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범용 제품 중심 사업, 중국 등 저가공세에 타격 심각
석화4사 재고자산 6개월 만 14.2% 증가.. 생산조절 '실패'
LG·금호, '신사업' 전환 가속.. 롯데·한화 '고부가' 투자 집중
국내 대표 석유화학 기업들이 전세계 탈석유 기조와 중국 등의 저가공세로 인해 경쟁력을 크게 상실하면서 실적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업계 안팍에선 스스로 ‘총체적 실패’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기업들은 기존 범용 제품 판매 대신 포트폴리오 개편, 신사업 추진 등으로 위기 탈출에 나서며 생존전략 찾기에 분주해지고 있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G화학과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 등 석유화학 4사의 올해 상반기 기준 재고자산이 7조3406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6조4261억원) 대비 6개월 만에 14.2%나 증가했다.
업황 악화 장기화에 재고 관리비까지 늘어나며 악재가 겹친 모습이다. 중국 등 해외업체들이 대규모 증설과 생산량을 늘리면서 공급 과잉인 상황에 재고자산 증가라는 추가 부담까지 더해진 것이다.
재고자산은 기업이 구매한 원재료나 판매를 위해 생산한 제품 등의 가치를 말한다. 이에 기업들은 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시장의 호황이나 불황을 예측해 수요에 맞게 생산량을 관리한다. 재고자산이 본래보다 줄어들거나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면 시장 변화 예측에 성공해 생산량을 잘 관리한 것으로 평가된다. 반대로 공장가동률 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잘못된 판단으로 재고가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국내 뿐 아니라 해외기업들도 중국 공급 과잉 등으로 실적이 감소하며 적자생존 기로에 들어서는 등 석유화학 업황은 계속 어두운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9일 로이터통신은 아시아와 유럽의 주요 석유화학 업체들이 자산을 팔고 노후 설비를 폐쇄하거나 비용을 아끼기 위해 저렴한 원자재에 맞춰 설비를 개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업체들이 원유를 에틸렌과 프로필렌으로 전환하는 능력을 추가로 통합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중국, 중동 국가 등에 신규 공장이 들어서면서 공급 과잉이 수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다.
컨설팅 업체 우드 매켄지는 마진 축소로 인해 전세계 석유화학 생산 능력의 약 24%가 2028년까지 영구 폐쇄될 위기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우드 매켄지의 파트너 에렌 채틴카야는 "중국에서 장기간 생산설비 증설이 이뤄진 탓에 이번 업황 둔화 사이클이 통상적인 시기(5∼7년)보다 더 오래갈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같은 상황에 일본의 미쓰이화학, 대만의 포모사 등 대표 해외 석유화학 기업들도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 포모사는 나프타 분해 시설 3곳 중 2곳을 1년간 닫았다. 또 사우디 석유화학기업인 사빅과 엑손모빌 등은 높은 비용 문제를 꼽으며 유럽에서 일부 설비를 영구 폐쇄한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국내 석유화학 4사의 재고자산이 증가한 점은 '전략 실패'란 분석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말레이시아나 한국에서는 설비가 정유공장과 통합돼 있어 석유화학 시설만 구분해서 닫거나 처분할 수 없기 때문으로 파악하고 있다.
결국 국내 석유화학 4사는 중국 등이 대량 생산해 마진이 남지 않는 범용 제품 생산 대신 신사업을 모색하며 위기 돌파에 나서고 있다.
먼저 LG화학은 친환경 사업과 전지 사업, 신약 등 3가지 사업 부문을 새 성장동력으로 삼았다. 전지 소재·친환경 소재·혁신 신약을 통해 글로벌 화학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다. 2030년까지 매출 70조원을 목표로 내걸기도 했다.
이를 위해 2028년 100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기계적·화학적 재활용 기술 역량을 통한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보 중이다.
신약(바이오) 사업에서는 항암 영역과 당뇨·대사 영역 신약 개발에 집중할 방침이다. 글로벌 제약사로 거듭나겠다는 취지로, 2030년까지 미 식품의약청(FDA) 승인 신약 5개 상용화 목표로 향후 5년간 2조원 규모의 생명과학 분야 투자를 시행할 예정이다.
궁극적으로 LG화학은 탈탄소 기조를 강화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어 나간다는 계획이다. 긍정적인 점은 LG화학이 신약 부문에서 최근 두드러지는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신약을 담당하는 생명과학 사업에서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1090억원으로 전분기(33억원) 대비 33배 이상 상승했다.
금호석유화학은 범용 제품 대신 '합성고무' 사업을 더욱 확장하는 등 신소재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또 전기차 캐즘으로 주춤하고 있지만 미래를 대비해 이차전지 소재 공급을 위한 생산 능력도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탄소나노튜브(CNT) 사업에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현재 여수 율촌 산단에 360t 규모의 플랜트를 짓고 있는데, 이르면 올해 안에 현재 120만t인 CNT 생산 능력을 3배 이상으로 확대할 전망이다.
CNT는 탄소로 만들 수 있는 꿈의 소재로 통한다. 인장 강도는 철의 100배에 이르고 무게는 절반 이하로 가볍다. 지난해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했을 때는 이차전지 소재로 주목받기도 했다. 또 CNT는 고무에 섞으면 제동력, 마모력 등을 강화할 수 있다.
고부가가치 제품인 CNT를 비롯해 주력 제품 나이트릴뷰타다이엔라텍스(NB라텍스) 등 합성고무 소재를 바탕으로 금호석유화학은 올해 2분기 매출 1조8525억원, 영업이익 119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7.4%, 10.8%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전 분기 대비로 51.6% 늘었다.
금호석유화학은 점진적으로 합성고무 사업 확장을 도모한다는 방침이다. NB라텍스, CNT 등에 이어 새로운 고부가가치 소재들을 생산할 전망이다. 현재 적극적으로 추진·연구 중인 합성고무는 차세대 전기차 시장에 대비한 EV용 연속식 솔루션스타이렌부타디엔(SSBR) 등이 있다.
다만 LG화학과 금호석유화학이 기존 범용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신사업으로 전환 중인 가운데 상대적으로 롯데케미칼과 한화솔루션은 아직 해결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지 못하면서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범용 제품 비중이 높았던 데다 고금리, 경기 침체 등으로 롯데케미칼이 낙점한 전지 소재, 한화솔루션이 주력하고 있는 태양광 소재 등 신사업도 부진을 겪고 있다. 이에 올해 2분기 롯데케미칼 기초화학 부문은 매출액 3조6069억원, 영업손실 1392억원을,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은 매출액 1조2224억원, 영업손실 174억원을 기록했다.
앞선 두 곳보다는 늦었지만 이들 두 업체도 기존 범용 제품 비중을 줄이고 신소재 등 미래 고부가가치 부문에 대한 투자에 집중할 방침이다.
롯데케미칼은 전체 매출의 60% 수준을 차지하는 범용 제품 비중을 30% 이하로 낮출 계획이다. 한화솔루션은 예년보다 빠른 인사로 사업구조 개편에 나섰다. 케미칼 부문 신임 대표로 남정운 여천NCC 대표이사를 내정한 것으로, 남 대표는 한화솔루션의 석유화학 사업구조를 고부가·스페셜티 제품 중심으로 강화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범용 제품 중심 사업은 경기가 회복되면 수요가 늘어날 수는 있긴 하지만 진입장벽이낮고 중국 등의 저가공세가 심각한 만큼 경쟁력을 되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소재 등 고부가가치 제품은 차별화된 기술력이 필요해 경쟁사와의 차이를 벌릴 수 있어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대신에 어떤 분야에 사용될 제품인지가 중요할 전망"이라고 짚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