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경영진 퇴진…2세대 상징 ‘리틀 박현주’ 김남기 책 펴내
경쟁사 출신 고대경영 후배…‘투자철학 강조하는 승부사’ 닮은 꼴
국내에서 미국으로 투자 운동장 이동…‘연금계좌에서 ETF 장기투자’ 빌드업
장기간 동결 행진 중인 기준금리 인하 결정이 임박하고, 미국 시장은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자 투자자들은 향후 방향성 찾기에 분주합니다. 이럴 때 국내 투자시장을 뜨겁게 달구는 ETF 시장 선두 자리를 두고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경쟁이 치열합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7월 11일 기준 삼성자산운용의 ETF 순자산(NAV)규모는 60조9988억원,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순자산은 57조9931억원 입니다. 전체 158조3954억원 중 양사의 시장점유율은 삼성 38.51%, 미래에셋 36.61%입니다. 1.9%p의 격차입니다.
그 숨가뿐 격전 중에 삼성자산운용 출신인 김남기 미래에셋자산운용 ETF운용부문 대표가 ‘난중일기’라 할 수 있는 신간 ‘당신의 미래, ETF 투자가 답이다’를 내놨습니다. 처음엔 독자들에게 ETF전문가의 투자 꿀팁을 요약해 전달할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었으나, 책장을 덮으며 저는 생각을 바꿨습니다.
이 책은 적진에서 건너온 장수의 출사표이자 향후 미래에셋이 꿈꾸는 바가 무엇인지를 담은 예언서에 가깝습니다. 스스로 책 속 에세이에서 ‘나의 미래에셋 이직 스토리’라고 밝힌 책의 관전기를 하반기를 맞는 첫 주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신간 ‘당신의 미래, ETF투자가 답이다’는 김남기 미래에셋 ETF운용대표의 투자 안내서입니다.
미래에셋은 회사 초기부터 이른바 ‘미래에셋총서’라는 이름으로 단행본을 내거나 해외 투자 구루들의 책을 번역해 소개해 왔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박현주 회장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투자자들이 투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품에 투자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문화입니다.
김남기 대표는 “어떠한 결정이든 남들이 많이 한다고 무조건 따라해서는 안되고 본인 나름의 생각과 판단으로 결정해야 한다”며, “그 원리와 배경을 이해해야 앞날을 내다보고 스스로 투자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책에서 말합니다. 책을 낸 배경이라고 봐도 무방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분초를 아끼며 살아가는 운용대표가 투자 입문서를 쓴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대필의 흔적을 찾아보려 했으나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이 상당부분 녹아 있어 누가 대필을 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군데군데 오탈자 등 전문 작가의 솜씨가 아닌 부분도 엿보여 대필 가능성은 더욱 없어 보입니다.
놀라운 건 책 첫 머리에 등장하는 박현주 회장의 추천사입니다. 직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감안한다 해도 20년 가까이 어린 고려대 경영학과 후배 김 대표를 ‘ETF시장의 거물’로 칭한 부분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특히 책 한권 낸 것을 두고 “자랑스럽고 기쁘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주식형 액티브펀드로 국내를 평정한 미래에셋
1997년 창업한 미래에셋그룹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주식형 액티브펀드 투자를 주도하며 국내 1위 투자그룹으로 성장한 기업집단입니다. 특히 정기적금과 유사한 ‘적립형투자’라는 컨셉을 펀드투자에 적용, 평균 매수단가를 낮추는 효과(Dollar Cost Everaging Effect)를 통해 장기 분산투자의 힘을 증명한 것이 투자시장의 확대와 맞물리며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박현주펀드 1,2호를 거쳐 회사를 일으킨 인디펜던스, 디스커버리 시리즈를 지나 미래에셋차이나디스커버리, 미래에셋차이나솔로몬 시리즈 그리고 불과 몇 주 만에 4조원을 끌어들인 공전의 히트작이자 쓰라린 경험인 인사이트펀드까지 내놓았습니다. 그 운용을 맡은 손동식, 김태우, 구재상, 박건영, 서재형, 목대균 등 수많은 스타 매니저를 양산하며 업계를 평정했습니다.
◆ 채권형 펀드 강자이자 ETF시대를 앞서간 삼성자산운용
하지만 미래에셋이 액티브 주식형펀드 시장을 장악하는 사이 삼성자산운용은 ETF시장에 눈을 먼저 뜨고 반전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한국투자신탁운용의 대표가 된 배재규 사장이 삼성자산운용 재직 당시 국내에도 없던 ETF제도를 감독당국에 설명하며 최초로 들여왔고, 지금 이 책의 저자이자 미래에셋 ETF를 총괄하는 김남기 대표가 그 바톤을 이어받았습니다.
주식형 액티브펀드에선 미래에셋이 시장을 움직였지만 채권운용 부문에선 삼성자산운용이 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모기업인 삼성생명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캡티브 시장으로 등에 업고 고객자산을 위탁 운용하는 구조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삼성자산운용에선 채권운용역이 최고의 핵심 인재입니다. 그 역할을 담당한 것이 김남기 대표입니다. 그 스스로도 자신을 만나기 위한 점심 미팅이 6개월씩 밀려 있었다고 책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신탁회계팀에서의 짧은 경력을 지나 채권운용역으로 남부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돌연 회사 CFO의 권유로 ETF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상당한 파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2018년 ETF 시장점유율 과반으로 경쟁자가 없던 상황에서 김 대표가 마켓을 키우기 위해 홍콩에 살다시피하며 외국계 자금을 끌어들이고, 그에 대한 조직의 평가에 한계가 있자 2019년 미래에셋으로 옮기는 선택을 하는 모습은 흥미롭습니다.
이는 마치 30대의 나이에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 강남본부장을 맡으며 승승장구하던 박현주 본부장이 최현만 서초지점장, 구재상 압구정지점장 등 10명도 되지 않는 소수의 인력을 데리고 미래에셋을 세운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 박현주 회장과 김남기 대표의 평행이론
평행이론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박현주 회장이 미래에셋캐피탈을 세운 1997년은 한국이 IMF구제금융을 신청하며 주가가 곤두박질치던 때입니다. ETF시장에서 삼성자산운용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던 미래에셋으로 2019년 옮기자 마자 2020년 코로나19를 맞습니다. 투자자들이 경쟁사의 레버리지 상품에 몰려 추격의 전의를 잠시 상실하고 방향을 찾지 못한 김대표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장면입니다.
이 책은 국내 ETF 최고수가 투자자들을 위해 쓴 투자지침서이자 입문서입니다.
초보자들이 읽다가 지치지 않게 저자인 김 대표는 하나의 장치를 걸어둡니다. 이는 실험실의 비이커를 가득 채우는 방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먼저 조약돌을 넣습니다. ETF의 기원과 개념, 투자방법 등을 설명해 배경지식을 전합니다. 이어 자갈을 넣습니다. 조약돌 사이사이를 메우는 자갈은 가장 성공적인 투자를 위해 추천하는 미래에셋의 대표 ETF상품들입니다. 남은 작은 빈틈엔 모래를 넣었습니다. 자신이 왜 이 사장에 들어왔고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에세이를 중간중간 삽입해 중간에 독서를 멈추고 싶은 충동이 들 때 이어나가는 징검다리(Bridging)를 놓는 전략을 취합니다.
암호문 같은 ETF의 이름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 AP와 LP는 무엇이고 지수사업자는 무엇인지, 분배금의 유무 등 깨알 기초지식으로 ETF의 세계를 안내합니다. 중간중간 잊을 새라 중요 부분은 두꺼운 글씨로 볼드처리해 참고서 같은 느낌도 줍니다.
ETF 운용의 핵심은 자산운용사지만, ETF생태계 유지를 위해 필요한 유동성공급자, 한국거래소, 지수사업자 등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그들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대목에선 마치 연말 시상식에서 관계자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감사의 뜻을 전하는 셀럽의 모습도 떠오릅니다.
김 대표는 ETF를 투자할 수 있는 다양한 계좌, 즉 일반 주식계좌, 중개형 ISA계좌, 연금저축계좌, IRP와 DC형 퇴직연금 계좌 등을 선택할 시 세제상 장단점, 환금성 여부 등을 세세히 설명합니다. 또 ETF 운용구조로 직접 주식을 운용하는 ‘실물형’, 지수 추종 선물을 편입하는 ‘파생형’, 둘다 어려운 경우 해당 지수의 수익률을 증권사와의 스왑 계약으로 운용하는 ‘합성형’이 있다고 설명하며 ETF 일타강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 투자의 운동장 미국으로 이동…해외ETF 강자 미래에셋
핵심은 “왜 미국 시장에 투자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워런버핏이 유언장에 “본인 사후 남은 돈의 90%를 미국 대표 지수인 S&P500에 투자하고, 10%는 단기채권에 투자하라”고 말한 부분을 인용하며, 전세계 시가총액의 절반을 차지하고 닷컴버블,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등의 위기에서도 우상향을 그려간 미국 시장 투자의 당위성을 설명합니다. 또 이 수익률에 만족하지 못하는 투자자를 위해 ‘나스닥100’ 지수, 또는 ‘미국 대표 빅테크 10종목’ 투자 등을 소개합니다.
재밌는 부분은 이 모든 설명이 결국 미래에셋의 대표 ETF상품인 ‘TIGER미국S&P500’과 ‘TIGER미국 나스닥100’, ‘TIGER미국테크TOP10INDXX’ 등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로 귀결되는 큰 그림 완성의 ‘빌드업’이라는 점입니다.
김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제일 좋은 ETF는 실물을 직접 담아 운용하고, 규모가 커 운용 효율성이 있으며, 수수료는 적은 ETF입니다. 미래에셋의 상품이 ‘그 어려운 걸 해냈다’는 주장입니다.
특히 현재 고점처럼 보이는 미국 시장 투자가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며, 역사적으로 어떤 구간에서 투자를 했든 결국 수익이 났고, 그 중 최고의 투자는 ‘저점 집중투자’가 아니라 꾸준히 사모으는 ‘적립형투자’라고 분석하는 대목에 시선이 멈춰집니다.
그리고 이 투자는 과세이연, 세액공제, 분리과세가 모두 가능해 세제상 혜택이 가장 큰 연금저축계좌나 IRP계좌에서 해야한다고 김 대표는 주장합니다. 환금성이 낮은 계좌에 어쩔 수 없이 오래 묶어놔야 적립형, 장기투자의 수혜가 가능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 워런버핏에게서 투자 힌트를 얻었던 박현주 회장
삼성자산운용의 DNA를 가진 김 대표가 미래에셋으로 넘어와 미래에셋의 핵심인 적립형 투자를 ETF에서 주장한다는 점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합니다.
박현주 회장은 오래전부터 워런버핏을 투자의 그루로서 인정해 왔습니다. 박 회장이 ‘한국판 버핏과의 점심’ 행사를 통해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등의 시도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특히 박 회장은 한국 투자문화 특성상 단기 부침이 심한 것에 언제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적립형 투자가 수익률이 좋은 것도 장점이지만, 매달 소액을 납부하면 부담이 적어 장기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 장기 캠페인으로 이어졌습니다. SK생명을 인수해 미래에셋생명을 그룹 라인업에 넣은 이유도 보험상품이 훨씬 장기이고 보험상품을 통해 들어온 돈을 장기로 굴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워런버핏의 버크셔헤서웨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에셋은 지난해 이른바 1세대 경영진들이 대거 퇴진했습니다. 그 중에는 샐러리맨의 신화인 최현만 회장도 포함돼 있습니다. 박현주 회장도 스스로를 회장이라 칭하기 보단 CSO(최고전략책임자)라고 부르며 한발 물러나 있습니다.
◆ 2세대 미래에셋…ETF, 글로벌, AI
미래에셋의 1세대가 한국 시장에서의 공고한 1등을 만든 액티브 투자시대의 선구자들이었다면, 2세대 리더들은 ETF라는 패시브(지수추종) 상품, 보다 본격적인 해외투자, 그리고 AI로 상징되는 빅테크 투자의 선봉장들입니다.
미래에셋이 글로벌X를 중심으로 해외 ETF운용사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하고 인도 시장에 진출하는 등 일련의 과정이 2세대에 펼쳐지는 일들입니다.
김남기 대표는 자산운용업을 “투자성과가 아니라 투자철학을 파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팀 타이거’라고 부르는 그의 ETF운용팀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러가지 장치(가령 브레인 트러스트) 등의 일을 이어간다고 설명합니다.
‘소수의 관점’, ‘싸고 좋은 것은 없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달려가는 것’ 등 개념 구상(Concept Drawing)의 달인인 박현주 회장의 모습이 김남기 대표에게서 보입니다.
정상에서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길 찾기, 단기 성과보다 철학 심기, 글로벌한 관점, 나보다 강한 적을 뛰어넘겠다는 승부욕, 창의성 강조, 치밀한 전략. 김남기 대표가 보여주는 이러한 모습에서 박현주 회장은 지난 날의 자신을 보지 않을까요?
이 책의 추천사 맨 마지막 문장 “자랑스럽고 기쁘다”는 단지 이 책의 출간이 자랑스럽고 기쁘다는 뜻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평행이론’의 근거를 확인하고 싶은 분은 지난 3일, 서울에서 열린 국제경영학회(AIB) 연례학회에서 박현주 회장이 ‘올해의 글로벌 CEO’ 수상 소감으로 발표한 기조연설문을 찾아보시길.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