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긴급 현장점검 예고…은행별 대출 규제·심사 적정성 살펴
은행 스스로 50년만기 중단·연령제한…"DSR 산정방식 변경 가능성"
가계대출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가운데, 주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50년 만기 초장기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이 8월에만 5대 은행에서 2조원 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여파로 전체 주담대 잔액 역시 5000억원 불어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세도 5개월째 이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국은 우선 5대 은행을 상대로 긴급 가계대출 현황 점검에 착수, 다음 달까지 현장에서 직접 대출 규제나 심사 등의 적정성을 집중 살핀다는 입장이다.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우회한다는 지적 속세 DSR 산출 기준 변경 가능성도 제기된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24일 현재 679조4612억원으로 집계됐다. 7월 말(679조2208억원) 대비 2403억원 또 증가했다.
특히 주담대의 경우 같은 기간 4840억원이나 증가해 잔액이 513조3716억원으로 늘었다.
전체 은행권과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도 4월 이후 8월까지 5개월 연속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달 은행권과 금융권 가계대출은 각 6조원, 5조4000억원 불었다.
최근 가계대출 증가는 주로 50년 만기 주담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5대 은행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4일 현재 2조8867억원으로 7월 말(8657억원) 대비 2조210억원이나 급증했다.
지난 13일 50년 만기 초장기 상품이 가계대출 재증가의 주 원인으로 지목돼 '연령 제한' 가능성이 거론되자 13일 이후 1조1000억원 가까이 늘어 연령 제한 조치 전에 가입해야 한다는 심리가 오히려 대출 증가 속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은 원리금을 50년에 걸쳐 상환할 수 있는 대출 상품으로, 지난 1월 수협은행이 첫 출시 후 5대 은행이 연이어 내놨다.
만기가 길어질수록 대출자가 갚아야 할 전체 원리금은 늘어나지만, 1년 동안 값아야 할 원리금이 연간 소득의 40%로 제한되는 DSR이 1년 단위로 소득 대비 원리금 감당 능력을 보기 때문에 대출자는 전체 대출 한도를 늘릴 수 있어 ‘지렛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당국이 50년 만기 주담대를 'DSR 우회 수단'으로 지목한 이유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자, 감독 당국은 은행 상대로 '가계대출 취급실태 종합점검'에 나선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5대 은행에 보낸 공문에 따르면, 금감원은 3명의 감사인원(은행감독국 2명·은행검사국 1명)을 각 은행에 파견해 ▲대출 규제 준수 여부 ▲담보 가치 평가·소득 심사 등 여신심사 적정성 ▲가계대출 영업전략·관리체계 ▲고정금리·분할 상환 방식 등 질적 구조 개선 관리 현황 ▲가계대출 관련 IT(정보기술) 시스템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는 방침이다.
이 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최근 가계대출 급증의 원인을 확인하고 그에 따른 처방(지침)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점검은 하나은행(8월 24∼29일)을 시작으로 다음 달에는 KB국민은행(4∼7일), 우리은행 (11∼14일), 신한은행(18∼21일), NH농협(19∼22일) 순으로 나흘씩 진행될 예정이다.
이후로는 10월께까지 최근 주담대가 크게 늘어난 인터넷은행 등에 대한 점검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게 업계 관측이다.
한 시중은행 "통상적 가계대출만을 주제로 감사 때도 아닌데 이렇게 며칠씩 당국의 현장 점검을 받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점검 결과 뭔가 지침이 나올 수 있지만, 그보다 현장 점검 자체로 은행들에 가계대출을 자제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연합회를 통한 가계대출 자율 규제 논의나 당국의 관련 지침 등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개별 은행은 눈치보기에 나서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당초 25일 은행연합회에서 시중은행들과 금융당국 관계자와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과 DSR 등을 주제로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돌연 회의가 연기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에 직접적으로 50년 만기 판매를 멈춰야 하는지, 연령제한을 둬야 하는지 문의했는데, 당국 관계자는 '아직 그럴 필요는 없고, 기다려보라'고만 답했다"며, "지침이 나오기 전까지는 일단 현행 기준대로 50년 만기 상품을 판매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상태"라고 전했다.
일부 은행은 자체적으로 속속 50년 만기 주담대 판매를 중단하거나 연령 제한을 두고 있다.
수협은행은 지난 24일부터 '만 34세 이하' 대출자에만 50년 만기 주담대를 내주고 있고, 대구은행도 이달 중 같은 기준의 연령 제한을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뱅크 역시 25일부터 50년 만기 상품에 '만 34세 이하'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농협은행은 '2조원 한도 소진'을 이유로 이달 31일까지만 50년 만기 상품을 팔기로 결정했고, 경남은행도 28일부터 같은 상품의 판매를 중단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당국이 50년 만기와 같은 초장기 대출상품의 DSR 산출 방식 자체를 바꿀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실제 만기는 50년을 유지하지만, 대출 한도를 늘리는 수단으로 악용할 수 없도록 DSR 산출 과정에서는 만기를 30년이나 40년으로 간주해 대출 한도를 계산하는 방법이 제시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5일(현지시각) 미 연방준비제도(Fed) 파월 의장이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연례 경제 심포지엄에서 "필요시 금리를 올릴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며 매파적 기조를 전하면서도 ‘신중하게(Carefully)’라는 단어를 사용해 상대적으로 덜 매파적이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다만 일각에서는 연준이 최근 미 국채금리 상승의 배경이 된 '더 높은 금리를 더 오래' 기조를 재확인한 것과 관련, 내년 경기 둔화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내년 금리 인하에 대한 힌트가 없어 내년 장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질 거라는 시각이다.
T.로 프라이스의 마이크 슈얼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이번 연설로 연착륙 가능성이 작아졌다"면서 "금융환경에 균열이 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긴축 기조를 장기화 할 경우 이에 따른 국내 대출 차주들의 부담도 커지는 상황에서 당국이 50년 만기 대출 상품에 대해 어떤 해법을 내놓을 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