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가 '역성장’의 기로에 서있다. 미국의 강력한 긴축 정책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심화 중인데,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변화 위기가 맞물려 에너지와 식량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중국의 도시봉쇄와 미·중 간 패권 다툼으로 글로벌 공급망 사슬도 흔들리고 있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간 패권 경쟁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어느 것 하나 가볍게 볼 수 없는 중요한 지구촌의 위협요인은 당장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심각한 점은 이런 외생변수들이 단기적으로 수그러들 조짐은 보이질 않고, 오히려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도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무역적자도 몇 달째 계속되고 있고, 주가도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칩4 반도체 동맹이나 사드 이슈는 제2의 요소수 사태를 불러올 위험성도 있고, 대중 무역적자 폭을 대폭 키울 가능성도 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윤 정부의 대응 자세다. 스태그플레이션 또는 경기침체로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강함에도 불구,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모두 발언이나 기자 질문에서도 경제위기라는 단어는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
모두 발언에서는 아직 세제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도록 법인세제를 정비하고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했습니다’라는 엉뚱한 표현도 등장한다. 중장기 국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의 하나다.
윤 대통령, 경제위기 인정...정면 돌파해야
지난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일 당시에도 복합 경제위기 우려가 제기되고 있었지만, 대통령 취임사에 경제위기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취임사 중 ‘도약과 빠른 성장만이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대기업이나 부자 감세 조치가 고속 성장을 담보해 줄 리도 만무하고, 낙수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로 굳은 지 오래됐건만 신자유주의가 윤석열 정부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화려하게 부활했다. ‘MB 정부 2’란 느낌이 강하다.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사를 낭독하던 중 "소득은 떨어지고 기업은 도산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땀과 눈물과......", 목이 메어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 후, "고통을 요구받고 있습니다."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당시 국민은 김 전 대통령의 눈물 어린 호소에 허리띠 졸라매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내남없이 엄청난 경제적 고통 속에서도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해 장롱 속 깊이 숨겨두었던 소중한 패물을 내다 팔았다. 민관이 하나가 된 움직임에 전 세계가 감동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보란 듯이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났다.
코로나 19와 맞물린 국내외 경제위기로 자영업자들은 IMF 시절보다 더 혹독한 고통을 겪고 있다. 오직 국민을 위한다는 정부라는 윤 대통령이 위기를 돌파하고자 하는 국민과 공감과 소통에 실패, 자칫 우리 경제가 깊은 수렁에 빠뜨리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IMF 때보다 힘든 코로나 19 '자영업'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자.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아 우리 경제는 퍼펙트스톰에 휘둘렸다. 살인적 수준의 고금리,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로 기업들은 줄도산 했고 실업자는 넘쳐났다. 하지만, 실업자들은 퇴직금으로 당장 시급한 호구지책은 해결할 수 있었고, 이 중 상당수는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1998년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은 28.2%로 역대 최고점을 찍었고, 2002년에는 자영업자 수가 621만 명까지 늘어나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IMF 위기 속에서 자영업자들의 매출은 급감했지만, 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이 없어 견딜만했다. 당시 정부는 자영업을 비롯한 가계 부채를 엄격하게 관리, 빚이 없거나 생업의 한계를 딛고, 죽사리길을 견뎌냈다.
백화점 무료버스가 운행돼 고객을 원격지로 뺏기는 문제는 있었지만, 요즘처럼 같은 상권에서 대형마트나 SSM, 또는, 복합쇼핑몰 등과의 직접적인 경쟁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는 이들을 최악으로 몰아갔다. 미증유의 국민 건강 우선의 강제 영업 제한이 시행되서다. 고행 2년 여 코로나 터널을 빠져나왔나 싶었는데,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 때문에 매출이 올라도 수지타산이 맞질 않는다. 아우성이 따로 없다. 폐업하자니 대출 원리금 일시 상환 압박이 무서워 쉽게 결행하기도 어렵다. 카드 돌려막기로 시시때때 돌아오는 원리금 상환을 충당해 보지만 도대체 탈출구가 보이질 않는다. 근심과 공포는 점점 더 커져만 가는데, 윤석열 정부는 취임 후 100일이 지났건만 근본적인 자영업자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23조 손실보전금 지급은 자영업자들에게는 단비였지만 임시방편. 일선 현장에서 형평성 논란은 끊이질 않는다.
자영업, 눈덩이 빚에 '벼랑길'
지난 8월 1일 배진교 정의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가계대출 및 기업대출 다중채무 현황’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개인사업자 중 금융사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는 41만4964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자영업자 차주 중 12.7%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들이 빌린 다중채무 금액은 195조원으로 전체 개인사업자 대출금액(688조원)의 약 30%에 달한다. 하지만, 실상은 밝혀진 수준보다 훨씬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지난 18일 금융권을 대상으로 ‘새출발기금’ 관련 설명회를 열고, 30조원 규모로 조성되는 기금으로 자영업자의 부실채권을 매입해 채무조정을 해주는 배드뱅크 역할을 할 것임을 밝혔다. 하지만, 형평성 논란이나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이 커 원만하게 진행될지는 의문이다. 국내 4대 소매은행은 상반기 9조 원의 순이익을 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정부의 금융권을 상대로 팔 비틀기 압박이 통할지도 의문이다.
민생 안정에 최우선을 두겠다는 윤 대통령에게 위기극복의 경제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를 둘러싼 비경제 정치인 '윤핵관'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윤 대통령 국정운영 부정평가의 가장 큰 요인은 시장이 죽어가는 데 있다. 침체 경기가 지지도를 급추락시키는 최대 변수의 하나다. 윤 대통령에게는 다행히도 시장주의 정통 경제관료 출신의 한덕수 총리가 곁에 있다. ‘우문현답’은 현장을 중시하는 한 총리의 철학이다.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하게 답’하는 사자성어, 우문현답(愚問賢答)’이 아닌,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문장 단어의 첫 자를 따온 말이다.
자영업 분야는 우리나라 전체 일자리의 4분의 1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700만 자영업자를 살리는 길, ‘우문현답’에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