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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물갈이가 최대의 혁신인가

 

김상곤 혁신호가 닻을 올렸다. 4.29 재보선에서 야당이 참패한지 두 달 반만의 일이다. 그동안 위원장으로 거론되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가 혁신위원으로 정식 참여하면서 그가 공개 제안한 4선 이상 중진 공천배제, 현역의원 교체율 40% 이상 실행 등 주로 호남물갈이론을 근간으로 하는 ‘육참골단(肉斬骨斷·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의 파격적인 쇄신책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김상곤 위원장은 이는 “조 교수의 개인 의견일 뿐"이라며 선을 긋고 나섰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맨 먼저 공개 비판에 나선 이는 광주의 박주선 의원이다. 그는 '호남 물갈이설'과 관련하여 "친노·운동권의 시각이 항상 호남을 구 정치세력으로 몰아야 본인들이 산다는 전략과 전술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호남 다선은 무조건 물갈이해야 한다고 하면 앞으로 호남은 중진 또는 경륜 있는 정치인이 나와 대선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도 봉쇄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과연 그의 말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일까? 현재 새정치연합 소속 현역 호남의원 28명 중 4선 이상은 김성곤 의원 단 1명에 불과하다. 이와 반대로 50%에 해당하는 14명(50%)이 초선이다. 그런데 호남 다음으로 당세 강세지역인 수도권과 비교하면 호남의 물갈이 실태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현재 수도권에는 65명의 소속 의원이 있는데 4선 이상이 무려 11명(16.9%)이다. 이와 반면 초선의원은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인 22명(33.8%)에 불과하다. 이 수치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그동안의 현역 교체가 주로 호남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과거 김대중 대통령도 야당 총재 시절 현역의원 물갈이를 제법 단행했다. 그의 필생의 목표는 오로지 정권교체였으므로 실력이 모자란 국회의원은 곁에 둘 필요가 없었다. 김 총재는 참신하다며 고르고 골라 영입한 초선일지라도 국정감사, 대정부질문 등 의정활동과 지역구관리 능력 등을 통해 검증이 완료되면 가차 없이 걸러냈다. 그는 14대 총선 때 민주당 텃밭인 호남에서 현역의원 37명 중 14명을 교체시켰다. 물갈이 비율은 37.8%이다. 본격적인 대권 4수 전초전으로 준비한 15대 총선에서는 호남 현역의원 34명 중 13명(38.2%)을 공천 탈락시킴으로써 비슷한 비율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김대중 총재는 의정활동 능력과 정치력을 갖춘 의원이라면 다선이든 고령이든 연속 공천을 보장했다. 15대 당선자의 경우, 5선의 김봉호 의원과 4선의 김태식·신기하 의원이 있었고, 3선도 김영진·김인곤·박상천·정균환·조홍규·채영석 의원 등 6명에 달했다. 이 중 광주대학교 이사장을 맡고 있던 김인곤 의원은 당시 만 67세였다. 이들 다선 의원 9명이 차지하는 비율은 호남의원의 무려 24.3%에 이르렀다.

 

한편 김대중 총재와 같은 전일적인 리더십이 사라진 최근의 총선에서는 어떤 공천혁신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정동영 대통령 후보가 530만 표로 대패한 직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은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대대적인 현역 물갈이를 단행했다. 특히 호남에서는 현역의원 31명 중 13명을 교체하여 무려 41.9%를 갈아치웠다. 오히려 김대중 총재 시절을 능가한 것이다. 그 결과, 이명박 대통령 취임 초 분위기와 뉴타운 공약 열풍에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다들 50석도 어렵다고 전망했지만, 그래도 81석이라는 원내 투쟁의 교두보를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이러한 호남 발 혁신공천의 성공으로 전패의 위기에 몰린 수도권에서 무려 26석이나 건져냈다. 그러나 ‘공천 특검’으로 불린 박재승 공천위원장의 손에 의해 결행된 호남 현역 물갈이의 부작용은 예상보다 크게 나타났다. 호남 의석 31석 중 6석을 무소속 당선자에게 내준 것이다. 이 같은 무소속의 대약진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민주당이 ‘혁신과 통합’과의 통합을 통해 치룬 19대 총선은 사상 최대의 호남 물갈이 비율을 보였다. 현역의원 29명 중 14명(48.3%)이 교체되어 여의도를 떠난 것이다. 그러나 원칙과 기준에 맞지 않는 현역의원 교체는 도리어 엉뚱한 곳에서 통합진보당 당선자 2명과 무소속 당선자 1명에게 의석을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처럼 18~19대 호남 현역의원 교체율은 무려 45%이다. 김대중 총재가 공천권을 행사했던 14~15대의 38%보다 7% 이상 높은 수치이다. 4선 이상 중진이 당선된 것은 14~15대에는 9명이었으나 18~19대에는 4명으로 대폭 감소하였으며 특히 19대는 단 1명뿐이다. 이처럼 늘어난 호남 물갈이와 중진 교체가 결국은 정권 탈환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호남 민심 이반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작년 7.30 재보선과 금년 4.29 재보선에서 비새정치연합 후보들이 연속 당선된 것도 그 연장선에 다름 아니다.

 

다선 의원은 용퇴해야 하는가

 

제 1야당은 18대 총선 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15명의 당대표(비대위원장 포함)가 바뀐다. 바야흐로 리더십의 위기가 초래한 것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그동안 경험 많고 능력이 검증된 다선 의원들을 용퇴시킨 결과도 한 몫 거든 결과이다. 이 당대표들 중에서는 정세균, 손학규, 한명숙, 이해찬, 김한길, 문재인 의원 등 모두 6명이 전당대회 경선을 거쳤다. 유일한 호남지역구 출신이었던 정세균 의원은 당시 4선 중진에 원내대표와 산업자원부장관을 역임한 경력을 바탕으로 2008년 7월 당대표에 선출됐다. 나머지 비호남 당대표 5인은 전부 4선 이상이거나 최소한 대통령후보 경선에 도전했던 인물들이다. 바로 박주선 의원이 언급한 “경륜 있는 정치인“에 속한 것이다. 박 의원의 주장처럼 다선 중진들이 대폭 물갈이된 호남은 놀랍게도 2008년 이후 선출직 당대표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외국의 사례에서도 다선 의원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2015년 현재 5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여성 앙겔라 메르켈. 그는 1990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15년 동안 당(기독교민주연합)과 정부에서 주요 직책을 맡아 경험을 쌓았으며 마침내 2005년 고대하던 독일 총리직에 올라 11년째 재임 중이다.

 

다선 의원이라고 하여 퇴진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거대 행정부를 상대로 해야 하는 야당 입장에서는 쉽게 용납하기 힘들다. 국회 예산 6천억원 대 정부 예산 380조원이 말해주듯 우리나라는 입법부와 행정부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처음부터 비대칭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게다가 제왕적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반을 겸하고 있고 강력한 검찰권과 감사원 등을 소속기관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능력과 경험이 많은 야당의 다선 의원들이 오히려 절대적으로 필요할 수 있다. 중요한 국정조사, 청문회, 입법, 표결 등에서는 의욕만 앞세운 서투른 초․재선들은 물론, 경륜과 노련미를 겸비한 다선 중진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할 때가 많이 있다.

 

지금 여의도 주변에는 전략공천 20~30% 설이 떠돌아다닌다. 도덕적 법적 하자가 있는 자의 공천배제 주장도 있다. 다분히 호남 중진 물갈이를 겨냥한 것으로 비쳐지며 일견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략공천 선거구의 선정을 지금까지와 같이 지도부의 자의가 아닌 무슨 원칙과 기준으로 할 것인가가 근본적인 문제이다. 또한 도덕적 법적 하자의 잣대는 무엇이고 이미 국민의 표로써 심판을 받은 현역의원의 경우에도 새롭게 적용을 받아야 할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따라서 과거 3김이 특정지역을 지배하던 시절에는 제왕적 총재가 의원들을 평가하여 공천했지만 이제는 초선이든 다선이든 당원과 국민들이 공정한 규칙에 의해 판단을 내리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과감하게 모든 공천권을 내려놓는 원칙을 세우고 백지에서 그려가는 일, 혁신위원회의 발상 전환을 기대한다.

 

최 광 웅

참여정부 청와대 인사제도비서관
민주당 조직사무부총장
현 데이터정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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