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이 높은 생산비용, 강한 정부 규제, 미중 갈등으로 인한 공급망 불황 등으로 흔들리면서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다. 이에 국내 기업들이 '탈(脫)중국'을 가속화, 중국을 대신해 다른 나라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데 그 대체지가 바로 '인도'다.
지난해 인도는 과거 자국을 식민통치했던 영국을 제치고 세계 5위(2022년 명목 GDP 기준)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지난달 초 모건스탠리와 S&P글로벌은 인도가 10년 안에 일본·독일을 제치고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에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한 올해(2023년)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6.1%에 달한다. 전 세계 전망치가 2.7%인데다 주요국인 미국과 중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각 1.0%, 4.4%인 점을 감안하면 크게 높은 수준이다.
아울러 유엔(UN)은 올해 4월을 기점으로 인도 인구가 중국을 추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인도 인구가 올해 14억2800만명으로 중국(14억2600만명)을 추월해 세계 1위가 되고, 이어 2063년엔 17억 명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에 인도는 제2의 중국으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됐다. 현재 인도는 거대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가는 한편 인구 평균 나이는 28세로 소비 잠재력도 크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은 "중국은 계속되는 부양책에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성장 잠재력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며 "성장에 목마른 글로벌 투자자의 눈길은 점차 인도로 향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인도 정부가 생산시설을 자국으로 옮기는 외국 기업에 생산 연계 인센티브와 세제 혜택을 주는 등 FDI(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에 적극적인 점도 경제성장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도의 FDI 규모는 2018~2019년 620억 달러(약 79조4964억원)에서 2021~2022년 848억3500만 달러(약 108조7754억원)로 크게 늘었다. 인도의 GDP 중 제조업 비중은 현재 15.6%에서 2031년 21%로 높아질 거란 관측도 나온다.
또 인도 경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도 거의 받지 않았다.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를 저렴하게 사들일 수 있는데, 이 점이 물가 상승 압력을 낮췄다.
인도가 탈중국 에 나선 글로벌 주요 기업의 대체 생산기지로 부상하고 있는 이유다. 앞서 미국의 애플은 진작 지난해 인도에서 주력 제품인 아이폰14 일부를 조립하기 시작했으며, 2025년까지 아이폰 생산시설의 25%를 중국에서 인도로 옮긴다는 계획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의 TSMC도 인도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기업들의 발걸음도 더욱 분주해졌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의 대인도 수출은 188억8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21% 뛰었으며, 한국의 무역흑자국 순위에서 인도는 4위에 올라서다. 이에 삼성전자는 물론 현대자동차그룹, LG전자 등은 세계 5위 경제 대국 반열에 올라선 인도를 적극 공략하고자 나섰다.
인도 최대 쇼핑몰 플립카드(Flipkart)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F04를 지난 4일(현지시간)부터 팔기 시작했다. 해당 제품은 삼성전자가 주력으로 하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은 아니지만, 올해 삼성전자의 첫 스마트폰을 인도에서 출시하게 된 것으로 의미를 갖는다.
삼성전자는 인도 시장에 공들이고 있다. 인도 스마트폰 출하량은 지난해 1억6900만대로 단일 국가로는 중국(3억2300만대)에 이은 2위 시장인데다 스마트폰 보급률은 61%여서 성장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평이다.
현재 삼성전자의 인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샤오미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2분기 기준 삼성전자 시장점유율은 15%대로 샤오미(30%대)에 크게 벌어졌지만, 다음 분기부터는 그 격차가 크게 줄었다. 시장조사업체 캐널라이즈(Canalys)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3분기 인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18%로, 샤오미(21%)와 격차를 3%p까지 줄였다.
삼성전자는 인도 스마트폰 시장 1위 탈환을 위해 지난해 말 정기 임원인사에서 박종범 부사장을 인도법인 대표 겸 서남아총괄로 선임하기도 했다.
또 삼성전자는 LG전자와 함께 TV 등 가전에서도 인도 시장에 적극적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인도 가전제품 시장 규모가 2018년 109억3000만달러에서 2025년 210억3800만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전 세계 TV 시장이 수요 부진으로 침체에 빠졌지만 인도는 여전히 호황으로, 향후 전망도 밝다. 인도 시장조사업체 넷스크라이브(Netscribes)는 인도 TV 시장 규모가 2021년 130억8000만 달러에서 2027년에는 207억 달러로 연평균 8.54%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인도 가전시장에서 샤오미와 삼성전자·LG전자가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LG전자는 올해 초 인도 TV 시장 점유율을 30%대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LG전자는 인도 가정용 에어콘 시장에서 1위를 달리는 등 가전부문에서 인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지난해 인도에서 처음으로 80만대 이상 판매고를 기록했다. 인도가 미국, 한국에 이어 현대차그룹의 세 번째로 큰 시장이 된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인도에서 총 80만7067대를 판매, 전년(68만6616대) 대비 17.5%나 성장했다.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55만2511대, 25만4556대를 팔았다.
기아의 경우 지난 2019년 4만5226대, 2020년 14만505대, 2021년 18만1583대에 이어 2022년에는 25만4556대를 판매하면서 성장세가 눈에 띈다. 이 같은 급성장에 큰 역할을 한 차량은 소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인 '셀토스'로, 2019년 출시 이후 지난해 11월까지 60만대 이상이 판매됐다. 기아의 인도 판매량 중 60%가량을 차지하는 수준이다.
다만 인도 시장이 더욱 크게 성장하려면 극복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종교와 그에 따른 신분제도 등으로 인한 정치 불안이 가장 큰 문제다. 인구수와 성장 잠재력만을 믿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크다.
글로벌 컨설팅그룹인 지옌(Z/Yen)은 매년 3월과 9월에 국제금융센터지수(GFCI)를 발표하는데, 인도 수도 델리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금융허브 뭄바이는 지난해 9월 세계 70위로 같은해 3월 대비 20위가 하락한 바 있다. 2021년 3월 65위에서 50위까지 상승한 이후 오히려 역성장한 것이다.
금융전문가들은 향후 글로벌 경제 거점이 된 인도의 뭄바이가 싱가포르·홍콩·상하이·서울·도쿄를 넘어 아시아·태평양 금융허브로 발돋움하려면 정치적으로 힌두 민족주의 정당의 득세, 실용주의 외교 노선으로 우방국 부족, 중앙 정부의 지방 통제력 약화 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치적으로나 주변국들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다양한 정치 세력의 공존을 통해 국민 단결, 합리적인 다자외교 전략을 수립해 우방국 확대, 중앙 정부의 리더십 강화 등을 이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힌두교도가 인구의 다수를 점유하지만 무슬림 등과 협력해야 관련 종교를 믿는 주변국들과도 신뢰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소속된 인도국민당(BJP)이 대표적인 힌두 극우정당으로, 힌두교도가 인구의 80%를 차지하고 있는데 극우 정치인이 무슬림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감을 부추겨 폭동 사태로 치달은 사례도 적지 않다.
또 경제적으로 보면 아직까지는 제조업보다 농업·광업의 높은 비중, 낙후된 금융시스템으로 자본시장 침체, 높은 실업률과 종교에 따른 낮은 여성 취업률 등도 경제 성장을 막는 장애물로 꼽힌다. 인도 정부는 1947년 공식적으로 카스트제도를 폐지한다고 발표했지만 여전히 수백 개로 분류된 신분이 유지되고 있다.
인도가 카스트제도 완전 철폐 통한 평등 사회 구현, 종교 등 다양성을 허용해 사회 갈등 해소 등도 국민 화합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제대로된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을 전망이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