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CJ 의지 부족" vs CJ "경기도의 일방적 해제" 갈등 팽팽
경기도 공공개발 추진 카드 꺼냈지만.. 지역민 "정상 추진 의문"
경기북부 최대 개발사업이었던 'CJ라이브시티' 백지화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경기 고양시 주민들을 비롯해 K팝 팬 등 'K-컬처밸리'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만큼 갑작스러운 사업 무산에 해당 사업을 둘러싸고 소란해지는 모습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경기도는 지난 1일 CJ라이브시티 사업 협약 해제 발표 이후 악화일로로 치닫는 여론을 의식한 듯 ▲경제자유구역 추가 지정 ▲공공개발 추진 ▲특별회계 신설 등의 대안을 제시하며 해명에 나섰지만 졸속 발표라는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앞서 경기도는 무산 이유에 대해 "CJ라이브시티 측의 사업 추진 의지 부족으로 인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CJ라이브시티는 "경기도의 제도적, 행정적 지원 부족으로 사업이 지연됐다"며 "무기력한 행정으로 인한 일방적인 사업 협약 해제"라고 반발했다.
무산 발표 이후 주요 쟁점 중 하나는 '공공개발'이 꼽힌다. 경기도 강민석 대변인은 지난 17일 경기도의 K-컬처밸리 사업 추진을 위한 방법으로 '건설은 경기도가 하고 운영은 민간이 맡는다'는 방향성의 공공개발 방침을 내세웠다. 경기도가 GH(경기주택도시공사)와 협력해 건설을 책임지고 그 뒤 운영은 하이브 등 유수 국내외 엔터테인먼트사가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 대안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2일 국민의힘 고양병 당원협의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K-컬처밸리 공공개발 방침을 졸속으로 결정한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규탄했다.
김종혁 당협위원장은 "경기도가 사업성 부족을 이유로 사업협약을 해제했으면서 GH가 이를 맡으면 사업성이 개선된다는 논리는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이미 17% 건설된 공연장을 공영 개발하려면 예비타당성 조사와 설계 등 모든 절차를 새로 시작해야 한다"며 "경기도가 2조원 규모의 사업을 장난감 다루듯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CJ라이브시티 사업은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약 32만6400㎡(10만평) 부지에 아레나, 스튜디오, 숙박 및 상업시설 등 'K-콘텐츠 경험형 복합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조성이 완료되면 10년 간 약 30조원의 경제 파급효과, 약 20만명의 고용유발 효과 등이 예상됐다.
특히 이 사업은 개발 단계부터 전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협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단지의 마스터플랜 수립 및 건축 디자인은 애플 신사옥, 독일 국회의사당 등을 설계한 영국 포스터앤드파트너스가 맡았다.
앵커 시설인 아레나는 세계 1위 아레나 운영사인 미국 AEG, 도쿄돔·사이타마 슈퍼아레나 등을 설계한 일본 니켄세케이, 국내 유력 건축 설계사무소 간삼건축, MAMA, KCON 등 K팝 컨벤션을 기획·운영하는 CJ ENM이 설계 단계부터 참여했다. 아레나의 시공은 국내 건설사 중 유일하게 아레나 건설 경험이 있는 한화 건설부문이, 아레나의 운영은 CJ라이브시티와 AEG가 설립한 합작법인(JV)이 담당해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장이 조성될 것으로 예상됐다.
CJ그룹은 2015년 경기도 공모로 사업 시행자가 됐으며 그룹의 문화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CJ ENM(지분 90%)이 출자해 이 사업을 맡을 법인인 CJ라이브시티까지 설립하고 사업에 착수했다. 총 사업비는 1조8000억원을 들이기로 계획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에 최초로 아레나 도입을 기획하고 국내외 전문기업들과 함께 개발 및 운영 계획을 수립해 온 당사자가 CJ다. 국내에서 아레나를 가장 잘 아는 민간기업을 배제해놓고 경험이 전무한 공공 기관이 나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어 "문화인프라 사업이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운영은 물론 개발 단계부터 전문 기업이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경기도가 CJ가 쌓아온 지식재산권을 활용하지 않고 그 이상의 개발 계획을 세우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공공이 개발을 주도했다가 실패한 대표 사례로 영국 런던의 O2아레나가 있다. O2아레나(최초 명칭은 밀레니엄 돔)은 영국 정부가 1997년 당시 한화 기준 1조4000억원을 투입해 개발했지만 개관 후 방문객 수가 예상 대비 15% 이하에 머무는 등 심각한 운영난에 시달리다 결국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결국 영국 정부는 엔터테인먼트 전문기업인 AEG에 부지를 매각했고 AEG는 아레나 일대를 스포츠 및 엔터테인먼트 지구로 재개발해 오늘날 연간 방문객 850만명의 글로벌 대표 아레나를 만들어낸 바 있다.
지난 2일 착공에 돌입한 서울 도봉구 서울아레나 역시 공공이 주도한 초기 단계에서 위기를 겪었다. 서울아레나는 2015년 건립 확정 후 적격성 조사 통과에만 3년을 소요하는 등 지방자치단체 주도 단계에서 약 8년을 표류하다 민간기업 카카오가 출자자로 나서면서 본격적인 추진이 성사됐다. 문화콘텐츠 산업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이 없이는 사업 수행이 불가능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고양시의 한 지역 커뮤니티에는 엔터테인먼트 전문 기업이 계획했던 10만평 문화콘텐츠 복합단지 사업을 임대 아파트를 짓던 GH가 개발한다고 나선 것에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지역 주민은 "일산 내 한예종 유치 및 신분당선 연장도 말 뿐이었고 하나도 지켜진 게 없다"며 "경기도나 GH가 아니라 기업의 명운을 걸고 사업을 추진할 민간기업이 이 사업을 이끄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주민은 "이미 17%나 지어진 아레나 공사 현장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것도 모순"이라며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CJ라이브시티 원안을 다시 추진해서 공사를 재개하는 것"이라고 했다.
고양시 지역 주민들은 경기도의 CJ라이브시티 사업협약 해제 및 공공개발 계획에 대해 항의하며 CJ라이브시티 원안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일에는 차량 약 80여 대를 동원하는 대규모 시위를 진행하는 등 집단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공사비만 들이고 물러나게 된 CJ 측도 소송전에 돌입하겠다고 나서는 등 입장이 팽팽한 상황이다. CJ라이브시티가 2021년 10월 착공에 들어갔지만 지난 4월 전체 공정률 3%(K팝 아레나는 17%)에서 공사를 중단한 데 대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CJ라이브시티는 착공 이후 악재가 겹치는 상황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했고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며 공사비와 금리가 급등했다. 이 가운데 경기도와 CJ의 입장이 갈리는 지점은 한국전력공사의 태도다. CJ 측은 공사 지연 결정타를 날린 게 한국전력공사라는 주장이다. 지난해 2월 한전이 CJ라이브시티 내 공연장 부지(T2)를 제외한 나머지 부지(T1·A·C) 개발에 필요한 대용량 전력공급이 2028년까지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전력이 끊기면 공사 진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CJ라이브시티는 2028년까지 아레나를 제외한 시설은 착공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지난해까지 총 사업 진행률이 3%에 불과한 이유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경기도는 전력공급에 차질이 생겨 공사가 늦었다는 주장을반박하고 있다. 김성중 경기도 행정1부지사는 "CJ라이브시티가 전력 사용 신청을 제때 하지 않아 발생된 사항인데도 경기도는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한전·산업통상자원부와 협의하는 등 노력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CJ라이브시티는 전력공급 주체인 한전과 전력 사용량 조정 등에 대한 협의를 실시하지 않는 등 문제해결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업계와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민간기업이 여러 난관에 막혀 어려운 상황에서 경기도가 유연한 행정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정치권 싸움의 폐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 여당(국민의힘)이 집권할 당시 추진됐던 사업인 탓에 야당(더불어민주당)이 사업에 적극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