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용사들, 전략 포메이션 분주…패자부활전 준비
자신의 상황 맞는 위험 감내 정도 파악 후 시장 읽어야

 

최근 집행되고 있는 각 업권별 대표 사업자들의 퇴직연금 광고 시안 일부. (왼쪽부터) 미래에셋증권, 신한은행, 삼성생명(출처=각사)
최근 집행되고 있는 각 업권별 대표 사업자들의 퇴직연금 광고 시안 일부. (왼쪽부터) 미래에셋증권, 신한은행, 삼성생명(출처=각사)

지난 2일 고용노동부의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1차 상품 선정 발표에 이어 내달 2일 관련 상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연금가입자들로부터 선택을 받기 위한 본격적인 경쟁에 들어간 가운데, 연금 가입자 입장에서도 상품 위험 등급에 따라 장기 운용성과와 감내 가능한 위험도를 고려해 자신에게 맞는 선택을 위해 사전지식이 요구된다.

▲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마케팅 ‘후끈’

1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주요 퇴직연금사업자(은행, 증권, 보험)들은 고객들에게 내달 2일 시행되는 디폴트옵션 제도 안내를 위해 세미나, 이메일, 광고 등 전방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14일 퇴직연금디폴트옵션 관련 세미나를 진행했다. 올해 말일까지 비대면으로 개인형퇴직연금(IRP)에 신규 가입 또는 자동이체 하는 고객 대상으로는 이벤트를 통해 신세계상품권을 입금액 별로 차등 제공한다. 오는 22일에는 개인형IRP를 소개하는 유튜브 생방송을 진행 예정이다.

신한자산운용은 지난 15일 개인연금 및 퇴직연금 계좌에서도 투자가 가능한 월배당ETF ‘SOL 미국배당 다우존스(종목코드: 446720)’를 국내최초로 상장시키는 등 상품 공략에 나섰다. 투자자들에게 익숙해진 ETF상품에 즉시 수익 체감이 가능한 월배당컨셉을 더한 상품을 내놓는 전략이다.

KB국민은행도 오는 23일 디폴트옵션을 주제삼아 ‘KB연금 컨퍼런스’를 퇴직연금 실무 담당자 대상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주요 내용은 KB국민은행 디폴트옵션 상품 소개, 최근 시황점검, 디폴트옵션 도입을 위한 KB국민은행 지원사항 등이다.

▲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이 뭐길래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의 공식 명칭은 ‘사전지정운용제도’다.

우리나라 퇴직연금 제도는 지난 2005년 근로자의 수급권 보장과 기업의 일시금 지급 부담 해소를 목적으로 제정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하 근퇴법)을 근거로 도입된 퇴직급여체계다.

은행, 증권, 보험 등 각 업권 대표 사업자들이 시장에 뛰어들어 주요 회사 인사담당자들을 공략한 결과, 실제 가입자들의 의지와는 다르게 사업자가 선정되고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할 주요 재원의 운용에 대해 가입자들이 눈을 뜨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그 결과 작년까지 저금리 기저가 이어져 왔음에도 퇴직연금 적립금의 약 89%가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운용됐다. 물가상승률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운용으로 실질적인 노후대비 수단이 되지 못했다. 최근 5년 수익률은 1%대에 그친다. 은행과 보험업계가 경쟁력을 가진 원리금보장형 상품 중심으로 은퇴설계가 제안된 것도 한 이유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작년 12월 9일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제도가 도입됐다. 골자는 운용결과에 대해 근로자 스스로가 책임을 지는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퇴직연금제도(IRP)에 한해 일정기간(4주) 운용지시가 없을 경우 사전에 약속된 운용방법으로 운용 전환을 통지한다. 그후 별도의 지시가 추가 2주 동안 없을 시 사전에 약정된 방법으로 운용해 이른바 ‘권리위에 잠자는 자’도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상품 어떻게 선정됐나?

DC와 IRP 가입 근로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38개 퇴직연금사업자가 평균 5.8개씩 총 220개의 상품을 제안한 결과, 고용노동부의 심사에 통과한 상품은 165개로 총 75%에 그쳤다. 넷 중 하나는 탈락한 것이다.

상품군은 리스크 정도에 따라 초저위험(38개), 저위험(36개), 중위험(44개), 고위험(47개) 등 네 단계로 나뉜다. 당초 각각 38개, 60개, 62개, 60개가 신청된 상황을 감안하면 초저위험 상품은 모든 회사가 하나씩 제안한 결과대로 선정된 결과다. 다만 저위험 상품은 60개중 36개로 60%의 선정율을 보였고, 중위험은 62개 중 44개로 71%, 고위험 상품은 60개 중 47개로 83%가 선정됐다.

특정 사업자가 독식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고용노동부가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가령 퇴직연금 운용 핵심 상품인 TDF 시장에서 절반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가진 미래에셋자산운용 상품이 전체 상품 구성에서 압도적인 비율을 보였지만 관계사인 미래에셋증권은 증권업계 퇴직연금사업자 1위임에도 불구하고 165개 중 7개에 그쳤다. 처음부터 각 사업자가 선정될 수 있는 상품 개수가 최대 7개이기 때문에 생긴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절대 강자인 미래에셋자산운용에 이어 삼성자산, 한투운용, 한화자산, 키움자산 등이 시장을 안분했다. 특히 시장 내 점유율 대비 키움자산운용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같은 기준이면 조금이라도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하는 상품, 같은 목표수익률이라면 더 낮은 보수를 제시한 상품에 가점이 있었다”며, “성과가 좋아도 보수 때문에 배제되거나 계열 운용사 편입의 이유가 불분명한 경우도 탈락의 이유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년 초까지 최대 10개 정도의 상품을 추가로 승인할 수 있어 고용노동부, 금감원, 사업자로 구성된 상황반이 운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퇴직연금사업자는 “도입 초기인 만큼 모든 사업자가 수긍하는 결과를 내기가 고용노동부로서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더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다면 더 많은 보수를 요구할 수도 있는 것이고, 채택된 상품이 관계사 상품이라는 이유로 배제되는 역차별은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이야 가입자들이 운용 성과에 조금 관심이 높아졌지만 언제 또 다시 관심이 식을 지 모르는 상황에서 초기 시장 선점에 실패할 경우 판을 뒤집기 어렵다는 생각들이 많아 각 사업자 별로 총력전을 벌이는 양상”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 디폴트옵션 상품에는 뭐가 있나?

가장 리스크가 낮은 ‘초저위험’ 상품은 38개다. 정기예금과 이율보증혐 보험계약(GIC)로 구성돼 100% 원금이 보장되지만 수익률 개선이라는 디폴트옵션 도입의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 다만 본인의 나이와 상황에 따라 원금손실을 적극적으로 회피하는 근로자에겐 적합하다.

그 다음 단계인 ‘저위험’ 상품은 36개다. 사업자간 가장 치열한 경쟁을 뚫은 상품들이다. 기본적으로 예금을 절반 이상 넣고 나머지를 TDF 등의 상품으로 알파 수익을 추구한다.

좀더 적극적인 ‘중위험’ 상품은 44개다. 누구나 가입할 수 없고 투자자성향 분석 결과 최소 위험중립형 이상 적극투자형과 공격투자형까지 가입 가능한 상품이다. 이 상품군에선 정기예금 비중이 대폭 낮춰진다.

마지막으로 가장 공격적인 ‘고위험’ 상품은 47개다. 투자자성향 맨 윗단계인 ‘공격투자형’ 고객만 가입 가능하다. 정기예금 비중 20% 이하의 상품이다.

같은 상품군 내에서도 평소 운용을 잘해왔던 회사인지, 이른바 트렉레코드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이른바 글라이드 패스라는 방식을 통해 나이가 들수록 주식의 비중을 줄이고 채권의 비중이 높게 설정된 TDF들이 많은데, 이것이 자신의 성향이나 자산상황에 비추어 적합한지 따져봐야 한다.

한 운용사 마케팅본부장은 “ETF나 ETN에 익숙한 투자자라면 이들에 분산투자하는 EMP펀드가 담긴 상품도 고려해 볼만 하다”며, “바스켓 효과가 좀더 있는 만큼 포트폴이오 분산이 잘돼 장기 운용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 퇴직연금마케팅 위해 전열 가다듬는 금융업계

이번 디폴트옵션 상품 선정의 최대 승리자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조직변경을 통해 연금마케팅 조직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이미 약 45%의 TDF 시장 점유율을 가진 만큼 추격을 허용하지 않고 격차를 벌이려는 움직임이다.

지난 16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ETF마케팅부문 대표였던 권오성 대표와 투자솔루션부문 대표였던 권오성 대표가 자리를 맞바꾸는 인사를 단행했다. 각 부문간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성장을 이끌어내는 전통적인 미래에셋 방식이다.

후속 인사에선 기존 마케팅전략부 소속 자원들이 WM연금마케팅부문 강화에 동원될 거라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TDF, TIF, TRF 등 주요 연금펀드의 마케팅을 담당해온 WM연금마케팅부문에 조직이 힘을 실어줄 거라는 예상이 나온다.

국내 최초이지만 공식적으로 미래에셋이 TDF를 선보인 것은 5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른바 ‘라이프사이클 펀드’라는 이름을 달고 연금상품을 운용해온 역사는 이미 20년 가까이 된다. 이른바 “100에서 자신의 나이를 뺀 만큼 주식형 상품에 투자하라”는 논리로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가 전국민 대상 투자강의를 해온 결과가 상품으로 결실을 맺었다.

한화자산운용도 최근 퇴직연금 사업 강화의 고삐를 잔뜩 죄고 있다.

한화생명이라는 국내 굴지의 보험사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연금 시장에서의 존재감이 약했던 한화생명으로선 이번 디폴트옵션 상품 선정 결과에 고무된 상태다.

최영진 한화자산운용 전무는 지난 17일 JP모건과 공동으로 진행한 시장전망 기자간담회에서 “한화 Lifeplus TDF는 최근 디폴트옵션에 투자 가능한 1차 상품 승인 절차에서 타 운용사들과의 경쟁을 뚫고 모든 빈티지(2020, 2025, 2030, 2035, 2040, 2045, 2050)가 승인을 얻어내 자사의 TDF 경쟁력을 입증했다”며, “포트폴리오 승인개수로 전체 운용사 중 빅3에 드는 성적”이라고 강조했다.

한화자산운용은 이달 초 조직 개편에서 연금 자산배분과 상품을 제공하는 ‘솔루션운용팀’을 본부로 격상시켰다. 또 영업과 마케팅을 담당하는 채널연금마케팅본부도 신설해 힘을 실어줬다.

최영진 전무는 경영전략본부장과 디지털전략본부장을 거쳐 이달 채널연금마케팅본부장까지 핵심 부서를 연이어 맡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TDF를 위시한 연금사업이 향후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향후 관련 조직 강화가 추가로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한자산운용은 상대적으로 TDF시장에서 뒤쳐졌지만 조재민 사장 영입 이후 빠르게 성장을 이어오며 이번 상품 선정에서도 선전해 후속으로 TDF 보수를 인하하며 마케팅에 힘을 주고 있다. 장기 상품인 만큼 미세한 보수 조정에도 장기 성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부분을 강조한다.

신한자산운용은 최근 ‘신한마음편한TDF’ 라인업의 모든 디폴트옵션(C-O) 클래스에 대해 판매보수 0.05%p 인하를 결정했다. 미래에셋 이외엔 주요 운용사가 일찌감치 보수 인하를 단행한 상황에서 보수 인하에 신중한 모습을 보여왔던 신한이지만 본격 마케팅 경쟁에 동참하게 됐다.

한 증권사 퇴직연금본부장은 “업계 내에서의 경쟁은 치열하지만 막상 고객들의 반응이 어떨지 조바심이 나는 상황”이라며, “당장 1금융권 예금 이자율이 연 5%를 돌파한 상황이고 장기 불황이 점쳐지는 분위기라 그동안도 방치해온 퇴직연금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방향으로 투자자 마음이 돌아설 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초기 시장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 다음은 없다는 각오로 각 사가 임하고 있다”며, “가뜩이나 내년 증권사들의 먹거리가 사라진 상황에서 연금시장 확대에 거는 내부 기대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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