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제네시스·기아 전기차 16만9932대 대상
정의선 '품질제고' 강조에도 무색해진 전동화 전략
현대자동차·기아가 17만대에 가까운 전기차를 자발적 시정조치(리콜)하기로 하면서 올해 초 신년사에서 "품질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발언이 재조명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현대차, 기아, 스텔란티스코리아, 테슬라코리아 등 4개사의 12개 차종 23만2000대에 제작결함이 발견돼 리콜에 돌입한다고 14일 밝혔다. 이 중 리콜 대상이 된 현대차·기아의 전기차는 모두 16만9932대에 달한다. 현대차 아이오닉5, 아이오닉6, 제네시스 GV60, GV70, GV80 전동화 모델 등 5개 차종 11만3916대와 기아 EV6 5만6016대 등이다. 현대차·기아의 대표적인 전기차종들이 대부분 포함됐다.
이는 2021년 현대차그룹의 전용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상용화 이후 최대 규모의 전기차 리콜 규모로 꼽히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리콜되는 현대차·기아 전기차들은 통합충전제어장치(ICCU) 소프트웨어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토부는 "ICCU 소프트웨어 오류로 저전압 배터리 충전이 불가하고 이에 따라 주행 중 차량이 멈출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ICCU(Integrated Charging Control Unit)는 전기차 충전·구동의 핵심 부품으로, 배터리 충전이나 전기차 전력 등을 제어한다. 전기차 곳곳에 전기를 공급하는 최상위 '헤드 모듈'로 보면 된다. ICCU에 문제가 발생하면 시동이 걸리지 않거나 배터리가 방전될 수 있으며 주행 중 하부에서 소음이 날 수도 있다.
사실 현대차·기아의 ICCU 문제는 지난해부터 업계의 화두에 올랐다. 그간 국내 전기차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현대차그룹 전기차의 ICCU 고장에 대해 호소하는 게시물들이 올라왔으며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리콜센터에도 불량 신고가 계속 이어졌다. 소비자들 대부분이 '동력 상실'을 문제로 지적했다.
현대차그룹도 문제를 인식하고 지난해 7월 증상이 발생한 13만여 대의 전기차에 대해 무상 수리를 실시하기로 하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불량 ICCU 부품 교체 등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무상 수리 이후로도 ICCU 오류 신고 사례가 이어지면서 결국 이번에 자발적으로 리콜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기아는 리콜 대상 차량이 입고되면 개선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차량 내 고장 코드가 확인되면 ICCU 교체를 단행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기아의 대규모 리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전략에 흠집이 생겼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 회장이 그간 '품질 제고'에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초 경기도 광명시 기아 오토랜드 광명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신년회에서 정 회장은 "고객이 기대하는 이상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품질과 안전 등 전 부문에서 경쟁력을 확실하게 갖춰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17만대에 가까운 현대차·기아 전기차가 리콜 조치에 들어가면서 품질 논란이 커지고 있다. 미국 등 해외에 판매된 전기차에 대해서도 이달 중 리콜을 시행하게 되면, 리콜 대상 차량은 도합 50만대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미 도로교통안전청(NHTSA)이 별도로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전기차 시장이 '캐즘(chasm, 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둔화기)'을 겪으면서 성장모멘텀 확보가 필요한 시점에서 이번 리콜 조치는 현대차그룹으로서 뼈아픈 상황이다. 국내 전기차 시장이 더욱 부진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편 리콜 대상에서 빠진 기아 EV9을 제외하고 2021년부터 올해 1월까지 현대차·기아의 E-GMP 전기차 누적 판매대수는 총 60만2256대로 집계됐다. 국내 판매가 15만456대, 해외 판매 45만1800대 등이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