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걷는 교보생명 VS 어피너티(FI)…중간에서 만날까?
펀드 만기 다가오는 FI, 교보생명 솔루션에 ‘숙고중’
오래 전부터 검토되던 교보생명 지주사체제 전환 카드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왔습니다. 주주로 참여한 재무적투자자(FI) 어피너티 컨소시엄(이하, 어피너티)과의 소모적 다툼을 끝낼 회심의 카드가 될지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 여정은 꽃길이 되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16일 교보생명에 따르면, 회사측은 지난 9일 정기 이사회에서 금융지주사 설립 추진 안건보고를 마쳤습니다. 골자는 교보그룹에서 실질적인 지주회사 역할을 해온 교보생명의 인적분할을 통해 교보생명 자회사 주식과 현금 등을 분할해 지주사를 만들고 기존 주주에게 지주사 신주를 준다는 계획입니다.
인적분할은 지주회사를 만들 때 자주 동원되는 방법입니다. 최근 몇 년사이 유행해온 물적분할은 사업부를 떼어내 자회사로 만들어 그 지분을 기존 회사가 지배하는 형식이지만, 인적분할은 회사를 두개로 쪼개되 기존 주주들이 보유 지분 비율대로 양쪽 회사 모두의 지분을 갖게 됩니다.
물적분할시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 주주들의 주식을 사주는 매수청구권이 발생해 자금력이 없이는 진행이 어렵지만, 인적분할은 그런 이슈에서 자유롭습니다. 다만 분할 후 두 회사간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어떤 비율로 나눌지가 관건입니다.
교보생명은 지주사를 만든 후 지주사 신주를 기존 주주에게 주고 교보금융지주(가칭)의 자회사로 편입시킨다는 계획입니다. 이때 지주사의 유상증자를 통해 신주를 발행해 납입금을 대신해 교보생명 주식을 현물로 출자 받는다는 시나리오 입니다. 최대주주인 신창재 회장(지분율 33.78%)은 본인 소유의 교보생명 주식을 지주사에 내놓는 대신 유증에서 나오는 신주를 받아 지주회사를 지배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신창재 회장-지주회사-사업회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입니다.
교보생명이 이런 구조를 생각하게 된 건 이른바 재무적투자자(FI)인 어피너티와의 분쟁을 끝내고 FI의 투자금회수를 위한 출구(Exit) 마련이 목적입니다.
어피너티의 교보생명 지분 인수는 지난 2012년 이뤄졌습니다. 사모펀드의 목적이 경영권을 인수해 기업가치를 높여 되파는 경우도 있지만, 오너가 명확히 있는 교보생명의 지분 24%를 1조2054억원(1주당 24만5000원)에 인수했을 때는 더 높은 가격에 투자금 회수를 기대한 투자였을 것입니다.
정확히 정해진건 아니지만 인수 후 이미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이는 통상의 PEF 투자기간을 훨씬 상회하는 시간입니다. 목돈을 투자하고 기업가치가 계속 오르고 있다면 다른 이야기지만, 그간 교보생명의 가치는 크게 오르지 않았고, 법적 공방을 벌이며 지출한 각종 법률비용과 홍보전에 가용된 유무형의 비용을 생각하면 투자자로서도 부담스런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양측 공방은 2012년 투자 후 2015년 9월까지 상장(IPO)를 추진하되 상장 실패시 신창재 회장이 투자지분 24%를 되사오는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을 계약 조건에 넣은 것에서 시작됩니다.
2015년 상장 추진은 시장 침체로 무산, 2018년 재상장 추진 과정에서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는 어피너티가 풋옵션을 행사하며 전쟁은 불이 붙습니다.
어피너티는 회계법인 딜로이트안진을 통해 산정한 적정 주가 40만9912원에 지분을 되사갈 것을 요구했으나 조 단위의 돈을 마련할 수 없는 신 회장 측이 반발하며 양측은 법적 공방을 이어갑니다.
풋옵션 실행에 꼭 응해야 하는지를 따지기 위해 2019년 3월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 신청을 했으나 “풋옵션 자체는 유효, 제시한 가격에 응할 의무는 없음”이라는 해석의 논란을 낳을 판결이 나온 상태에서 어피너티는 2차 중재 재판부 구성에 나선 상태입니다.
작년에 다시 시도한 IPO는 거래소 상장 승인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주요 주주간 법적 공방을 해결하고 오라는게 거래소측 거절의 사유였습니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조치입니다.
교보생명 측이 어피너티와 회계법인 딜로이트안진과의 공모를 통한 부당한 풋옵션 주가 산정을 주장했지만 최근 증거 불충분으로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 판단이 나와 대법원으로 공이 넘어갔습니다. 통상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어지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에 교보생명 측에서는 여기에 기대를 걸기도 난망합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 카드입니다.
교보생명이 보유중인 자회사는 대표적으로 교보증권(73.06%), 교보악사자산운용(50%), 그 밖에 100% 자회사인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 교보자산신탁, 교보리얼코, 케이씨에이손해사정, 교보정보통신, 교보문고 등입니다.
얼추 다양한 라인업으로 보입니다만 실상 교보증권 정도를 제외하면 크게 수익을 내기가 어려운 회사들입니다. 판매, IT 등 교보생명 비즈니스를 서포트하기 위한 계열사들입니다.
지주회사로 전환하려는 이유는 회사의 가치를 높여 주주로 참여한 어피너티에게 더 높은 수익을 안겨줄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를 위해선 기존 라인업에 추가적인 사업을 붙여야 합니다. 생명보험업 자체가 고전하는 상황에서 업종의 유사성을 고려 손해보험사 인수도 검토되지만 교보생명의 상황이 오픈된 상황에서 얼마나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인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지주사 움직임에 어피너티가 어떤 반응을 내놓을 지가 관심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가격에 풋옵션을 실행하기엔 신창재 회장이 가진 자산이 부족하다는 것을 어피너티측도 모르지 않습니다. 엑시트하지 않으면 답이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노력하는 교보생명의 손길을 뿌리칠 명분도 딱히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국엔 가격의 문제입니다. 그간의 기회비용, 고통에 대한 위로금으로 얼마를 손에 넣을 수 있어야 어피너티가 마음을 움직일지가 관건입니다. 더 높은 가치를 위해선 향후 지주회사 체제에서 교보가 만들어낼 M&A의 매직이 중요합니다.
물론 금융당국이 업계 최초의 생명보험지주회사를 승인해 준다는 전제 하에.
끝이 정해진 듯 보이는 싸움이지만 앞으로 남은 여정도 넘어서야 할 고비가 많기에 꽃길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