모집방식과 모바일투표도 안 된다

여론조사는 말 그대로 조사(Research)이지 선거(Election)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갖고 있는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와 필리핀만 여론조사를 선거(경선)로 쓴다. 이는 세계인의 웃음거리다.

모바일(ARS) 투표는 세계에서 오로지 우리나라만 사용하는 선거 방식이다. 신분 확인이 정확하게 되지 않는다는 점과 비밀투표가 보장되지 않는 점, 그리고 투·개표 과정의 오류 발생 가능성 및 재검표를 원천적으로 할 수 없다는 점 등이 끊임없이 지적돼 왔지만 특정 정치세력의 정략적 목적 때문에 오히려 점점 확대돼왔다. 이 역시 세계 GDP비중 13위권 국가로선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민주통합당은 18대 대선을 3개월 보름 남겨둔 2012년 9월 4일 경선 선거인단 모집을 마감했다.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인단이 총 108만 5004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동으로 포함된 대의원·권리당원 등 20만 3000여명을 제외하면 일반시민은 88만여명에 불과했다.

당초 민주통합당이 목표로 세운 최소 150만명, 최대 200만명에 크게 못 미쳤으니 사실상 흥행에는 실패한 셈이다. 물론 같은 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모바일 경선투표를 위해 모집한 선거인단 46만 1419명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신장세이다.

전국 순회방식의 경선은 8월 25일부터 실시되었는데 첫 경선지인 제주에서는 총 선거인 3만 6329명 중 2만 102명(투표율 55.3%)이 참여한 가운데 1만 2023표(득표율 59.8%)를 획득한 문재인 후보의 압승이었다. 이 추세는 마지막 경선지인 서울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개표결과 최종 투표수는 61만 4571표, 투표율은 56.6%였다. 그나마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은 3만 2642명이 투표에 참여해 약 17%의 매우 저조한 참여율을 보였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신청한 일반국민 선거인단조차 간편한 투표방식(ARS 또는 현장투표)을 임의로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투표율은 65%를 넘지 못했다.

한편 국민경선의 원조는 미국이다. 그러나 당원이나 비당원을 구분하지 않고 일반국민에게 완전 개방하는 방식(Open Primary)과 등록된 당원 또는 사전 등록한 유권자만 투표할 수 있는 폐쇄형 방식(Closed Primary), 그리고 당원에게는 선거권을 자동 부여하고 비당원은 등록할 경우 선거권을 부여하는 방식인 반(半)폐쇄형 등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주로 사용하는 국민경선 방식은 반(半)폐쇄형이다.

당비 의무가 있는 진성당원 중심으로 정당을 운영해온 유럽에서 처음 국민경선을 도입한 건 2011년 프랑스 사회당이다. 사회당은 1995년 우파의 자크 시라크에게 패배한 이후 오랫동안 야당으로 머물러 있었다. 심지어 2002년에는 리오넬 죠스팽 前총리가 결선투표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마침내 사회당은 마지막 몸부림으로 미국 제도까지 역수입했다.

프랑스 사회당은 2011년 10월 16일 결선투표를 통해 프랑수아 올랑드 前당수를 대선후보로 선출했다. 4선 하원의원을 지내며 1997년부터 11년간 사회당을 이끌어온 그의 득표율은 56.5%였으며, 맞상대는 마르틴 오브리(女) 현직 당대표였다.

오브리는 2000년 조스팽 총리의 동거정부 시절 사회·노동부장관을 맡아 우파정당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주당 노동시간을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감축한, 우리나라에도 꽤 유명세를 탄 이른바 ‘오브리법’으로 유명하다.

1차 투표는 1주일 전인 10월 9일에 실시됐는데 총 6명이 출마했다. 올랑드(39%)가 1위, 오브리(31%)가 2위였지만 과반수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48세의 무명 신예 아르노 몽트부르 하원의원이 은행 국유화 및 유럽연합(EU) 확대 반대 등 가장 좌파적인 정책으로 17%를 획득하고 3위를 차지,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 2007년 사르코지와 대결했던 세골렌 후와얄 前대선후보는 겨우 7%의 득표율로 4위에 머물렀다. 결국 몽트부르의 공약을 수용한 올랑드가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배경이다.

3개월 남짓 동안 진행된 사회당의 경선 레이스는 국민의 폭발적인 관심 속에 진행됐다. 당초 100만명 정도 참여를 예상했으나 1차 투표 266만명, 2차 결선투표 286만명이 참여해 기획한 사회당은 자신들도 놀랐다. 오죽하면 사르코지의 대통령궁 관계자 입에서 “사회당 경선이 흥행에 성공했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그 이유는 1차경선 과정에서 3차례의 TV토론을 통해 국민의 주목을 받았고 2차 결선 때 또 한 번의 2시간짜리 TV 맞짱토론이 국민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마지막 토론을 시청한 사람들이 총 600만명이 넘는다는 르몽드誌 보도와 뜨거운 지지를 아끼지 않는 사설도 있었다.

또 하나는 선거인 명부에 올라있는 시민이면 누구에게나 “좌파 가치 헌장”(나는 좌파와 공화국의 가치를 신봉하고 자유, 평등, 박애, 정치와 종교의 분리, 정의 및 연대가 수반되는 진보의 사회를 신봉한다)에 서명하고 최소 1유로(1500원)의 참가비를 내면 완전히 개방된 선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도 ‘시민 예선’(Primaires Citoyennes)이라고 붙였다. 이 같은 이유로 전국 9500개 투표소에서 실시된 사회당 국민경선은 기다리는 줄이 어떤 곳은 30M까지 늘어섰다.

2014년 현재 사회당 당원수는 6만명으로 공화당(21만명)의 3.5분의 1 수준이다. 올랑드가 17년 만에 정권탈환에 성공한 건 바로 국민경선이 아니었다면 결코 불가능했다.

한편 2011년 사회당의 국민경선 성공을 보며 당시 여당인 대중운동연합의 코페 사무총장은 유권자 100 명 중에 겨우 4명이 참가한 꼴이라며 이를 평가 절하했다. 그렇지만 야당으로 전락한 대중운동연합은 당명도 공화당으로 바꾸고 결국은 국민경선 제도를 도입해야 했다.

지난해 8월 당수직을 사퇴하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니콜라 사르코지 前대통령을 시작으로 공화당은 본격적인 경선 국면에 들어갔다. 11월 20일 전국 1만 229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진행된 1차 경선은 7명이 출마한 가운데, 프랑수아 피용 前총리(44.1%), 알랭 쥐페 前총리(28.6%), 사르코지 前대통령(20.6%) 등 순으로 사르코지가 탈락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공화당 역시 “우파 가치 헌장”(나는 우파와 중도파의 공화적 가치를 공유하며 프랑스의 부흥을 위한 정권교체에 참여한다)에 서명을 하고 최소 2유로(약 1400원)의 참가비를 내면 비당원에게도 투표권을 개방했다.

그 결과 1차 투표에서는 430만명, 2차 결선투표는 무려 440만명이 공화당 후보 지지를 위해 투표소를 찾았다. 이는 당원수(21만명, 2015년 기준) 대비 20배가 넘는 숫자이다.

프랑스는 인구(6600만명)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지만 유권자는 큰 차이가 없어서 4600만명 남짓이다. 시민권이 없는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화당 경선에 참여한 유권자 비중이 무려 10% 가까이 되며 투표율(80%) 기준으로는 12% 가량 된다. 이는 본선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한동안 돌풍이 일던 피용의 기세도 꺾여버렸다. 의원 및 장관 시절 아내와 자녀를 보좌관으로 ‘위장 채용’(프랑스에서 친인척 채용은 합법이다)해 거액의 세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고 도덕적 지탄을 받고 있다.

그래서 극우 국민전선 마린 르펜이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고, 사회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중도를 표방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前경제장관이 무서운 상승세를 타며 피용은 결선 진출도 장담하지 못하게 됐다. 한편 올랑드 대통령의 경제실정 때문에 사회당은 아몬 前교육부장관을 후보로 내세우고 있으나 사실상 4위로 예선탈락 확정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진행하고 있는 경선은 완전국민경선이 아니다. 사전에 유권자를 동원, 등록하는 반(半)폐쇄형으로 본격적인 경선절차에 들어가 TV토론이 붙었을 때야 관심을 갖는 유권자는 참여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당한다.

추미애 대표가 언급했듯이 얼굴을 보지 않고 하는 투표라서 역(逆)선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민주당 선거관리위원회가 걱정하는 것처럼 5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경선 관리비용도 큰 문제다. 콜 센터 설치 및 그 운영비용부터 시작해서 모바일 투표와 현장투표 관리비용도 적지 않게 소요된다.

이러한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서 국민의당은 반드시 프랑스식 국민경선을 벤치마킹하기 바란다. 일부만 변형하면 된다. 1만개 정도의 투표소는 과도한 비용 발생이 수반되므로 시·군·구 1개소를 기준으로 창원시와 같은 덩치가 큰 시는 행정구 정도를 더하면 되고, 도서·산간·벽지 등도 투표 편의제공을 위해 일부만 추가하면 된다.

그래도 400개가 넘지 않을 것이다. 대신 프랑스처럼 투표일을 하루로 정할 것이 아니라 3~5일 정도로 해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여유 있게 투표할 수 있게 하면 될 것이다. 개표 또한 투표소에서 실시하여 투표함 이동에 따른 비용 절감과 부작용 방지 등의 부수효과를 얻을 것이다.

무명 정치인을 단숨에 전국적 인물로 만들어내는 국민경선. 그 반대로 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후보 및 전직 총리 등을 맥 못 추게 하는 국민경선은 각본이 없는 드라마와 같다.

민주당은 200만명 경선선거인단 모집을 목표로 하고 있다. 60% 투표율이라고 해도 겨우 120만명이다. 국민의당은 단숨에 150만명~200만명 투표 참여를 이끌어내기만 한다면 본선 승리는 따 놓은 당상 아닌가?

 

최 광 웅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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