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집권 가능성↑.. 칩스법·IRA 폐지·축소 가능성 등 대두
4대그룹 핵심사업, 바이든 정부서 세운 계획 재점검·수정 불가피

지난 13일 유세 중 발생한 총격에 긴급히 대피하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지난 13일 유세 중 발생한 총격에 긴급히 대피하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최근 도날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국내 기업들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정부와 다르게 '반중국·반친환경적·자국중심주의'를 표방하고 있어 정책 변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공화당 전당대회 대선 후보 수락 연설 및 언론 인터뷰 등에서 공격적인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모든 수입품에 대한 보편적 관세를 부과하고 IRA(인플레이션감축법)과 칩스법(Chips Act) 등에 대해 축소·폐지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자국 보호주의를 펼칠 것이란 의사를 내비치자 국내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그간 바이든 정부에서는 '프렌드쇼어링'(동맹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응하며 대미(對美) 의존도를 높여왔던 한국 기업들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올해 상반기 중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AI 수요 확대로 반도체 수출이 늘고 친환경차 판매도 증가한 덕분이다.

그러나 올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한국 기업의 상품 수입을 저지하고 미국의 자국 기업을 키워줄 확률이 높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재임시절인 1기에는 '반중국' 기조를 내보였다면 현재는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 등 핵심 산업을 보호무역주의의 표적으로 보고 있는 탓이다.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정부의 칩스법 지원으로) 대만이 미국 반도체 사업을 전부 가져갔고 이젠 보조금까지 가져가고 있다"며 "미국에 방위비를 내야 한다"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방위비와 대만 TSMC를 묶어 거론한 것으로, 한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이 같은 논리라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미국에서 받게 될 보조금에 대해서도 트집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자동차 100%를 전기차로 할 수는 없다. 전기차는 주행거리가 짧고 매우 비싸고 무겁다"며 "그들(바이든 행정부)은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엄청난 양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 IRA의 전체나 일부를 폐기할 계획이냐는 질문에는 직답 대신 "IRA는 인플레이션을 낮추지 않고 높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IRA가 지원하는 풍력과 태양광발전의 비용 문제 등을 거론하며 "우리는 이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우리는 저렴한 가격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SK온, 한화솔루션 등 전기차와 배터리, 에너지 산업 분야에서 IRA를 통해 한국 기업에 주어지던 첨단제조세액공제(AMPC) 금액도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최근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실적이 크게 줄어든 가운데 AMPC 금액까지 줄어든다면 타격이 더욱 커지게 된다. 국내 배터리 1위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이 1953억원이었지만 IRA상 세액공제액(4478억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252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상태다.

업계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당선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이 이미 약속한 보조금을 취소하진 못하더라도 앞으로 외국 기업은 (혜택에서) 배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트럼프 재선 후 IRA가 폐지되려면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 다수당을 차지하고 이탈표까지 방지해야 하는데, 공화당 의원·일부 지역의 이해관계를 따졌을 때 간단하지 않다"며 "폐지까지는 아니더라도 행정부 권한을 활용해 IRA 효과가 축소될 가능성은 높고 이렇게 되면 기업들이 미래 이익을 기대하고 단행한 대규모 투자는 전면 재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SK온의 미국 조지아 배터리 공장 전경. SK이노베이션 제공
SK온의 미국 조지아 배터리 공장 전경. SK이노베이션 제공

바이든 정부에서는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 건설 시 보조금과 세금 혜택을 지원하는 칩스법과 북미 지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배터리 광물을 40% 이상 사용하는 등 부품조건을 충족한 북미산 전기차에만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는 IRA을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은 미국에 공장을 짓고 생산시설을 확대하는 등 막대한 투자를 이어왔다. 전기차 캐즘으로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더라도 보조금을 통해 수익성을 챙길 수 있는 부분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트럼트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높아지자 기존 계획들을 점검·수정해야할 전망이다.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은 제너럴모터스(GM)과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가 미국 미시간주 랜싱에 짓고있는 '합작 3공장'의 건설 속도를 늦추기로 했다. 앞서 SK온은 전기차 캐즘으로 포드와 추진 중인 켄터키주 합작 2공장의 양산 시점을 2026년 이후로 미룬 바 있는데, 트럼프 재집권까지 악재가 겹치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이 LG에너지솔루션, SK온과 각각 구축 중인 미국 현지 배터리 합작공장 계획도 수정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밖에도 삼성SDI 역시 현재 스텔란티스와 인디애나주 코코모시에 2개의 배터리 공장을, GM과 인디애나주 뉴 칼라일에 1개의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나 가동 시점이 연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받아야 할 보조금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시에 400억 달러를 투자해 최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두 개를 짓는 대가로 지난 4월 64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받기로 미국 정부로부터 약속을 받았다.

SK하이닉스도 지난 4월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 달러를 투자해 최첨단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면서 미국 정부에 반도체 보조금 신청서를 제출했다. 보조금 지급만을 믿고 현지 투자를 결정한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 리스크가 대두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서는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다.

다만 해당 보조금이 미국 의회를 통과한 법안인 만큼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으로 인해 '미지급'으로 뒤집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긴 하나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이 거론된다.

양사 모두 아직 구체적으로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대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9일 제주에서 열린 대한상의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시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 "미국 인디애나 투자는 규모가 크지 않은 첨단 패키징 공장 건립이며 아직 완전히 결정된 것도 아니다"며 "만약 미국이 보조금을 안준다면 (그때) 다시 (투자를)생각해봐야할 문제"라고 언급했다. 미국 보조금 정책이 폐기된다면 현지 투자를 조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친 모습이다.

앞서 지난 트럼프 임기 1기 때에는 미국 자동차산업 적자를 이유로 한·미 FTA을 개정하는 등 한국 기업에 불이익을 주려는 전례가 있긴 했지만 당시 한국이 미국의 10대 수입국에 들지 않았던 데다 다른 국가보다도 중국을 집중적으로 배척한 데 따라 국내 기업들의 피해가 크지는 않은 편이었다.

이에 당시 반도체는 중국산 반도체 관세 부과가 이어지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후 시안과 우시에서 생산하는 중국산 반도체를 중국 고객향으로만 판매하고 미국 고객향 제품은 전량 한국산 반도체로 대응하는 등의 전략으로 위기를 넘긴 바 있다.

그러나 2기 트럼프 정부에서는 대중 관세율 추가 상승과 함께 전체적인 세율이 오르는 데다 미국 인텔, 마이크론 등 자국 기업의 반도체 사업 육성 만을 위한 정책이 나올 수 있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현재 국내 기업들에게 미국의 경제 정책 변화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신속한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계획을 수정하고 속도를 조절하되 탄탄한 대응 방안을 마련해 부활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 속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하며 새로운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돌발 리스크에 대한 시나리오 및 대응 방안을 선제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민주당 대선 후보직을 전격 사퇴했다. 대선 후보 공식 지명 절차만을 남겨둔 현직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공식 포기하는 미국 역사상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민주당은 수주 내에 새 대통령 및 부통령 후보를 선출해 내는 동시에 당내 통합을 달성하면서 그동안 내홍으로 이탈한 지지층을 다시 결집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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