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증가 우려에 기업대출 경쟁 치열…좀비기업 속출
급증하는 기업 단기차입금…빚으로 빚 메워 ‘위기 전이’ 우려
고금리 장기화 분위기에 대표 장기 채권인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5%를 넘나들며 국내 채권시장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국감에서도 금융당국 수장들이 가계부채 비율의 심각성을 이유로 질문공세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당국이 은행들로 하여금 가계대출 수도꼭지를 잠그려 하자 은행들은 기업대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경제 침체기에 부실 가능성 커지는 기업대출 확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마이클 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감독 담당 부의장이 연내 대형 은행 대상 스트레스 테스트 시나리오를 추가로 개발해 내년부터 적용할 계획임을 밝혔다.
스트레스테스트란 경제의 외적 요인이 변할 경우 금융기관이 얼마나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측정하는 건전성 검사다. 최근 금리가 고공행진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등 경제상황이 더 나빠질 경우에 대비해 은행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추가 테스트를 진행하겠다는 뜻이다.
우리보다 경제상황이 낫다고 여겨지는 미국에서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나오는 가운데, 우리 은행들의 건전성에는 문제가 없는지 체크해볼 필요성이 대두된다.
한국은행은 가계대출과 관련해 정부의 시각과 궤를 함께 하면서도 한은이 금리조정을 통해 가계대출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피력, 한발 물러서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19일 이창용 한은 총재는 당일 금통위에서 금리를 3.50%에 동결하는 결정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금리를 통해 가계부채를 조정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나 가계부채 조정을 위해서는 금리를 크게 올리거나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며, “가계부채 문제는 곧 부동산 문제이고, 정부의 미시적인 정책이 우선이고 금리조정은 그 다음순서”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올해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주담대 상품을 통해 부동산 가격 반등과 이에 따른 가계대출 급증의 책임론에 시달리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최근 만기가 돌아오는 100조원 규모의 예금 재유치를 위해 과도한 경쟁을 지양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예금금리의 상승은 결과적으로 코픽스지수를 자극하고 이것에 다시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예대마진이 핵심 비즈니스인 은행들이 수신(예적금) 확대를 자제하면서 조달을 하기 위해선 은행채를 발행해야 하지만, 신용도가 좋은 은행들이 채권을 찍어대면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채권시장에서 불가능해지는 딜레마에 빠진다. 기업 실적이 나빠져 주가가 연일 급락하는 상황에서 직접금융을 위한 유상증자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은행들 입장에서 가계대출이 막히면 기업금융에 매달리는 건 수순이다.
올 들어 지난 9월말까지 5대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756조3310억원으로 작년 말(703조6745억원) 대비 52조6565억원 순증했다.
하지만 이렇게 늘어나는 기업대출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위험성도 커지고 있다.
9월 말 한은이 내놓은 금융안전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한계기업(3903개) 중 장기존속한계기업은 903개(23.1%)로 이들의 차입금은 50.5조원 규모다. 한계기업이란 벌어들인 영업이익이 빌려온 돈에 대한 이자보다 작은 상태가 3년간 유지된 기업을 말한다. 장기존속한계기업은 그 기간이 5년 이상된 기업이다.
한계기업은 이른바 ‘좀비기업’이라고 불린다. 금융, 즉 자금의 공급은 생산성이 높은 기업에 이뤄져야 더 많은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데 존재할수록 부실이 커지는 기업들이 명맥만 유지하기 때문에 전체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역기능을 수행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은은 보고서를 통해 이들 장기존속한계기업이 빚을 갚기 위해 더 큰 빚을 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이들에 대한 구조조정시 자산규모 및 산업 등에 따른 특징과 회생가능성을 종합 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경고했다.
기업들의 상환 능력에 대한 의심은 기업들이 1년내에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 규모 추이를 보면 더 커진다.
최근 한은이 내놓은 자금순환표에 따르면, 기업(금융법인 제외)의 단기차입금이 상반기말 기준 601조831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564조2279억원) 대비 약 40조원 가까이 늘었다. 1년 전인 작년 6월말(534조2301억원) 대비 약 70조원 가까운 급증이다.
단기차입금 구성은 1년 미만 만기 대출과 단기채다.
대출금 규모는 543조6262억원, 채권은 58조2048억원 수준이다. 앞서 언급했듯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빚을 내야 하는 차환발행이 원활히 이뤄지고 기업의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는다면 그 부실이 은행 등 금융기관이나 투자자에게 전이되지 않는다. 다만 고금리 상황이 장기화 및 악화되고, 기업의 실적은 내려가고 채권 차환발행이 시장의 수급상 어려워지게 되면 누구도 그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상반기 말 기준 채권과 대출금 총액 2561조9920억원 대비 단기차입금 601조8310원의 비중은 약 23.49%다.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8년말 23.89%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현재 미 10년물 국채 금리가 당시 수준에 수렴해 가는 것과 비교하면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 주요 금융지주들은 연초 실적설명회에서 “대손충당금 적립 수준이 충분하냐?”는 질문에 “금융위기 수준에 준하는 강도의 스트레스테스트를 이겨낼 만큼 충분히 적립해두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로부터 3분기 넘게 시간이 지났고 부실채권에 대해 상각과 매각을 거듭하고 있지만 건전성 지표가 충분한 지 확인하는 것은 다음주 실적발표에서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4일 가장 선방한 실적을 보일 것으로 기대되는 KB금융을 시작으로 27일까지 주요 금융지주의 실적 발표가 이어진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