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 대치 '유대 vs 중동', 새판짜기 나선 이스라엘
이스라엘, 유엔 권고도 국제사법재판소 판결도 무시해
‘중동 질서 재편’ 전방위 공세...최종 목표는 이란
지난해 10월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정파 하마스가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침공하고 서안지구 통제권을 확보한 이스라엘이 레바논 국경을 넘어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타격한 후 중동 최대 군사강국 이란까지 도발하면서 중동 정세가 확전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쟁 1년 만에 서안지구와 레바논으로 전선을 확대한 목적은 ‘중동 질서 전면 재편’이다. 이스라엘의 레이더는 이제 오랜 주적이자 반이스라엘 연대인 ‘저항의 축’의 맹주, 이란으로 향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을 배회하는 아파르트헤이트의 유령
가자지구 충돌의 피해는 막대하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식량과 의약품 반입이 차단된 가자지구에서, 과거 17년 간 이스라엘의 폭격에 사망한 민간인이 6,000여 명인데 비해, 지난 1년 동안 사망한 민간인은 43,000여 명에 달한다. 그중 70% 이상이 어린이와 여성이다.
“대부분의 사망자가 여성과 어린이다. (중략) 이처럼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은 이스라엘군이 전쟁규칙을 계속해서 어기고 있기 때문이다.” -볼커 튀르크 UN 인권최고대표-
주택과 병원, 학교, 교회 등을 포함해 국토 80%가 초토화됐다. 부상자는 집계조차 쉽지 않다. ‘전장의 트라우마’와 ‘유대 신 야훼를 향한 집단분노’가 산 자들을 삼키는 현장에는 극단적인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의 유령이 배회한다.
“이스라엘은 제주도 1/3 정도 되는 땅에 팔레스타인 사람들 230만 명을 몰아넣은 다음, 아파트 3층 높이 분리 장벽을 쌓아놓았어요. 장벽 위에는 고압 전류가 흐르고 아래쪽에는 철심을 박아 넣어서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했는데, 인터넷은 물론이고 물과 전기까지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했어요. 이건 국제사회가 방관하는 사이에 자행된 학살이자 ‘21세기 아파르트헤이트’가 맞습니다.” -성공회대 이희수 교수(이슬람문화연구소장)-
민간인 밀집지역에 대한 폭격과 더불어 적의 지도급 인사들을 겨냥한 표적 공습, 국경 너머로 투입된 지상군, 모두 국제법 위반이자 국가 테러다. 유엔은 휴전이나 종전을 위해 총회 권고안과 안보리 차원의 결의안을 채택했고,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 등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전범으로 기소한 상태지만, 이스라엘 정권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하마스, 헤즈볼라, 예멘 후티반군, 카타이브 헤즈볼라 등 각국의 무장정파들과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 주변국들을 상대로 전선을 확대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안보자산을 확대하려는 오래된 이스라엘의 그랜드 플랜, △부패 스캔들과 하마스 침략에 대한 대응 부재 등 국내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려는 네타냐후 정권의 절박함을 꼽을 수 있다. 미국의 대 이스라엘 군사지원, 이슬람 세계의 분열, 유엔의 통제력 상실 등도 배경으로 꼽히지만, 핵심적인 이유는 이스라엘과 미국, 그리고 여타 이슬람 국가들의 속내가 가리키는 곳에 ‘중동 최강 군사 맹주’ 이란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하마스, 헤즈볼라 궤멸 나선 이스라엘, 최종 목표는 역내 이란 지위 축소
“중동 지역 권력 이동에 대한 나의 최종 목표는 테헤란 성직자 지도부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가자지구의 하마스와 레바논 시아파 민병대인 헤즈볼라의 자금 지원자이자 후원자 겸 보호자 역할을 해 온 이란을 무력화시키는 겁니다. (중략) 고결한 페르시아 국민들이 폭군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이스라엘과 평화롭게 지내는 날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올 겁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9월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가 한 발언이다. 그의 최종 목표는 모든 위협의 배후인 이란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9월 27일 유엔총회에서도 전 세계 지도자들 앞에서 “이번 전쟁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한 것이며, 이란까지 공격 목표로 삼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또한 중동 각국을 ‘저주(Curse)의 축’과 ‘축복(Blessing)의 축’으로 나누고, 이스라엘이 요르단과 이집트, 사우디, UAE와 함께하는 ‘축복의 연대’를 구축해 내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임을 천명했다.
이런 이스라엘의 목표는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공격 이후 네타냐후 총리가 내세웠던 3대 목표, 즉 ‘인질 생환’, ‘하마스 궤멸’, ‘가자지구 안정화’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팔레스타인과 하마스에 머물지 않고 국경 북쪽 레바논 영토를 침범해 헤즈볼라와 전선을 만들고 이란 본토까지 공격하면서 확전일로로 치닫고 있어서다.
이번 중동 위기에서 이란이 이스라엘의 최종 공격 목표인 이유는, 하마스와 헤즈볼라, 후티반군, 카타이브 헤즈볼라 등 이스라엘과 대치 중인 모든 이슬람 무장정파들이 이란의 재정적・이념적・전략적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은 물론, 시리아와 이라크, 예멘 등지에서도 상당한 병력을 지휘하면서 ‘저항의 축’을 이끄는 이스라엘의 주적이다.
중동 전문가인 성공회대 이희수 교수(이슬람문화연구소장)는 "이스라엘과 중동은 수천 년 전부터 싸워왔다. 지금 중동 맹주 이란과 이스라엘의 대치는 이란이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 무장정파들을 내세운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다. 이 대리전이 어디까지 갈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중동 질서가 재편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스트레이트뉴스 김태현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