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ST안티에이징포럼’에 부쳐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장 이상건 전무. 미래에셋 제공.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장 이상건 전무. 미래에셋 제공.

조금 섣부른 판단 같지만 현재 한국 사회는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는 것 같다. 기존에 우리가 알던 삶의 문법이 대전환을 앞두고 있다. 2000년 이후 완연한 저성장 기조의 정착, 저출산·고령화로 표현되는 인구구조의 드라마틱한 변화, 부동산 시장을 비롯한 자산시장의 양극화, 정치적 분열의 가속화와 리더십의 약화, AI혁명으로 생산성 증대 등등. 이 중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건 없겠지만 인구구조의 변화는 우리의 삶 전반에 커다란 파고로 등장할 것이 자명하다.

인구구조의 변화, 즉, 고령 인구의 증가는 사회적 비용의 증가를 의미한다. 기존에 설계된 제도가 비용 압박으로 인해 위기에 처하게 된다. 1920년대 이후 현대사회에서 복지의 근간을 이루는 연금과 건강보험 등의 사회 보험 제도가 재정 고갈에 직면하게 된다. 내는 사람은 적어지고 받는 사람은 많아지는 가분수 구조를 어느 시점에서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 재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고령화 선배국가인 일본의 경험을 보더라도 고령화는 명백한 재정 압박 요인이고, 이것에 대한 뾰족한 해법은 아직 없는 상태이다. 교과서적인 처방만 현재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즉, 여성 노동력의 활용, 고령 노동자의 재취업 등을 통해 노동 인구를 늘리고, 생산성 증가를 통해 생산 가능 인구의 감소에 대응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책도 대부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논의에서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자본시장과 고령화’의 관계이다. 우리나라 금융은 (부동산 등의) 담보를 기반으로 한 은행 중심의 시스템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은행은 리스크를 지지 않고 돈을 빌리는 기업과 개인이 원금 상환의 책임을 끝까지(?) 지는 구조이다. 은행은 실패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담보를 확보하고 있다.

반면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과 같은 나라는 시장 참여자가 서로 함께 리스크를 공유하는 구조이다. 자본시장과 기업의 생태계가 함께 리스크를 공유하면서 성장해 나간다. 노후 준비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사람들의 연금자산은 주식시장에 연동돼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부동산에 포박되어 있다. 자산 중 70-80%가 부동산이고, 연금도 80%가 넘게 원금 보장형 상품에 들어가 있다. 지금 이대로라면 미국처럼 연금 백만장자들의 등장은 요원한 길이 아닐 수 없다.

장수 리스크의 의미는 복합적이지만 본질은 장수로 인한 삶과 사회적 비용의 증가이다. 장수 리스크를 헷지하는 것의 중심에는 ‘돈’이 빠질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선택해야 한다. 지금처럼 미래에도 부동산에 편중된 자산구조를 그대로 두고 연금 자산도 원금 보장형 위주로 운용을 할 것인지, 아니면 자본시장 중심의 자산운용으로 전환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만일 계속 전자를 고집한다면, 한국인들의 장수 리스크는 지금 보다 더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자본시장의 활성화를 통해 자산 규모를 키우고, 글로벌 자산배분을 통해서 리스크를 관리해 나가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20여년 이상 저성장과 고령화로 심한 고통을 겪었던 일본이 자국의 주식시장을 살리기 위해 중앙은행이 발 벗고 나서서 주식을 매수하고,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 급진적인(?) 정책을 내 놓은 이유를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경험은 자본시장 활성화가 고령화에 대한 완벽한 해법은 아니지만 자본시장의 활성화 없이 고령화의 파고를 넘을 수도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다고 한다. 하나는 혁신을 통해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애플이나 엔비디아 같은 기업들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변화의 수용자가 되어야 한다. 변화의 주체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변화의 수용자가 되지 않으면, 남은 운명은 도태와 사라짐뿐이다. 변화와 수용의 관점에서 자본시장과 고령화의 관계를 다시 한 번 국가와 기업과 개인 모두가 깊이 생각해 볼 때이다.

스트레이트뉴스가 기획한 ‘2024 ST 안티에이징포럼’에서 이러한 논의가 더 심도있게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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