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회장, '서든 데스' 일침에 그룹 내 긴장감 팽배
반도체·배터리 주춤하지만 '승부 전략' 가속페달
재계 2위 SK그룹이 올해 들어 힘든 모습이 역력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반도체 업황이 크게 악화되면서 1년 가까이 적자를 보고 있는데다 배터리 사업도 아직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내년에도 두 사업의 앞길에 장애물이 예견되자, 이런 위기 속에서 최태원 회장의 경영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8일 SK그룹 등에 따르면 최 회장은 최근 최고경영자(CEO) 회의에서 "급격한 대내외 환경 변화로 인해 앞으로 빠르게, 확실히 변화하지 않으면 '서든 데스'할 수 있다"며 그룹에 경각심을 일깨웠다.
최 회장이 '서든 데스(돌연사)'라는 단어를 꺼내든 건 2016년 6월 확대경영회의 이후 7년 만이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해 그룹 계열사 대부분이 올해 실적이 저조한 가운데 지금이 정말로 큰 위기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로 풀이된다.
올해는 SK하이닉스 인수 후 처음으로 반도체 업황이 바닥을 치고 정유·석유화학 등 에너지 사업도 유가에 따라 흔들리고 있으며 연내 흑자 전환이 기대됐던 배터리 사업도 주춤하고 있다.
특히 전쟁 등 대내외적 상황으로 전반적인 산업들의 회복 시점도 늦춰지고 있는 시점에서, 올해로 취임 25주년을 맞은 최 회장이 큰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SK그룹이 현재 겪고 있는 위기는 미래 SK그룹의 핵심 축이 될 사업들인 만큼,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최 회장이 비전으로 제시한 'SK그룹의 글로벌 기업 도약'이 현실화 될 수 있을지 결정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SK그룹은 사업을 많이 벌려놓은 만큼 돈 벌 수 있는 기회가 큰 반면 리스크도 함께 안고 있다"며 "정유나 통신은 이미 성장성이 없고 반도체와 2차전지가 성장해야 그룹이 성장할 수 있는데, 지금 리스크를 SK그룹이 어떻게 돌파해 내실화를 키우는 지가 관건일 것"이라고 짚었다.
그동안 SK그룹은 최 회장을 주축으로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바꾸는 성장을 보여왔다. 외환위기를 비롯해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의 디폴트, 코로나19 등 각종 위기 때마다 그룹 핵심 사업을 정하고 키워왔다. 최 회장은 위기 때마다 긴장감을 주면서도 과감한 도전을 장려하며 그룹 전체가 역동적으로 변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는 평가다.
이에 최 회장이 그룹 수장에 오른 뒤부터는 글로벌 시장 진출과 수출 확대가 이어졌는데, 특히 지난해 SK그룹 수출은 83조4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최 회장 취임 전보다 10배 뛴 규모다.
최 회장은 최근 반도체와 배터리가 힘을 못쓰고 있지만 오히려 더욱 적극적인 투자와 고객사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그가 이번 위기에도 특유의 승부 전략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지난 8월 고대역폭메모리 5세대인 HBM3E 개발을 완료한 뒤 성능 검증을 위해 엔비디아에 샘플을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앞서 현존 최고인 4세대 HBM3도 SK하이닉스가 가장 먼저 개발한 바 있다.
SK온도 최근 테슬라의 경쟁사인 스웨덴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와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도약을 알렸다. 전기차 수요가 주춤한데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어 위기감이 크지만, 이에 흔들리지 않고 미국내 조지아주 1·2공장과 포드와의 합작법인 등 모두 6개 공장의 가동·추진을 실현하겠다는 계획이다.
SK그룹 관계자는 "고금리, 고환율 등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지정학적 위기가 심화되면서 위기 의식을 전하기 위해 (최 회장이)'서든데스'를 강조한 것으로 본다"며 "이에 4분기 동안 배터리, 바이오, 반도체를 중심으로 위기 대응을 적극적으로 펼치기 위해 각 계열사별, 사업별로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