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주식 증권사 예수금·평가액 1년새 30% 늘어
환차익 및 평가익 일석이조 노려…휴가는 일본으로

지난 15일 서울 명동 환전소 모습. 매수기준 100엔 당 900원을 가리킨다.(출처=연합뉴스)
지난 15일 서울 명동 환전소 모습. 매수기준 100엔 당 900원을 가리킨다.(출처=연합뉴스)

엔화가치가 급락하며 일본증시가 급등하자 주식 시세차익과 환차익을 동시에 노리고 일본 주식에 뛰어드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여기에 한국 대비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를 찾는 일본여행객도 급증해 일본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일본 주식 과열, 과도한 엔화 투자에 대해 주의를 경고하고 있다.

지난 16일 기준 원/앤 환율은 장중 100엔당 901.72까지 떨어지다 소폭 반등 905.59원으로 마감했다. 전 거래일 대비 2.95원(-0.32%) 하락한 것으로 900원 붕괴를 목전에 둔 상황이다.

원/엔 환율에서 100엔당 900원 붕괴는 약 8년 전인 지난 2015년 이후 한 차례도 없었다. 2015년 6월 12일 당시 원/엔 환율은 최저 885.11원을 기록한 바 있다. 원/엔 환율은 코로나19 한국 상륙 시점인 지난 2020년 3월 20일 1191.34원을 기록한 이후 지속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엔저현상은 지난 2013년부터 본격 도입된 이른바 ‘아베노믹스’에 따른 확장적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결과다. 쉽게 말해 시중에 돈을 풀어 소비를 촉진하고 기준금리는 낮은 수준으로 유지해 기업의 부담은 낮추고 개인 소비와 투자는 장려하는 정책이다. 다만 이를 위해 정부는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안아야 한다.

정책의 성공 여부는 좀더 지켜봐야 알 일이지만, 주가지수(니케이225)가 33년만에 최고 기록을 넘어서고 코로나19 엔데믹을 맞아 한국과 같은 주변국들의 관광객을 흡수하는 등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인다는데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고 있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자기자본 4조원 이상 대형 증권사 9곳 중 키움증권을 제외한 8곳에 예치된 엔화 예수금은 약 5조원에 육박하는 4조946억2000만원으로 작년 6월 말(3조1916억원) 대비 28.3%, 지난 1월말(3조4924억5000만원) 대비 17.2% 증가했다.

국내 투자자들의 일본주식에 대한 관심 급증은 역대급 엔저 현상과 일본 증시 강세가 맞물린 결과로 관측된다.

닛케이225지수는 지난 14일 종가 3만3502.42로 33년 만의 최고 기록을 세워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되기 전 거품 경제 시기로 분류되는 1990년 7월 이후 처음으로 3만3000선을 뛰어넘어 16일 종가 3만3706.08을 기록했다. 올 들어서만 30% 이상의 무서운 상승세다.

주가의 상승은 엔저 현상과 상호작용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원/엔 환율은 지난 15일 오후 장중 100엔 당 906.20원으로 2015년 6월 26일(905.40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5월 국내 투자자들이 일본 주식을 순매수한 규모는 총 3441만7000달러다. 6월 들어서도 15일까지 이미 1851만3600달러를 순매수해 전월의 매수 규모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5월 국내 투자자의 일본 주식 매수 건수는 7757건으로 올 들어 4월까지 월간 평균 5625건의 1.5배를 넘어섰다. 이달도 절반이 지난 상황에서 이미 5900여건에 달해 증가세는 이어지고 있다. 주요 투자 종목으로는 글로벌 엑스 일본 반도체ETF, 소니그룹, 아식스, 미쓰비시상사 등 일본이 과거 영광을 누리다 시장에서 밀려났으나 다시 살아나는 섹터에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과도한 단기 상승에 따른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NH투자증권 김채윤 연구원은 "일본 주식시장은 외국인 투자자 매매 비율이 70% 수준으로 높아, 외국인 순매수가 계속되다가 순매도로 돌아서면 시세의 전환점이 되기 쉽다"면서 "더욱이 최근 일본 주식은 '버블 붕괴' 이후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는 상황이라 이익 확정이나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오기 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인천공항을 빠져나가는 일본행 관광객들(출처=연합뉴스)
지난 12일 인천공항을 빠져나가는 일본행 관광객들(출처=연합뉴스)

하지만 한국인들의 일본 시장에 대한 관심은 쉽게 누그러질 기세가 아니다.

특히 한일 외교관계 해빙 무드 속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 등 일본 영화가 극장가에서 성공을 거두는 등 반일 감정이 누그러드는 가운데, 엔저로 여행객들의 호주머니가 가벼워지자 여행 등을 위한 환전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약 5배에 이르는 실정이다.

지난 5월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5월 엔화 매도액(원화를 받고 엔화를 내준 금액)은 301억6700만엔(한화 약 2732억원)으로 전년 동월(62억8500만엔) 대비 4.8배 수준을 기록, 4월(228억3900만엔) 대비로도 3분의 1 가량이나 증가했다.

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 관련 방역 조치 해제로 일본 여행이 급증하면서 관련 엔화 수요가 늘어난 데다, 엔저(엔화 가치 하락) 현상이 심해지면서 당장 쓸 일은 없어도 미리 바꿔두고 환차익을 기대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여행 수요 뿐 아니라 환차익을 기대하는 엔화 예금도 급속히 늘고 있다.

4대 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6978억5900만엔에서 이달 15일 현재 8109억7400만엔으로 보름만에 약16% 급증했다. 만약 6월 하순에도 같은 속도로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올 6월말 잔액은 9240억8900만엔으로 전년 6월 잔액(5862억3000만엔) 대비 57.6% 상승을 기록하게 된다. 다만 이 중에는 무역 결제 수요를 위한 기업 예금도 포함된 수치이나 개인 자금 비중도 적지 않다.

하지만 기업들처럼 헷지 수단이 아닌 단순 시세차익을 위한 투자 매력은 높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엔화를 '안전자산' 관점에서 투자할 수는 있지만, 앞으로 엔화 강세를 노리고 투자하는 것은 장기 투자자 관점에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며 "투자 자산 가운데 너무 큰 비중을 엔화에 투자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오히려 각국 기준금리가 정점을 향해가는 가운데 금리가 높은 단기채와 시세차익이 큰 장기채를 분산해 투자하는 이른바 바벨 채권투자 전략도 유효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일본 주식 투자는 과열된 상황에서 추가적인 상승 여력은 작고 환율은 꺽일 경우 자칫 이중고를 겪을 수 있다는 조언이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금리 인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달러 약세에 일본 엔화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나타내겠지만, 다른 통화들에 비해 달러 대비 강세가 높은 수준은 아니다"라며 "엔화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시각"이라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연방기금금리)를 5.00∼5.25%로 동결하면서 시장에서는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분석과 함께 올해 말 또는 내년 초에는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는 기대감에 따라 채권투자가 유효하다는 분석이 많다.

박형중 우리은행 투자상품전략부 애널리스트도 "높은 이자를 원하는 투자자라면 단기물 채권, 향후 금리 하락을 염두에 둔 투자자라면 장기물 채권을 추천한다"며 "고금리 수익을 노릴 수 있는 채권 단기물과 가격 차익이 큰 장기물을 함께 가져가는 바벨전략도 고려할 만하다"고 전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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