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가 새 먹거리로 바이오항공유 사업에 속속 진출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사업 추진 발판 마련이 늦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재 정유사들이 바이오항공유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등 사각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 항공유로 불리는 바이오항공유(SAF)는 폐식용유 등 폐기물을 원료로 재활용해 생산한 항공유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하고 있다. SAF를 사용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일반 항공유에 비해 최대 80%까지 적게 배출되는 장점이 있어 탄소중립의 대안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기는 전세계 탄소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3.5% 정도지만 현존하는 이동수단 중 탄소 배출량은 가장 많아 문제가 되고 있다.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 자료에 따르면 사람 1명 기준 1km 이동시 탄소 배출량은 버스 105g, 중형차(디젤) 171g, 중형차(가솔린) 비행기(단거리) 255g으로, 비행기가 압도적이다. 게다가 무게가 무거울수록 탄소 배출량이 더 많아지고 높은 고도에서 탄소를 배출해 지구온난화에 더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에 전 세계적으로 SAF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EU는 오는 2025년까지 기존 항공유에 SAF를 최소 2% 이상 섞어 운항하는 '리퓨얼 EU' 법안을 지난 4월 통과시키며 SAF 사용을 의무화했다. 이어 2030년 6%, 2035년 20%, 2050년 70%로 점차 혼합 비율을 높일 예정이다.
미국 역시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옥수수, 사탕수수 등을 활용한 친환경 석유대체연료의 보급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시행하면서 올해부터 내년까지 현지에서 SAF를 혼합·급유하는 기업에 1갤런(3.78ℓ)당 1.25~1.75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 IHS마킷은 2020년 0%에 그쳤던 항공부문의 바이오연료 의존도가 2030년 17.1%, 2050년 77.1%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역시 전 세계 SAF 수요량이 2025년 80억t에서 2050년 4490억t으로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같은 분위기에 국내 정유업계도 SAF의 수요 급증을 기대하며 미래 성장동력으로 낙점, 정유4사를 중심으로 시장 진출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GS칼텍스는 지난 6월 대한항공과 '바이오항공유 실증 추진 업무협약(MOU)'을 체결, 국내 최초로 SAF를 도입해 대한항공에 공급하게 됐다. 대한항공은 SAF 실증사업을 진행 중이다. 또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함께 인도네시아에 바이오 디젤 공장을 설립하고 있는 중으로, 양사는 인도네시아 디젤 공장을 중심으로 바이오 항공유 등 차세대 바이오 연료 사업에 협력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국내 정유사 최초로 바이오연료에 대한 국제 친환경 제품 인증인 'ISCC EU'도 취득했다. 원료 수급부터 SAF 제품의 구매와 판매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해 환경 영향과 지속가능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오는 2027년까지 울산콤플렉스(CLX)에 SAF 생산을 위한 공장을 신설할 방침으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앞서 지난해에는 미국 펄크럼에 260억원을 투자한 뒤 생활 폐기물을 활용한 합성 원유 생산을 진행하고 있다. 자회사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도 지난해 미국 SAF 전문기업인 인피니움에 투자한 바 있다.
지난 2021년 대한항공과 'SAF 제조 및 사용 기반 조성 협력을 위한 협약'을 맺고 SAF 개발에 착수하면서 가장 먼저 사업에 뛰어든 HD현대오일뱅크는 충남 서산 대산공장의 1만㎡ 부지에 연산 13만t 규모의 차세대 바이오디젤 제조 공장을 연내 준공 목표로 조성 중이다. 이어 내년에는 대산공장 내 일부 설비를 수소화 식물성 오일(HVO) 생산설비로 전환해 SAF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S-Oil(에쓰오일)은 지난 2021년 삼성물산과 친환경 수소 및 바이오 연료 파트너십 협약을 체결한 후 관련 사업을 적극 전개 중이다. 양사는 바이오 디젤과 항공유 등 차세대 바이오 연료 사업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해외 인프라를 활용한 원료 공급망 구축 및 생산 등에 협력할 예정이다.
그러나 국내 정유업계의 발빠른 사업 진출과는 대조적으로 사업과 관련한 법적 근거 마련과 정부의 지원이 더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유사들이 보다 빠르게 바이오 연료 사업을 뻗어나가기 위해서 속도감있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행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석유사업법)에서는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해 '석유 제품'을 제조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으며 바이오디젤, 바이오중유, 바이오가스, 바이오에탄올 등만 바이오 연료로 명시하고 있다.
즉 SAF는 석유대체연료에도 포함돼 있지 않으며 정유사가 원유가 아닌 폐식용류 등으로 SAF를 생산하는 것이 불법인 상황이다. SAF를 석유대체연료로 규정하고 정유사가 원유 대신 친환경 대체원료를 투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정부는 친환경 바이오연료 확대 방안을 본격화하는 등 최근에야 변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바이오연료 원료 공급업계와 생산업계 간 상생 생태계 구축 등 실증을 거쳐 오는 2026년 SAF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대규모 친환경 바이오연료 통합형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연구용역을 통해 현행 석유사업법 개정작업 착수 및 오는 2024년 예비타당성조사 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국회에서는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SAF의 도입 확대를 위한 석유사업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상태다.
정유사들에게 세제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SAF가 기존 항공유보다 2~5배 가량 가격이 비싸고 아직 판매 활로가 많지 않아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만큼 사업 정착을 위해 초기 지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의 경우 바이오연료 생산·보급 시 세금 혜택을 비롯해 대출, 보조금 등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초기 단계로 관련한 연구개발이 더욱 진행돼야 하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SAF 도입이 빨라지고 있고 정유업계를 향한 친환경 요구가 높아지는 만큼 법적 근거 마련과 여러 지원을 통해 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