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는 27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현 상황이 전세계적인 복합위기라고 했다.

정통관료 경제 수장의 현실태 진단은 맞다. 지금의 경제위기를 수출 활성화로 돌파, 우리 경제의 재도약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그의 대응책 제시도 옳다. 그러나 예측불허의 경제난국에 총체적 위기를 느끼는 국민은 그가 무능한 정치권에 끌려가면서 경제사령탑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지에 회의적이다. 

지난 6일 춘천 레고랜드 테마파크 주변부지 개발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GJC)가 부동산을 담보로 발행한 2050억원 상당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부도 처리됐다. 강원도가 사실상의 채무불이행을 선언하자 채권시장은 패닉상태에 빠져들었다. 한국전력이 발행한 한전채가 채권시장을 싹쓸이 하면서, 신용도가 높은 공기업이 8%대의 금리를 제시해도 시장에서 소화되지 않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극심한 자금경색으로 우량기업까지 줄도산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고조중이다.

강원도가 내년 1월 말까지 상환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어 추경호 부총리가 나서 “모든 지자체가 자산유동화증권(ABCP) 지급보증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주장했지만, 금융시장의 불안감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급기야 정부와 한국은행이 일요일인 지난 23일 은행회관에서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50조원+α’ 규모의 시장안정 조치를 발표했다. 이날 회의에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용 한은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그리고,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등이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출근길 기자와의 문답에서 "신속한 대규모 시장 안정화 조치를 오늘부터 신속하게 집행할 것"이고, "무엇보다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채권시장의 신용 붕괴로 야기된 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조짐이다.

강원도지사의 둔한 경제감각과 중앙정부와의 소통 부족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리고, 경제사령탑이 중장기 계획은 고사하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땜빵 처방에만 급급하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통제 불가능 외생변수의 위협

미국의 노동부는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2% 올랐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9천 건 늘어 총 22만8천 건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미국의 연준은 지난 3월부터 거의 0%에 가까웠던 기준금리를 3.00~3.25%까지 끌어올렸다. 이번에도 높은 물가를 잡기 위해 다음 달 초 열릴 예정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또 한 번 0.75%p 금리인상이라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것이란 관측이 강하다.

한국은행도 원달러 환율급등과 자본유출을 우려해 현재 3% 수준의 기준금리에서 상당 수준 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미국의 고금리 정책으로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극도의 혼란에 휩싸였고, 일본도 자본 유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많은 개발도상국은 사실상의 디폴트 상태에 빠져들었다.

중국의 부동산 시장은 침체상태에 빠져 지방정부의 재정위기설이 흘러나오고 있고, 일대일로 정책과 관련해 개발도상국에 제공한 1조 달러 상당의 차관자금이 사실상 회수 불능상태에 빠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은 과거에도 ‘달러는 미국 화폐지만, 문제는 당신들 나라의 것’이라는 극도의 자국 이기주의식 금리 인상 정책을 펼쳐 세계 각국의 경제를 위기로 몰고 간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의 미국의 고금리 정책은 과거보다 훨씬 독하다.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칩4 등의 반도체 공급망 정책과 첨단산업 자국 내 유치를 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까지 할 수 있는 조치는 총동원하고 있다.

이호연 스트레이트뉴스 선임기자
이호연 스트레이트뉴스 선임기자

우크라이나 전쟁과 각국의 자원 무기화 정책으로 곡물, 에너지, 그리고, 자원 가격 오름세도 만만치 않다. 고금리, 고환율, 그리고, 고물가 현상은 우리 경제에도 커다란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극도의 불확실성이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거시경제 변수 '위태 위태'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 무역적자폭이 늘어나고 기업은 유동성 위기로 신음하는 데 나라의 재정건정성도 악화일로다. 버팀목이 없는 우리 경제의 성장률 전망은 하향일로인 데다 하락폭마저 예측을 불허한다.

지난 10월 11일 IMF는 ‘세계 경제 전망’ 발표에서, 올해 세계 경제가 3.2% 성장하고, 내년에는 2.7%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앞선 예측치보다 추가 하향 조정됐다.

IMF는 올해 한국이 2.6% 성장하고, 내년에는 2.0%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7월 전망치에서 올해는 0.3%포인트 올리고, 내년은 0.1%포인트 내렸다. 내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율은 OECD가 2.2%, 피치가 1.9%, 한국은행이 2.1%로 전망했다.

낮은 성장률은 세수 부족으로 이어져 재정 건정성을 악화시킬 우려가 크고,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제한한다.

글로벌 달러화 강세, 소위 '킹달러'는 수출한국의 발목을 잡는 일대 변수다. 우리나라는 올해 9월까지 누적 300억 달러에 가까운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22년 무역수지 전망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올해 무역적자가 48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통계를 작성한 1964년 이후 연간 최대 규모이다.

반도체 수출은 미중간 고래 싸움에서 틈새를 찾기 어렵게 됐고, 석유 화학 제품 수출의 감소세도 여간해 반등할 조짐이 보이질 않는다. 시진핑 장기집권체제가 시작되면서 국진민퇴(國進民退)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는 중국의 소ㆍ부ㆍ장 국산화 정책도 우리에겐 악재다.

문제는 무역적자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중국의 성장세 둔화와 수출 감소로 대중 수출 감소는 장기간 이어질 것이고, 무역적자 규모도 현재보다 늘어날 위험성이 크다.

재정건정성 악화도 우리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취임 45일 만에 사임을 발표했다. 트러스 총리는 보수 진영의 ‘철의 여인’으로 불렸다. 그는 지난달 23일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 법인세 인상 철회를 중심으로 2027년까지 450억파운드(약 72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했다. 낙수이론을 신봉한 결과였지만, 영국 정부의 재정적자가 폭증할 것이라는 공포에 파운드화 가치와 영국 국채 가격이 폭락하는 등의 큰 혼란을 겪었다.

이건희 고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 2주기에 즈음, 삼성 측이 내건 추모 사진과 다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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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도 대기업과 부자 감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부동산 경기침체로 부동산 세수가 대폭 줄어들고, 수출과 내수 부진으로 법인세가 상당 수준 줄어들 위험성이 크다. 코로나 19가 수그러들면서 온라인 거래 활성화로 늘었던 부가가치세ㆍ소득세ㆍ법인세 감소도 예상된다.

경제사령탑은 영국과 우리나라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비슷한 상황이기에 걱정이 앞선다. 자칫 쌍둥이 적자가 현실화된다면 우리 경제엔 엄청난 위협요인이 될 전망이다.

금융 불안정으로 기업과 가계의 유동성 위기가 발등의 불이다. 지난 8월 기준 M2는 3744조여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0년 4월 처음으로 3천조원을 돌파한 뒤 점점 불어나고 있다. M2는 현금·요구불예금에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등에 들어 있는 돈을 합친 것으로 언제든지 현금화 가능한 유동성을 뜻한다.

하지만, 지난 8월 기준 '통화승수'는 14.0배로 전월의 13.6배보다 부진한 수준이 이어졌다. 통화승수란 광의통화(M2)를 본원통화로 나눈 값이다.

정부가 채권시장 경색을 풀기 위해 ‘50조원+α’의 자금을 추가로 시중에 공급하는 정책은 분명 기준금리 인상 정책과는 엇박자다. 정부나 한국은행 모두 금융안정을 위한 중장기 정책은 보이질 않고, 우선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땜빵 정책만 내놓고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기업금융 시장의 자금경색으로 멀쩡한 기업들까지 줄도산할 위험이 있다. 원리금 상환을 1년 연장한 자영업 대출도 뇌관이다. 부동산 시장 냉각으로 인한 프로젝트 파이낸싱, 저축은행의 주택담보 대출, 영끌족과 빚투족의 아파트 담보대출 부실화 위험성도 높다. 깡통전세도 커다란 위험 요인이다.

사실상 가계와 기업 밑바닥에 파산 리스크가 깊이 스며들어 있지만, 정부의 폭탄 돌리기 정책으로 타이밍이 조금 늦어졌을 뿐이다.

거대한 금융 쓰나미는 피할 수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자칫 적잖은 가계파산과 대규모 실업 사태로 이어진다면, 우리 경제는 나락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생을 외면한 정치권의 이전투구

민생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정치권의 이전투구는 그칠 줄 모르고 싸움의 기세는 더 세지고 있다.

죽기 살기로 머리를 짜내 대책을 마련해도 모자랄 판인데 안타깝기 짝이 없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둑이 터졌을 때 국민경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물고를 어느 방향으로 틀어야 할지의 대책이라도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

25일은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 2주기였다. 저승의 이 회장이 이승에서 일갈한 쓴소리, 그의 생전의 말이 시대를 넘어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회장은 외환위기 2년여 전인 1995년 4월 베이징 한국 특파원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솔직히 얘기하면 우리나라는 행정력은 3류, 정치력은 4류, 기업경쟁력은 2류로 보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대통령의 개혁의지에도 불구하고 행정규제와 권위의식이 없어지지 않는 한 21세기에 우리가 앞서 나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일침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대통령은 늘 국민만을 바라보겠다고 반복하고 있으나 주권재민의 통치철학을 몸으로 체감하는 국민은 드물다. 정치권은 막가파식 치킨게임 정쟁의 나날이며 검찰공화국에서 경제사령탑 은 무엇이 두려운지 복지부동이다.

사업보국의 선대 회장 유지를 받들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고 했던 고 이 회장은 유명을 달리했으나 그는 삼성을 지금의 글로벌 수위자리에 오르게 했다. 사실 대한민국을 세계 수출강국으로 도약케 하는 데는 경제관료의 힘이 컸다. 역설적이지만 3류가 없었다면 2류도 존재하지 않았다. 현재 우리나라는 돈맥경화로 산업과 경제가 위기다. 정치놀음에 빠진 4류에 눈치보지 말고 위민 본연의 자세로 오직 나라를 위해 실천궁행하는 경제 사령탑을 기대한다.

복합위기의 세계경제. 여기에 대한민국의 리더십 위기도 있다. 위기 돌파의 리더는 참모가 만든다.

[스트레이트뉴스 이호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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