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 안 내려.. 상고심서 결론 예정
재산분할 금액 변동 초점.. '특유재산' 두고 치열한 공방 예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분할 위기에서 한숨을 돌리게 됐다. 대법원이 '세기의 이혼'으로 회자되는 최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에 대한 심리를 이어갈 전망인 가운데 향후 대법원 심리 결과에 따라 재산분할 금액이 조정될 가능성이 생겼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을 심리하는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이날 업무 종료 시간인 오후 6시까지 간이한 방식의 판결인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내리지 않으면서 추가 심리에 접어든 모습이다.
지난 7월 8일 최 회장이 서울고법 2심 판결문 선고에 불복해 낸 이번 상고의 심리불속행 기간(4개월)은 본래 이날 밤 12시까지이나 통상적으로 업무 종료 시간인 오후 6시까지 별다른 발표가 없어 심리를 계속 이어가는 것으로 파악된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원심 판결의 결론에 문제가 없어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기각하는 결정인데, 심리불속행 기각 가능한 기한이 지나면 자동으로 심리가 계속되는 구조다.
심리가 계속되면서 최 회장과 SK그룹은 당장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재산분할을 위한 현금 마련에 대한 부담을 덜게 돼 경영 불확실성도 다소 걷혔다는 평가다. 최 회장 측은 2심에서 쟁점이 됐던 부분과 관련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등 공방 준비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을 본격 심리하면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실제로 SK에 유입됐는지와 최 회장이 선친인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물려받은 SK㈜ 지분이 특유재산에 해당하는지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2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8억원이라는 역대 최고액을 지급하고 위자료 20억원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2022년 12월 1심이 판결한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 665억원에서 20배 넘게 늘어난 금액이다.
특히 2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그룹에 유입되고 그룹 성장에 노 전 대통령의 역할이 있었다고 명시하기도 해 파장이 컸다.
이에 최 회장 측은 500쪽 분량의 상고 이유서를 냈다. 최 회장의 SK 지분은 선친에게 물려받은 '특유재산'인 만큼 재산 분할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과 함께 비자금 유입 사실을 부인했다.
아울러 최 회장은 지난 6월 2심 판결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재산 분할에 관해 객관적이고 명백한 오류가 발견됐다"며 상고 결심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이후 2심 재판부는 최 회장 측이 지적한 대한텔레콤(SK C&C의 전신)의 주식 가치 산정 오류를 확인하고 판결문을 경정(수정)했지만 재산 분할 금액 등 판결한 내용 자체를 수정하진 않았다. 이에 최 회장 측은 불복해 재항고장을 냈다.
2심 판결문 경정 결정에 대한 최 회장 측의 재항고 건은 지난달 26일로 심리불속행 기간이 지나 대법원이 현재 심리 중이다. 여기에 이날 대법원이 이혼 소송 상고심도 심리하기로 하면서 향후 논란이 된 부분들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특히 통상 가사 사건의 상고심 심리 불속행 기각 비율이 90% 가량인 것을 고려하면 대법원이 이번 이혼소송에 대한 심리를 속행하기로 한 것은 다시 짚어볼 문제가 많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2심 판결문은 재계 및 정치계에서도 큰 논란을 불러왔다. 항소심 재판부가 노 관장의 모친인 김옥숙 여사의 '선경 300억' 메모와 약속 어음 등을 비자금 유입의 근거로 인정하고 이를 증명할 책임을 최 회장에게 전가한 것도 논란이 됐다. 검찰이 나서는 등 비자금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온다.
이에 대법원은 최 회장 측이 제출한 500쪽의 상고 이유서, 노 관장 측 반박 서면 등 여러 자료를 토대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검토를 한 뒤 추후 정식 기일에 최종 판결을 선고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되기로 하면서 현재 그룹 리밸런싱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인데다, SK하이닉스 등을 필두로 AI(인공지능) 사업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고삐를 죄고 있는 SK그룹의 향후 행보에 큰 장애물은 치워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상고심은 향후 최소 1년에서 2년 정도의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재산 분할 금액이 큰 폭으로 조정될 가능성도 있어 SK에 유리한 결정이 나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최 회장과 SK그룹이 마냥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 회장의 SK 주식(옛 대한텔레콤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되는 '특유재산'으로 볼 것인지가 최대 쟁점인 가운데 재산분할액을 '얼마나' 낮출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에 대해서는 노 관장 측이 최 회장이 재산분할 제도의 취지와 우리 법 및 판례의 태도를 무시하고 있다고 맞서는 등 강경하게 나오고 있는 부분이다. 노 관장 측은 기존 판례와 재판 실무가 혼인 중 취득한 재산을 부부의 공동재산이라고 전제하고 각자 기여분에 따라 재산을 분할한 점에 비춰볼 때 항소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장에 시간은 벌긴 했지만 추후 1~2년 뒤에는 실제로 큰 금액의 재원을 마련해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최 회장은 지난 6월 말 기준 SK㈜ 지분 17.90%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지주회사인 SK㈜를 통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SK㈜는 주력 계열사인 SK텔레콤(30.57%), SK이노베이션(36.22%), SK스퀘어(31.50%), SKC(40.6%)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간 업계에서는 최 회장의 현금성 자산이 3000억원 안팎인 점을 볼 때 2심 판결 확정시 지분 매각이 불가피할 것으로 봤다. 이대로라면 그룹 지배구조나 경영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다.
비상장사인 SK실트론의 지분 매각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이는 양도소득세 등의 부담이 있다. 최 회장이 SK실트론 지분(29.4%)을 총수익스와프(TRS) 방식으로 간접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신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최 회장이 이혼 소송을 해결하기 위해 지분을 일부 양도하거나 매각해야 한다면 최 회장 일가의 지분율은 국내 지배력 기준인 20%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며 "한국 최대 대기업 중 하나가 적대적 인수합병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법원이 심리를 이어가기로 하면서 SK그룹에게 시간이 생겼지만 어떤 판결을 내릴지에 따라 최 회장이 SK 보유 주식 상당 부분을 매각해야 할 상황을 마주할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짚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