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보험개혁회의 출범했으나 업계 반응 ‘미지근’
제2의 건강보험인 실손의료보험 적자 폭이 2조원으로 집계됐다. 고질적으로 실손보험 손해율을 잡아먹은 비급여 보험금 규모가 유난히 커졌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현재 실손보험 4세대 개혁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보험업계에선 회의적인 목소리가 크다.
10일 금융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실손의료보험 손익은 1조9738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1조5000억원 적자를 기록한 2022년과 비교해 4000억원 이상 적자 폭이 확대된 것이다.
실손보험은 환자가 부담한 의료비 중 일정 금액을 보상하는 보험 상품이다. 실손 적자 규모가 불어난 가장 큰 원인은 비급여 항목을 지급하는 보험금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비급여 보험금은 2022년 7조8000억원대에서 지난해 8조원으로 껑충 뛰었다.
통상 병원비 중 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하는 부분을 급여, 그 외 부분을 비급여로 나눈다. 다만 실손보험 가입 시기별 구분(1~4세대)에 따라 자기부담금이 0%~30%까지 달라진다.
비급여 보험금 지출 비중을 항목별로 보면, 비급여 주사 비용이 28.9%로 가장 많이 집계됐다. 이어 ▲근골격계질환 치료(도수치료 등) 28.6% ▲질병치료 목적의 교정치료 3.1% ▲재판매가능 치료재료 2.0% ▲하지정맥류 1.6% 순을 기록했다.
비급여 치료 때문에 국내 보험사의 실손보험 손해율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실손보험 경과손해율이 103.4%로 전년 대비 2.1%p 증가했다. 경과손해율은 발생손해액을 보험료수익으로 나눈 비율이다. 구체적으로는 손해보험사 손해율이 107.1%, 생명보험사는 86.4%를 기록했다. 손해율이 100% 이상이라는 건 보험사가 상품을 팔았을 때 적자를 보고 있다는 의미다.
1~4세대 중 손해율이 가장 높은 실손 유형은 3세대(137.2%)로 나타났다. 3세대 실손은 2017년 4월 출시해 2021년 6월까지 판매된 유형이다. 이어 ▲4세대 113.8% ▲1세대 110.5% ▲2세대가 92.7% 손해율을 기록했다.
실손 1, 2세대는 질병·상해에 대한 치료행위를 단일 보장 상품구조로 구성했다. 반면 3세대 실손의료보험은 보험료를 앞 세대 상품보다 더 내리고 과잉진료가 우려되는 비급여 항목들을 특약으로 분리했다.
하지만 현실은 과잉진료 부담을 줄이겠다는 도입 취지와는 다른 상황이다. 3세대는 비급여 항목에 대한 연간 보상 횟수와 금액 한도 제한을 설정했는데 일부 보험가입자와 의료기관이 한도치 수준으로 진료를 받았기 때문이다.
의료 기관별로도 차이를 보였다. 의원에서 발생한 지급보험금 비중이 32.9%로 가장 큰 규모로 집계됐다. 이어 ▲병원 23.0% ▲종합병원 16.8% ▲상급종합병원 16.0% ▲한방병원 3.6% 순을 기록했다.
감사원은 7일부터 실손보험금 과잉 지급현황 등 구조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누수현상을 없애기 위해 금융당국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특히 실손보험 손해율 관리에 악영향을 끼치는 비급여 과잉진료를 집중적으로 감사한다. 일부 의료계의 비급여 과잉진료는 전체 보험가입자의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실손보험 개혁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7일 금융당국은 범부처 관계기관과 함께 실손보험 상품 개선을 논의하기 위해 보험개혁회의를 출범했다.
국민의 신뢰를 얻고 국민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실손보험에 대한 개선책을 조속히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역시 의료개혁 핵심 안건으로 ‘실손보험 제도 개편’을 상정한 바 있다.
보험업계에선 “상품 개편보다 과도한 의료 행위를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실제 보험업 현장에선 실손 손해율과 보험료 인상 두고 매우 고민하는 상황”며 “일부 의료계와 소비자의 모럴 헤저드가 실손 손해율에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고 당국에서 이를 개선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정책방향 논의의 끝이 보험업계와 소비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반대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험업계 다른 관계자는 “실손보험은 대부분 보험사가 적자를 감수해야 하기 떄문에 태생적으로 불합리한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며 “정부가 1, 2, 3세대 같은 기존 계약 실손까지 손을 대는 건 현실적으로 제한이 있다는 점에서 큰 기대는 안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보험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비급여 주사비용 문제 등으로 비급여 지급보험금이 다시 증가세로 전환됐다는 것은 큰 문제”라며 “선량한 다수 소비자 보호를 위해 비급여 문제 개선 관련 실손보험 개편과 의료개혁 과제가 조속히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독일은 비급여 진료를 받을 시 의사소견을 받아 공공보험에 사전승인을 신청하는 방식으로 과잉진료를 막고 있다. 또 미국은 의료보험을 아예 가입자의 자기부담을 늘리는 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