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취임 즐길 새 없었던 100일간의 여정
글로벌, 보험, IT 일군 새 회장의 새출발 기대
지난해 11월 21일 취임한 양종희 회장이 취임 100일을 맞으며 2월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은 1등 금융지주 회장 등극의 기쁨을 맛보기 보단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동시에 스타 CEO인 윤종규 전 회장의 공과를 뒤로 하고 한 단계 더 발전된 조직을 만들기 위한 정지작업의 시간이었습니다. 다가오는 봄 다시 출발선에 서는 모습입니다.
요즘 금융지주 회장들의 모습이 그리 부각되고 있지 않습니다. 상생금융이 시대의 화두가 된 상황에서 회장의 카리스마 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모습이 더 시대정신에 어울리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내 1등 금융그룹의 신임 수장으로서 양 회장의 모습이 부각되지 않는 건 안팎의 여러 사정이 있어 보입니다.
지난 해 KB금융은 당기순이익 4조631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5%의 상승을 보이며 역대 최대 실적을 보였습니다. 다만 여의도 애널리스트들은 이보다 높은 수준의 실적을 전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흡족하지 않다는 평가를 내놨습니다.
3분기 1조3737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던 KB금융은 4분기엔 2615억원의 순이익을 신고했습니다. 분기로 1조원 이상의 이익이 줄어든 셈입니다. 경상적인 이익이 줄어든 게 아닙니다. 업계 공통의 이슈인 부동산PF, 해외 상업용부동산(CRE) 투자, 상생금융, 여기에 희망퇴직 비용까지 한꺼번에 회계상으로 인식한 결과입니다. 이런 일회성 요인이 아니었다면 전분기와 비슷한 성과를 냈을 거라는 게 안팎의 관측입니다.
안타깝게도 KB금융은 홍콩ELS 관련 판매 비중이 타 은행 대비 훨씬 큽니다. 전세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뒤로 미루는 가운데 중국 정부가 기준금리 격인 대출우대금리(LPR)를 최근 25bp 낮추는 등 부양책을 쓰고 있지만 증시에 곧장 반영되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미세한 규모의 차이일 뿐 홍콩ELS 발 판매 이슈가 당분간 이어질 듯 합니다.
다만 정부가 3월 첫 주 이 사안을 어떻게 처리할 지 기준을 제시할 것으로 예고해 어떤 방향이든 일단락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시장 참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입니다. 홍콩 H지수 등락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있겠지만 큰 줄기는 잡고 갈 수 있게 됐습니다.
시기와 폭의 문제일 뿐 금리가 내릴 거라는 건 정해진 방향입니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회오리 속에 경제 부양과 인플레이션 안정화라는 홍역을 단기간에 거쳤지만 ‘은행이 이익을 많이 내 걱정인 시대’도 곧 저물 것입니다. 차기 3년을 책임질 KB의 선택이 양종희 회장이었다는 것은 그런 관점에서 십분 이해가 됩니다.
1989년 국민은행에 입행한 양 회장은 지점장에 오른 이후 줄곧 지주와 계열 보험사 등 은행 밖에서 활약했습니다. KB손해보험 인수부터 지금의 업계 빅5 체계를 일군 것도 양 회장이었습니다. 그룹 회장이 되기 위한 필수 코스인 국민은행장을 맡을 때가 됐을 때도 이를 마다하고 본인이 인수한 회사를 반석에 올려 둔 투지는 업계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습니다.
KB금융지주가 타 금융지주와 달리 은행의 부담을 7할 선에서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는 KB손보, KB증권, KB라이프, KB카드 등 모두 업권 내 톱5의 지위를 넘나드는 회사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리합니다.
그룹 외연 확대는 국내에서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2018년 인수한 인도네시아 부코핀 은행은 한동안 KB금융의 고민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부실한 은행이었던 것을 모르고 인수한 것은 아니지만 조 단위의 증자가 필요할 것으로 예측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에 앞선 2009년 인수한 캄보디아 프라삭 은행은 이제 현지 4위권의 은행으로 임직원 수만 5000명이 넘는 조직으로 성장하며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과정에 해외사업을 진두지휘했던 양종희 회장의 흔적이 묻어 있습니다. 공과 과가 모두 그의 몫입니다.
디지털전환이 시대의 화두이고, 인터넷은행들이 제2의 부흥기를 맡는 요즘 KB국민은행을 중심으로 한 슈퍼앱 전략을 내세운 것도 양종희 회장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은행 지점장 출신이 보험, IT, 글로벌 등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모두 일구며 9년간 1등 금융그룹을 일군 윤종규 회장의 바톤을 이어받은 셈입니다.
윤종규 회장은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본인의 재임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1위인 KB금융이 글로벌 순위가 60위권이라며 본인이 꿈꿨던 ‘금융의 삼성전자’를 완성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했습니다.
스티브잡스가 일군 애플을 오늘의 애플로 한단계 더 도약시킨 인물이 팀쿡(Tim Cook) CEO입니다. 이번 연휴가 1등 KB금융의 외연 확장과 내실 강화를 양 회장이 이루기 위해 숨가빴던 취임 100일을 뒤로하고 새로 시작한다는 각오로 운동화끈을 한번 더 조이는 시간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