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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더딘 가운데 대기업들이 경영전략회의를 잇따라 열고 대책에 나섰다. 연합뉴스

재계가 경제위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1분기까지만 하더라도 하반기에는 대내외 경기 상황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2분기를 지나도 위기가 여전, 하반기까지 경기침체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예상보다 회복이 지연되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분기를 마무리하는 가운데 하반기 대비 상황을 점검하고 경영 전략을 새로 세우는 등 위기관리에 나섰다.

최근 삼성전자와 LG그룹, SK그룹 등 대기업들이 불확실한 경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회의를 잇따라 열었다.

이들은 미·중 갈등 등으로 인한 대내외적 변수와 전반적인 수요 침체 상황 등에 따른 생존 전략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기존 열악한 사업을 정리하는 대신 신사업 분야를 더욱 확대·개선하고, 무엇보다 수익성 확보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다.

먼저 LG그룹은 구광모 회장의 주재로 지난달 전략보고회를 열고 주요 계열사들의 전자 및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사업 전략을 점검했다. LG그룹은 상반기에는 핵심 사업의 투자와 운영전략을 논의하는 전략보고회를, 하반기에는 사업 성과 평가 및 다음해 계획을 수립하는 사업보고회를 진행한다.

올해 상반기 회의에서는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전장(자동차 전기·전자장비)사업에 대한 투자 전략이 중점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함께 성장할 미래 부품 수요에 대비해 선제적 투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LG전자 VS사업본부를 중심으로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 전자 계열사들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와 함께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사업 투자 계획도 논의됐다. 차세대 배터리의 필요성이 대두되는데 따라 오는 2026년까지 연구개발(R&D)에 48조원(국내 전체 투자액 106조원)을 들이고, 주력사업과 미래사업에 동시에 투자한다는 전략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전략보고회에서 "예상보다 경기회복이 지연되는 흐름이지만 선제 투자를 통해 그룹 경쟁력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LG화학의 경우 수익성이 악화된 사업 정리를 진행 중이다. 지난 9일 체외진단용 의료기기사업부를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PE)에 매각하는 것을 시작으로 사업 효율화 추진에 나섰다. 노국래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장은 지난 19일 사업부 임직원들에게 메일을 통해 구조적인 체질 개선을 위해 지금 진행하고 있는 수익 개선 방안을 넘어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메일에서 노 본부장은 "장기 가동 중지, 사업 철수, 지분매각, 합작법인(JV) 설립 등을 통해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이에 따른 인력 재배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LG화학은 현재 이차전지 소재·친환경 소재·혁신 신약을 새 먹거리로 내세우고 있다.

SK그룹은 지난 15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최태원 회장 주재로 하반기 확대경영회의를 개최했다. 최 회장을 비롯해 최재원 수석부회장, 조대식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추형욱 SK E&S 사장, 지동섭 SK온 사장, 유영상 SK텔레콤 사장 등 주요 계열사 경영진들이 대거 참석했다.

SK하이닉스와 SK온 등 반도체·배터리 사업이 부진을 겪고 있어 이 둘을 중심으로 회의가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전기차 시장 확대로 배터리 사업이 각광받고 있으나 SK온은 여전히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SK온은 최근까지 대규모 투자자금 확보를 통해 8조원대에 달하는 현금을 확보하고 있고, 미국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수혜도 기대를 높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수요가 높아지면서 덩달아 주목받고 있는 고대역폭 메모리 HBM을 중심으로 수익성 증가를 꾀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HBM3를 생산하고 있는 반도체 업체는 SK하이닉스가 유일하다.

수소사업 등 신사업은 보다 개선해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SK그룹은 2020년 말 그룹 내에 수소사업 전담조직인 '수소사업추진단'을 신설, 추형욱 SK E&S 사장이 이를 이끌고 있다. 오는 2025년까지 수소사업 규모를 35조원대로 키워 미래 먹거리로 삼겠다는 전략을 세운 바 있다.

그러나 수소사업에서 제대로 된 실적이 나오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해외 기업들과의 합작 등을 통해 대규모 생산설비 및 양산을 준비 중이나 관련 규정 및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사업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욱 투자 확대를 통해 사업화를 빠르게 추진하겠다는 전략이다.

최태원 SK 회장은 "글로벌 시장은 하나의 시장이 아닌 다양한 변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시장이 됐다"며 "SK 관계사별로 대응에 나서기 보다 그룹 차원에서 미국·중국·유럽·일본 등 글로벌 시장별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20일부터 22일까지 국내외 임원급 230여 명이 모이는 '2023년 하반기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었다. 삼성전자 전략회의는 매해 6월과 12월에 개최되는데, 6월에는 전반적인 경영 실무 상황 등을 점검하고 12월에는 연간 실적 점검과 내년 경영 계획을 세운다.

올해 6월 전략회의에서는 한종희 부회장이 이끄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이 수원 사업장에서 20일 모바일경험(MX) 사업부를 시작으로 21일 영상디스플레이(VD)·가전 사업부, 22일 전사 등의 순으로 사흘 동안 회의를 한다. 경계현 사장이 이끄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화성 사업장에서 20일 회의를 진행했다.

삼성전자는 특히 반도체 한파가 길어지는 만큼 스마트폰 사업에 방점을 찍은 분위기다. MX사업부는 7월 말 서울에서 열리는 갤럭시제트(Z) 폴드5·플립5 공개 행사를 앞두고 제품 가격 및 마케팅 전략을 논의했다. 업계에서는 전작 출하량을 근거로 이번 삼성의 폴더블폰 신작 판매 목표를 1000만대 이상(폴드5 200만대, 플립5 800만대)으로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반도체 한파에도 대비한다. 삼성전자는 HBM 생산라인을 증설할 전망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차세대 HBM 제품으로 추정되는 상표권 3개를 특허청에 연달아 출원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출원한 '스노우볼트(Snowbolt)'는 이달 13일 출원공고됐으며, 지난달 추가 출원한 '샤인볼트(Shinebolt)'와 '플레임볼트(Flamebolt)'는 특허청 심사를 받는 중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오는 7월 서울 양재동 사옥에서 해외법인장 회의를 연다. 현재 한국에서 제조해 수출되는 현대차·기아 전기차가 미국 IRA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보조금 혜택을 늘리기 위한 대응책 등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그룹 역시 오는 7월 신동빈 회장 주재로 VCM(Value Creation Meeting)를 열고 하반기 경영전략을 도모할 예정이다. 롯데그룹은 VCM을 매년 1월과 7월에 걸쳐 두 번 진행하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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