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기아 차량서 배터리 발화 추정 화재 잇따라.. '안전 문제' 대두
주차장 곳곳서 '전기차 출입금지'.. 배터리업계, 캐즘 장기화 우려↑
LG엔솔·삼성SDI 영업익↓.. 라인 전환 등 돌파구 마련 '전전긍긍'
전기자동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배터리업계에 '전기차 거부'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위기감이 날로 배가되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일 인천 청라 한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난 대형 전기차 화재 사고로 전기차 배터리의 안전성과 신뢰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화재 사고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있던 벤츠 전기차(EQE 350모델) 배터리에서 시작된 것으로, 72대가 전소되고 70여 대가 그을리는 등 피해 차량만 140여 대에 달했다. 차량 폭발로 아파트 전기설비와 수도배관까지 녹으면서 아파트 입주민 400여 명이 임시 거주시설에서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다.
당시 아파트 주차장에서는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 더욱 큰 사고로 이어졌다. 특히 차량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 발생한 화재로, 배터리 자체 셀 결함 등을 따져보기 위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정확한 책임소재를 가리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해지면서 차량 주인이 온전히 배상해야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충남 금산에서도 주차 중이던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지난 6일 금산군 금산읍의 한 주차타워 1층에 주차 중이던 차에 불이 났다. 당시 소방당국은 불이 옆 차량으로 번지지 않게 조치, 화재 진압 도중 전기차를 주차타워 밖으로 빼낸 뒤 불을 완전히 꺼 추가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다.
해당 차종은 기아 EV6 모델로, 화재 당시 완충 상태로 충전기가 꽂혀있었다. 앞서 인천에서 불이 난 전기차가 중국산 배터리를 이용한 것과 달리 기아 EV6는 SK온에서 생산한 국산 배터리를 탑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전기차 하부 배터리가 있는 곳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해 불이 붙은 것으로 확인했다. 차량 하부 부위만 탄 상태로, 화재 원인은 제조사인 기아 측에 보내 정확한 화인 조사를 진행키로 했다.
이에 관련 업계에서는 배터리 화재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면서 전기차 수요가 더욱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기차를 구매하려던 사람도 시기상조라고 판단하고 주춤할 수 있다는 걱정이다. 실제로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화재 위험을 우려해 지하 주차장에 전기차 진입 자체를 금지하는 곳도 나오고 있다.
이번 인천 전기차 화재의 벤츠 차량은 중국산 NCM(니켈·코발트·망간)배터리가 사용돼 중국산 배터리의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국내외 전반적으로 '배터리의 안정성'에 관한 논란이 대두되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국내 배터리 업체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미 전기차 캐즘으로 실적이 감소한 가운데 이번 화재로 전기차로의 전환 시기가 더욱 늦어지면 보릿고개 기간도 길어지기 때문이다.
올해 국내 배터리 업체의 실적은 눈에 띄게 줄었다. 고금리·고물가에 따른 비용 부담과 보조금 감소로 인해 내연기관차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전기차를 사는 수요가 줄어들면서 전기차 캐즘이 본격화된 영향이다.
국내 1위인 LG에너지솔루션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57.6%나 줄어든 1953억원에 그쳤다. 이 중 미국 IRA(인플레이션감축법)에 따른 세액공제금액(4478억원)을 제외하면 본래는 2525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셈이다.
삼성SDI 역시 2분기 영업이익이 280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8% 줄었다. SK온은 2분기 460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출범 이래 11개 분기 연속 적자다.
하반기 전망도 밝지 않다. 이번 화재사고가 발생하기 전부터 시장에서는 하반기에도 전기차 수요가 크게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며 배터리업체의 실적 반등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의 3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시장 전망치)를 각각 5073억원, 2008억원으로 전망했다.
배터리업체들은 전기차 화재 문제를 인식하고 배터리관리시스템(BMS)과 화재 발생이 현저하게 낮은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실제 보급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당장 배터리 안정성 문제로 인한 위기를 타개할 방안은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배터리업계는 전기차 시장 수요 둔화에 따라 ESS(에너지저장장치) 등 다른 분야로 눈길을 돌리며 캐즘 위기를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ESS 전용 배터리 생산공장인 미국 애리조나 공장 건설을 착공 두 달만에 중단했다. 다만 기존 전기차 생산라인을 ESS로 전환해 각 생산거점별로 생산설비 가동률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신규 투자는 멈추되 ESS로 캐즘 위기를 타개한다는 전략이다.
삼성SDI는 최근 미국 최대 전력 기업인 넥스트에라에너지로부터 1조원대 ESS 프로젝트를 수주, 주요 고객사와 장기 공급 물량 확보 협의를 진행 중이다. 회사의 주력 ESS는 중국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LFP(리인산철)배터리가 아닌 삼원계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배터리다.
SK온은 전사 차원의 원가 절감 활동으로 경쟁력 강화에 나서는 한편 국내외 경쟁사의 행보를 고려해 전기차 배터리 양산 일정을 조정하고 ESS 전용 라인 확보 등을 검토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화재 사고로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반사이익도 기대해볼 수 있겠으나 전기차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형성되는 게 크게 우려되는 상항"이라며 "전기차로의 시장 전환이 더뎌지면 그만큼 캐즘으로 인한 배터리업계의 불황도 길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