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 셀러·소비자 이탈로 투자 여력↓·파산 가능성↑
정부 긴급자금 투입.. 정무위 현안질의 참석 여부 주목

구영배 큐텐 대표. 큐텐그룹 제공
구영배 큐텐 대표. 큐텐그룹 제공

티몬·위메프의 정산과 환불 지연 사태 책임론에 휩싸인 큐텐그룹 설립자 구영배 대표가 국회에 출석키로 하면서 이번 사태의 향방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티몬·위메프 사태 발발 이후 즉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구 대표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첫 공식 사과를 전했다. 그러나 피해자들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닌, 그룹 차원의 입장문만 전한 것인 만큼 여전히 책임감이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구 대표는 입장문에서 "제가 가진 재산의 대부분인 큐텐 지분 전체를 매각하거나 담보로 활용해 금번 사태 수습에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피해회복용 자금지원을 위해 긴급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는 중이며 큐텐 보유 해외 자금의 유입과 큐텐 자산 및 지분의 처분이나 담보를 통한 신규 자금 유입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구 대표는 큐텐 지분 42.8%를 보유 중으로, 그룹의 정점에 있다.

앞서 구 대표는 다음달 중 큐텐그룹의 해외 계열사인 '위시'를 통해 5000만 달러(700억원)를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금융당국에 밝힌 바 있다. 다만 금융당국은 700억원이 조달돼도 사태 해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으며 구 대표가 구체적인 조달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고도 전했다.

이 가운데 큐텐그룹의 물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가 지난 27일 구 대표의 최고경영자(CEO) 사임을 발표하면서 불신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해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구 대표는 국내 대표 이커머스업체인 G마켓의 창업자로, '이커머스 1세대'를 연 인물로 평가 받는다. 1991년 서울대학교 자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계 석유 개발 기업인 슈럼버그에서 엔지니어와 기술 매니저로 일하다 1999년 인터파크에 입사하며 이커머스 업계에 첫 진출했다.

인터파크 재직 중 2000년에 경매 서비스인 '구스닥'을 만들고 이를 사내 벤처 형태의 별도 법인으로 독립시켰다. 이후 2003년 사명을 'G마켓'으로 바꿨으며 2004년에는 나스닥 상장을 성공시켰다. G마켓은 승승장구해 2007년에는 거래액이 3조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에 구 대표는 2009년 미국 이베이에 G마켓을 매각했다. 매각대금은 5500억원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G마켓 지분을 넘기고 715억원을 받았다. 또 매각 당시 이베이는 10년 동안 한국에서 같은 업종으로 경쟁하지 않는다는 겸업금지 조항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구 대표는 2010년 싱가포르에서 큐텐을 설립했다.

겸업금지 기간이 해제된 2022년 큐텐을 등에 업고 한국에 들어와 티몬을 인수하고 이어 다음해 위메프와 인터파크커머스를 사들였다. 올해는 AK몰과 미국 이커머스 플랫폼 위시를 인수했다. 겸업금지가 풀리자마자 2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5개 이커머스 업체를 연쇄적으로 사들이면서 단기간에 몸집을 부풀려 온 것이다.

빠르게 부풀려진 몸집은 금방 꺼지게 됐다. 인수한 업체들이 본래도 재무상태가 좋지 않았던 상황에 큐텐이 인수 후에 시너지를 내지 못하면서 흑자가 아니라 더욱 적자만 내는 상태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는 구 대표를 둘러싸고 의구심이 확산되는 가운데 이번 사태 해결 방안에 따른 예상 시나리오들이 주목받고 있다. 구 대표가 공언한 대로 외부 자금을 수혈받거나 구 대표 사재를 출연해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방법이 거론되는 한편,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하면서 피해자 보상이 어렵게 되는 상황 등 다양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위메프 본사에 고객들이 정산 지연 사태와 관련한 환불 문의를 하기 위해 모였다. 연합뉴스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위메프 본사에 고객들이 정산 지연 사태와 관련한 환불 문의를 하기 위해 모인 모습. 연합뉴스

최악의 상황은 티몬과 위메프 판매 대금 정산 지연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만큼 외부 투자를 받기 여의치 않아 '파산'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티몬·위메프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 금융 채권과 상거래 채권이 모두 동결되기 때문에 셀러들은 당분간 대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기업회생절차를 위한 채권단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파산'을 신청할 가능성이 높다. 파산시 피해자 보상 창구는 더욱 막히게 된다.

큐텐의 재무 상태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수천억원대인 티몬·위메프 미정산 금액을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다 입점해있던 판매자(셀러)들이 빠져나가고 소비자들이 티몬·위메프를 찾지 않게 되면서 기업 가치도 크게 하락해 투자를 받기에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어서 파산 가능성이 높아지는 모습이다.

남성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대금 지연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셀러들의 신뢰성이 약화되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미 가전 및 여행서비스 등 셀러들의 이탈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에 의하면 현재 티몬과 위메프 판매 대금 정산 지연 규모는 21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6~7월 중 이벤트나 프로모션 등을 공격적으로 해댄데다 정산주기가 최대 2개월인 점을 감안하면 미정산 금액이 추가로 불어날 가능성도 있다.

파산 전운이 짙어지자 정부가 나선 상황이다. 정부는 이날 '위메프·티몬 판매대금 미정산 관련 관계부처 TF 2차 회의'를 열고 티몬과 위메프의 미정산 사태와 관련해 최소 5600억원 이상의 유동성을 즉시 투입하는 등의 조치를 담은 '위메프·티몬 사태 대응방안'을 발표했다.

다만 큐텐이 중국 셀러들에게도 정산을 몇달 치 밀린 사실들도 최근 거론되면서 사태가 더 악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구 대표에 대해 "지난 G마켓 나스닥 상장 성공 신화를 다시 한번 이루려했으나 크게 실패한 모습"이라며 "투자금 조달 이야기를 꺼냈지만 모회사 큐텐의 재정 상태도 심각하기 때문에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 가운데 구 대표는 오는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현안질의에 출석할 전망이다. 대신 일정이 긴급하게 잡혀 증인 출석 요구를 위한 별도의 의결 절차를 밟지 않은 만큼 출석을 강제할 수는 없어 구 대표가 마음을 바꿔 국회로 오지 않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한편 이날 티몬·위메프의 정산과 환불 지연 사태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구 대표 등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에 나섰다. 피해자들은 구 대표와 티몬·위메프의 대표이사, 재무이사 등 총 5명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횡령·배임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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