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서울의 한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정유업계가 실적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경기침체가 길어지고 있는데다 유가와 정제마진이 계속해서 하락세인 탓이다. 내년에도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정유업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7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12월 첫째 주 기준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경유 판매가격이 9주 연속 하락했다.

앞서 12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일 대비 2.17센트 하락한 68.61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WTI는 지난 9월27일 93.68달러로 최고점을 찍었으나 이후 하락세다.

영국 런던 ICE 선물시장에서 거래되는 브렌트유 1월 인도분 가격 역시 전일 대비 2.73센트 줄어든 배럴당 73.52달러, 두바이유는 74.98달러 수준이다. 브렌트유와 두바이유도 2달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유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등의 자발적 감산에도 지속해서 하락 중이다. 감산에 대한 불확실성과 세계 경기 둔화 우려가 유가를 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원유 생산 증가 등으로 내년에도 글로벌 석유 시장에서 공급과잉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가운데 국내 정유사들의 올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평균 49%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횡재세 논란이 무색하게 1년 만에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등 실적이 급감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SK이노베이션의 올해 연간 추정 실적은 매출 77조4898억원, 영업이익 2조3006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0.7%, 41.3% 줄어든 규모다. 에쓰오일(S-OIL)의 연간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15.9%, 44.6% 급감한 35조6903억원, 1조8848억원으로 추정된다.

국내 정유4사 실적이 비슷한 추이를 보이는 것을 고려하면 비상장사인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의 연간 실적도 유사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유가로 인해 실적이 크게 변동하는 부담이 커지자 정유업계도 본업인 정유사업에만 의존하는 구조를 탈피하고 내년을 대비하고자 새 먹거리 찾기에 분주해지고 있다. 내년에도 유가 하락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우세한 탓이다.

전유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침체와 소비위축, 고금리 등의 불안정한 주위 여건이 계속될 전망”이라며 “유가상승 국면으로 전환되기까지 정유 기업의 실적개선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심수빈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유가가 과잉 공급을 향한 전망 속에 하락한 만큼 주요 에너지기관의 수급 전망에 따라 등락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2024년 수요 증가 전망치 변화, OPEC+의 자발적 감산이 수급 여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유업계 새 먹거리로는 바이오항공유(SAF)가 주목받고 있다. SAF는 폐식용유와 동식물성 기름, 사탕수수 등 바이오 대체 연료를 사용해 생산한 항공유인데, 기존 항공유보다 탄소 배출을 80%까지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무화가 추진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의 경우 오는 2025년부터 수송용 바이오연료 의무 사용을 점진적으로 강화하는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은 2026년 울산CLX에서 SAF 생산 공장 건설을 위해 투자 중이다. 지난해 음식물 쓰레기를 비롯한 생활폐기물을 처리해 SAF를 생산하는 미국 ‘펄크럼 바이오에너지‘에 약 268억원의 지분 투자를 한 데 이어 관련 사업에 더욱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에쓰오일은 일찍이 2021년 삼성물산과 바이오 연료 사업을 공동 개발하기로 손을 잡은데 이어 내년에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 인프라를 활용한 생산을 추진할 방침이다. 현재 석유정제 공정에 바이오 기반 원료와 열분해유를 처리할 수 있는 규제 샌드박스를 승인받은 상태다.

GS칼텍스는 포스코인터내셔널과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에 바이오원료 정제시설을 짓기로 했다. 2025년 2분기 가동이 목표로, 내년 초 착공에 돌입한다. 이곳에서 연간 50만t의 바이오원료 및 식용유지를 생산할 예정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바이오디젤 제조 공장 건설과 차세대 SAF 생산, 바이오 케미칼 사업 진출로 이어지는 3단계 바이오 로드맵 추진에 나선다. 또 연내 완공을 목표로 충남 대산공장 부지 안에 바이오디젤 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다. 내년까지 일부 설비를 수소화 식물성 오일(HVO) 생산 설비로 전환해 SAF 생산에 돌입한다.

이밖에 정유4사는 최근 데이터센터,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용 배터리 등 전력 소비가 증가하면서 급부상하고 있는 액침 냉각 시장에도 집중하고 있다. 액침 냉각 기술은 서버, 배터리 등 열이 발생하는 전자기기를 전기가 통하지 않는 비전도성 액체에 직접 담가 냉각하는 차세대 열관리 기술이다.

불확실한 유가로 기존 석유사업의 의존도를 줄이고 신사업 공략을 가속화하는 등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는 정유사들이 미래 먹거리 시장을 선점하고 실적을 회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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