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압 변압기 등 AI시대向 전력사업 '키' 전환
투자금 확보 필수.. 연내 계열사 IPO 여부 주목
'배·전·반'(배터리·전기차·반도체) 사업을 성장동력으로 삼은 구자은 LS그룹 회장이 최근 AI(인공지능) 분야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수요 정체)으로 시장 성장세가 주춤한 가운데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선 모습이다.
구 회장은 LS그룹의 2세 시대를 책임지는 인물로, 지난해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배·전·반'을 미래 먹거리로 키운다는 방침을 세우고 올해 초 '비전(Vision) 2030' 전략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이차전지 소재인 전구체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최근 하이니켈 양극재 전문회사 엘앤에프와 손잡고 합작회사 'LS·엘앤에프배터리솔루션'을 설립하기로 했다. 연내 전북 새만금산업단지에 전구체 공장을 착공해 2025년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후 증설해 2029년까지 연산 12만t 체제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LS이링크를 출범시켜 전기차 충전솔루션 시장에 진출한 바 있다.
LS그룹의 주력사업은 전선 사업부문과 일렉트릭 사업부문이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매출 비율은 전선사업부문(전선·전력·통신) 36%, 일렉트릭사업부문(전력·자동화·IT) 18%, 엠트론 사업부문(기계·부품) 7%, MnM 사업부문(금속·귀금속) 14% 등이다.
LS MnM은 지난해 5월 LS니꼬동제련의 일본 컨소시엄(2대 주주 JKJS) 지분(49.9%)을 전량 매입해 지분 100%를 확보하고 사명을 바꾼 것이다. 기존 전기동 제품 외에도 이차전지 소재와 반도체 소재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처럼 전력, 전선, 기계, 금속 제련 등의 사업을 영위해오던 LS그룹이 배·전·반'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내고 있는 가운데 최근 AI 분야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어 눈길이 쏠린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AI시대를 맞아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LS그룹이 최대 수혜 기업 중 한 곳으로 꼽히고 있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등 여러 AI 관련 기술들이 활성화하면서 방대한 규모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이터센터에 공급할 안정적인 전력망 구축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제에너지기구는 2년 뒤 전세계 데이터센터에서 사용되는 전력량이 1050테라와트시(TWh)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2022년 국내 전체 전력사용량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특히 기존 데이터센터보다 전기 소비량이 20배 이상 많은 AI 전용 데이터센터가 전 세계적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전력 사업에 강점을 갖고 있는 LS가 발빠르게 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송배전이 주력 분야인 LS일렉트릭은 최근 초고압 변압기 공장 증설을 결정했다. 전력 사용이 급증하는 AI 전용 데이터센터의 전력 과부화를 막기 위해서는 초고압 변압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수요를 내다보고 있다는 얘기다.
LS전선을 필두로 LS에코에너지, LS마린솔루션 등은 국내외 해저 케이블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우선 LS전선은 최근 강원도, 동해시와 투자협약을 맺고 동해시에 해저케이블 공장을 증설키로 했다. 투자금 1000억원을 투입해 연면적 1만9451㎡(5883평) 규모의 해저 케이블 공장 5동을 짓는 사업이다.
내년 하반기 완공되면 초고압직류송전(HVDC) 케이블 생산능력이 지금보다 4배 가량 늘어난다. HVDC는 교류(AC)에 비해 대용량의 전류를 저손실로 멀리 보낼 수 있어 국가간 연계, 장거리 송전망 등을 중심으로 도입이 늘고 있다.
LS전선의 아세안지역 사업부인 LS에코에너지는 해저 전력·통신 케이블 사업 확대에 나선다. AI시대 도래에 따라 2040년쯤이면 전세계적으로 대규모 전력 수요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모회사인 LS전선의 전력·통신 기술 협력과 사업 거점인 베트남의 노동력을 활용한 원가 경쟁력을 기반으로 유럽, 북미, 아시아 지역의 해저 케이블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김장원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LS전선은 초고압전력선과 해저케이블을 생산하고, LS일렉트릭은 전력시스템과 인프라를 생산하며, LS MNM은 전선과 전자부품의 필수 원자재인 구리 제련사업을 전개한다"면서 "AI, 전기차 등 전세계적인 신수종사업 모두 전력 소비가 많은 산업으로 전력 인프라 투자가 필연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대륙에 제품 납품과 설치공사 경험을 갖고 있는 LS의 수주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면서 "특히 LS전선 동해 해저케이블 5공장이 완공되는 내년을 기점으로 수주 물량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밖에도 LS엠트론은 올해 초 4000여평 규모의 동부 메가센터를 경북 김천시에 설립했다. 이곳은 국내 최초로 상용화된 자율작업 트랙터를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국내 유일한 시설이다.
LS엠트론의 자율작업 트랙터는 별도의 조작 없이도 전후진과 회전, 작업기 연동 등을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트랙터가 스스로 농사지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작업 시간은 25% 단축되고 수확량은 8% 증가해 작업자의 편의성과 정밀성을 높이면서 생산성을 향상하는 등 자율작업 기술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이 역시 AI 시대를 맞아 주목받는 제품과 기술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LS의 이같은 사업 전개는 구 회장의 주문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 현장을 찾으면서 함께 참관한 임직원들에게 "양손잡이 경영전략의 핵심인 LS의 원천 기술과 AI로 대변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우리 LS만의 미래혁신 기술을 창조해 나가자"고 주문한 바 있다.
당시 구 회장은 "LS는 어떠한 미래가 오더라도 AI, SW(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협업과 기술 혁신으로 짧게는 10년, 그 이후의 장기적 관점에서 충분히 대응 가능한 사업 체계를 갖추고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 회장은 최근 독일에서 열린 세계 최대 산업기술 박람회 '하노버 메세 2024' 현장을 찾기도 했다. AI 시대에 대비해 자생력을 갖추고 그룹의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하기 위한 행보로 분석된다.
구 회장은 LS일렉트릭 부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AI와 탄소중립에 따른 전기화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고도의 전기 제어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에서의 경쟁우위를 이어가 글로벌 에너지 산업 혁신을 리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 회장의 이러한 혁신 의지는 지난 2월 출범한 'LS K-하이테크 플랫폼'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LS의 K-하이테크 플랫폼은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추진하는 정부지원사업으로, AI와 IoT(사물인터넷) 이차전지 등 신기술 분야의 역량 향상을 위해 지역사회를 거점으로 관련 시설이나 장비를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울러 중소기업 재직자, 구직청년, 자영업자 등 다양한 수요자에게 맞춤형 교육과정을 제공한다. LS는 플랫폼을 통해 그룹이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축적해 온 역량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내 첨단 신기술 융합 관련 인프라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디지털 캠프 ▲LS 빅데이터 스쿨 ▲DT 세미나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 할 미래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만 LS그룹이 AI 시대 속에서 더욱 도약하기 위해서는 AI 역량 키우기에 더욱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AI 시대에 따른 전력 사업 호재가 주로 거론될 뿐 LS만의 새로운 사업 모델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회를 모색하기 위한 투자금 마련도 과제로 꼽히고 있다.
이에 주력 계열사들의 IPO(기업공개)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 3월 LS이링크의 연내 상장을 필두로 LS MnM 등 최소 4개 자회사의 상장을 준비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특히 LS MnM은 LS그룹 3세인 구동휘 대표이사의 IPO를 통한 '경영 능력 시험대'가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