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옵션 적립금 톱10에 미래에셋증권만 턱걸이
전문가, “디폴트옵션 상품에 원리금 보장 포함의 한계”

지난해 7월 도입된 퇴직연금디폴트옵션 적립금 규모 상위 톱10 현황. 고용노동부 제공.
지난해 7월 도입된 퇴직연금디폴트옵션 적립금 규모 상위 톱10 현황. 고용노동부 제공.

퇴직연금사업자 간 적립금 확대 경쟁이 은행, 증권, 보험업간 첨예한 가운데,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해 지난해 7월 시작한 퇴직연금디폴트옵션이 증권업계에 오히려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우려된다. DC(확정기여형)와 IRP(개인형퇴직연금)를 대상으로 하는 디폴트옵션 가입자 대부분이 원리금 보장상품 가입자이다 보니 향후에도 계속 원리금 보장상품에 고착화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분석이다.

5일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7월 1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의 2023년도 4분기 말 기준 적립금액, 수익률 등 주요 현황을 공시한 결과, 41개 사업자(금융기관)이 정부로부터 승인받은 306개 디폴트옵션 상품 중 300개를 판매해 약 반년 만에 적립금액 12조5520억원으로 3분기 대비 7조4425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지정가입자 수는 479만명으로 4분기에 추가로 88만명 늘어나 시행 초기 400만명에 가까운 가입자가 생성된 것에 비해 성장 폭은 줄어들었다.

운용 중인 상품들의 2023년 연 수익률은 약 10.1% 수준으로 당초 목표수익률인 연 6~8% 보다 높은 성과를 나타냈다는 것이 고용노동부 측 설명이다. 지난달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지난해 퇴직연금디폴트옵션 대상인 퇴직연금 시장 전체 DC형과 IRP의 수익률을 살펴보면, DC형이 4.00%(원리금보장형)와 13.24%(원리금비보장향)를 기록했고, IRP가 3.78%(원리금보장형)와 13.15%(원리금비보장형)을 기록했다.

퇴직연금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투자자들이 자신들이 운용책임을 지는 DC형과 IRP형 퇴직연금의 운용중 상품이 만기가 됐음에도 운용지시를 하지 않아 방치돼 수익률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로 도입된 제도다. 특히 예금 상품의 경우 예금 만기가 도래했음에도 현금성 자산으로 남겨져 수익률이 하락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대부분의 디폴트옵션 가입이 ‘원리금보장형’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5일 발표된 고용노동부 통계를 살펴보면, 디폴트옵션 상품 적립(판매)금액 12조5520억원 중 초저위험(원리금보장형) 상품은 11조2879억원으로 전체의 89.9%에 달한다. 저위험(6835억원), 중위험(4057억원), 고위험(1749억원) 상품을 모두 더해봐야 약 10%에 그친다.

한 금융투자업계 퇴직연금 담당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금으로 굴리는 퇴직연금이 만기를 놓쳐 현금으로 남아있을 것을 걱정해 초저위험 상품 중심으로 디폴트옵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탓”이라며, “어차피 ETF, TDF, EMP 등을 운용에 활용하는 사람은 디폴트옵션과 크게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러다보니 한번 디폴트옵션으로 ‘초저위험상품’을 지정한 고객은 나중에 시장 상황이 바뀐다고 해서 투자형 상품(고위험상품)으로 갈아타기 보단 그냥 잊어버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금융투자업계 입장에서는 더욱 판을 뒤집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디폴트옵션 제도는 미국 등 퇴직연금 선진국의 제도를 본 떠 도입이 추진됐다. 다만 다른 나라의 경우 디폴트옵션 상품에 초저위험(예금 등) 상품이 빠져 적극적인 수익률 제고의 도구로 사용된 반면, 우리나라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은행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 제도 도입을 위해 원리금보장상품도 편입하는 것으로 합의해 제도 도입이 이뤄졌다.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공시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퇴직연금 시장의 점유율은 은행 ‘약진’, 증권 ‘선전’, 보험 ‘후퇴’로 요약된다. 은행은 22년 말 51.5%에서 23년말 52.4%로, 증권은 22년 말 22.3%에서 22.9%로 확대된 반면, 보험은 22년말 26.2%에서 23년말 24.7%로 뒷걸음질 쳤다.

적립금 순위로 보면 삼성계열사를 등에 업은 삼성생명이 48조1513억원으로 1위를 수성한 가운데, 신한은행(40조4016억원), KB국민은행(36조8265억원), 하나은행(33조6987억원), IBK기업은행(25조2002억원) 순으로 톱5를 형성한 가운데, 미래에셋증권이 23조7473억원으로 6위를 기록하며 증권업계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금번 고용노동부 발표에서 디폴트옵션 적립금 규모 톱10에는 1위 신한은행부터 9위 부산은행까지 6위 근로복지공단을 제외하곤 모두 은행이 이름을 올렸다. 미래에셋증권만이 10위에 턱걸이했다.

앞선 증권사 퇴직연금 관계자는 “디폴트옵션 가입이 원리금보장상품 중심으로 가다 보니 적립금이 원리금보장 중심으로 된 근로복지공단과 은행들에 증권사 1위가 밀리는 형국”이라며, “디폴트옵션 가입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포트폴리오를 적극 관리하다 시장상황이 바뀌었을 때 옵트아웃(기존 운용상품 매도 후 다른 상품으로 갈아타기)할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에 증권사 입장에선 힘들여 도입한 디폴트옵션 제도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퇴직연금 상품은 단기 운용상품이 아니라 중장기 운용 상품이라 아무리 짧아도 1년 또는 3~5년 등 중기 수익률 이상을 봐야 하는데 금번 고용노동부 수익률 공시가 오히려 투자자들로 하여금 단기 성과에 매몰돼 판단을 흐리게 할 소지가 있어 아쉽다”고 덧붙였다.

세부적인 공시자료는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와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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