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 이후 야권 횡재세 도입 재추진에 업계 '난색'
유럽·미국 등 해외와 사업구조 달라.. '이중과세' 지적도
국내 정유사가 지난해 부진을 딪고 올해 1분기 실적 반등을 이뤘지만 안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횡재세 도입' 압박에 다시 직면하면서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정유업계 횡재세 도입을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10일 열린 제22대 국회의원서거(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 정유사 등을 대상으로 횡재세 부과 입법을 추진할 계획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횡재세란 일정 기준 이상 이익을 얻었을 때 해당 초과분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을 말한다. 예상하지 못하거나 부자연스럽게 발생한 이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고 사회적 자원의 재분배를 도와 경제 균형을 맞추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022년 코로나19 펜데믹 사태 속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석유 및 가스 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자 전 세계적으로 관련 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현재 독일과 영국, 스페인 등 유럽 국가는 에너지 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하고 있다. 원유 시추사업을 벌이는 기업이 부과 대상이다.
이 가운데 국내에서도 횡재세 도입 논의가 다시 본격화 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미 지난해 횡재세 도입을 주장했던 민주당은 최근 고유가로 인한 서민들의 부담을 내세워 정유업계에 대한 횡재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고유가 시대의 국민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당은 지난해 유동적인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횡재세 도입을 추진한 바 있다. 정부는 막연하게 희망주문만 낼 게 아니라 실질적인 조치로 국민의 부담을 덜어야 한다"고 대통령에 전하기도 했다.
국내 정유업계는 이란·이스라엘 전쟁으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과 정제마진 개선, 봄 성수기 효과 등으로 올해 1분기 실적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에쓰오일(S-Oil)은 1분기 영업이익이 454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로는 11.9% 감소했지만 직전 분기(-564억 원) 대비 큰 폭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SK이노베이션 역시 올해 1분기 영업이익 6247억원을 달성하며 회복세를 보였다. 영업이익은 전 분기 대비 5521억원, 전년 동기 대비로는 2497억원 증가한 수치다.
HD현대오일뱅크 역시 올해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17.8% 증가한 영업이익 3052억원을 냈으며, 다음달 실적을 발표하는 GS칼텍스도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신장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유사업 수익성은 국제유가와 최종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등 원료비를 뺀 지표인 '정제마진'에 달려 있다. 통상 배럴당 4~5달러가 손익 기준선인 가운데 올해 1분기에는 배럴당 12.6달러 수준이었고 2월에는 15달러대까지 오르기도 했다. 특히 올해 1분기 중동전쟁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상승하면서 정유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석유제품 재고가치가 상승했고 이는 그대로 이익으로 반영됐다.
정유업계는 1분기 해외 수출액도 늘어나면서 국가 무역수지 개선에도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국내 정유업계의 1분기 석유제품 수출량은 역대 1분기 중 최대치를 기록했다. 1분기 석유제품 총 수출량은 1억2690만 배럴로 전년 동기 대비 7.8% 증가하며 종전 최고 기록인 2020년 1분기(1억2518만 배럴)를 넘어섰다. 수출액도 124억16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6% 늘었다. 1분기 원유 도입액(195억 달러) 중 63.8%를 수출로 회수한 셈이라는게 협회의 설명이다.
그러나 정유업계는 횡재세 도입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단기적으로 유가상승이 나타날 수 있지만 장기화 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유가 시기에 수요가 늘면 정제마진이 상승하지만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면 글로벌 경기가 위축돼 정제마진이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우제 KB증권 연구원은 "4월 정제마진은 배럴당 7.6달러로 1분기 대비 크게 하락했다"며 "유가 상승과 수요 비수기가 겹친 탓으로 5~7월 성수기 효과로 마진 개선을 기대하나 일부 공급 차질도 해소돼 제한적 반등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또한 지난해 실적 부진 시에는 잠잠하다 올해 1분기 흑자전환을 이루자 횡재세 도입을 다시 논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2022년 국내 정유사는 조단위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역대급' 기록을 세웠으나 1년 뒤인 지난해 상반기 적자로 전환하는 등 경영환경이 크게 달라진 바 있다.
기업에 법인세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세금을 걷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국금융연구원은 '횡재세 주요 쟁점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이미 법인세를 부과한 상황에서 추가로 초과 이익 부분에 과세함에 따라 이중과세 금지원칙 위반 가능성이 있다"며 "여타 산업과의 불평등한 취급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내 정유사는 해외와 다르게 직접 시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비싼 원유를 전량 수입한 뒤 이를 정제해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의 형태로 파는 '박리다매' 형태로 유가가 상승 하더라도 원유 가격 상승분만큼 이익을 얻지는 못한다. 원유 가격 상승분이 원유 수입 비용에도 반영되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미국 등 해외 정유사는 땅에서 원유를 캐는 것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원가가 없는 형태에 가깝다. 이에 해외기업과 사업구조가 달라 해외 횡재세 도입 사례와는 비교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따른다.
횡재세를 부과하는 게 서민들의 고유가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도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오히려 횡재세를 부과하면 석유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소비자들의 부담이 더 커진다는 의미다.
다만 횡재세 도입 논쟁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고물가·고유가가 지속되고 있는데다 정유사의 '억대연봉', '실적잔치' 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의 매출 100대 비금융 상장사 사업보고서 조사 결과 정유·가스 등 에너지 기업은 매출 100대 기업 내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직원 연봉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기업 직원 평균연봉은 에쓰오일(1억7300만원), SK이노베이션(1억5200만원) 등의 순이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