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타이틀 다는 여성 CEO들.. 경영 전진 배치 '눈길'
식품·화장품·유통 등 ‘경박단소’ 산업에 치중해 아쉬워
자본시장법 개정 이후 여성 임원 늘었지만 ‘갈 길' 멀어
연말을 맞아 대기업 인사가 활발히 진행되는 가운데 여성 경영인들의 전진이 두드러지고 있어 주목된다. 다만 여성 경영인들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식품·화장품·유통 등 이른바 '경박단소(輕薄短小, 가볍고 얇고 짧고 작음)' 사업에만 치중된 모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CJ그룹은 지난 18일 정기 임원인사에서 그룹 내 두 번째 여성 CEO를 선임했다. CJ ENM의 커머스 부문 수장으로 선임된 이선영 대표다.
이선영 대표는 앞서 CJ ENM의 커머스 부문(CJ온스타일) 사업총괄을 맡고 있던 인물이다. 홈쇼핑업계가 TV 시청 수요 감소, 고물가에 따른 소비 위축 등으로 부진을 겪고 있는 가운데서도 '미디어 커머스 큐레이션 플랫폼' 전략을 통해 위기를 비교적 잘 극복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모바일과 TV를 잇는 '원(one)플랫폼' 전략을 바탕으로 신규 카테고리와 브랜드를 발굴해 회사 경쟁력을 높였다는 성과를 인정받았다.
실제로 지난 8월에는 유명인을 앞세운 초대형 모바일 라이브쇼 신규 프로그램을 잇달아 론칭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에 CJ온스타일은 올해 3분기 매출 3338억원, 영업이익 9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1.2%, 29.6% 증가하는 성적을 기록했다.
CJ그룹이 여성 경영인의 성과를 인정하고 인재 등용에 성별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는데, 특히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수행하며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CJ올리브영에는 이선정 대표를 유임해 주목받았다.
이선정 대표는 2022년 승진 당시 'CJ그룹 최초 여성 대표'와 ‘CJ그룹 최연소 대표' 타이틀을 얻었던 인물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올리브영의 상품 경쟁력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선정 대표 지휘 아래 올해 CJ올리브영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매출 4조' 클럽에 입성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3조5214억원으로, 그룹 내 핵심계열사로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모습이다.
동원그룹도 지난달 31일 동원CNS에 이영란 신임 대표를 선임했다. 동원그룹 계열사 첫 여성 대표다. 동원CNS는 영업현장의 판매직원들을 밀착 관리하는 계열사로, 이영란 대표가 1992년 입사한 이후 유통영업, 판촉교육 등을 총괄해온 '현장 전문가'로서 중책을 맡게 됐다.
지난 21일 진행된 LG그룹 정기 임원인사에서는 LG생활건강 이정애 대표가 유임됐다. 이정애 대표는 2022년 12월 LG생활건강 대표 자리에 올랐다. 당시 4대 그룹 최초 비(非)오너일가 여성 전문경영인인데다 18년 동안 최장수 CEO 자리를 지켜온 차석용 부회장이 용퇴한 자리에 오르게 돼 주목을 받기도 했다.
특히 당시 LG생활건강이 코로나19 여파로 중국과의 거래가 봉쇄되면서부터 2021년 하반기부터 실적 하락세를 걷고 있어 '구원투수'가 필요하던 시점이었기에 이정애 대표의 역할이 막중한 상황이었다.
아직까지는 중국의 수요 부진으로 화장품 분야에서 고전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올해 중국 외 해외 시장에서 성과를 보이면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고 효율화를 이뤄낼 것으로 기대가 모이고 있다.
아직 정기 인사를 실시하지 않은 기업들의 여성 CEO 유임 및 선임 여부 등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대표적인 여성 CEO들로는 이커머스 업계에서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는 11번가 안정은 대표, 한국 AI(인공지능) 분야 성장을 이끌 정신아 카카오 대표와 최수연 네이버 대표 등이 있다.
다만 여성 CEO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철강, 반도체, 전자, 석유화학, 중공업 등 주요 '중후장대' 산업에서는 여성 CEO들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와 최수연 네이버 대표가 국내 대표 IT기업 수장을 맡고 있지만 이들 기업 역시 각각 창업자인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의 역할 비중이 더욱 큰 편이다.
국내 대기업에서 여성 임원 비율은 늘어나고 있다. 지난 9월 기준 위민인이노베이션(WIN)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500대 기업 여성 임원 비중은 지난 2019년 3.9%에서 올해 7.3%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2020년 자본시장법 통과 이전에는 3%대였으나 여성 임원 비중이 법 개정 이후인 2021년 5.5%, 2022년 6.3%, 2023년 7%에 이어 올해도 상승세를 보인 것이다. 새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상장사 이사회를 특정 성(性)이 독식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최근 기업에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이 확산됨에 따라 그 일환으로 여성 임원을 늘리는 추세이기도 하다. ESG 경영이 '필수'로까지 자리 잡는 가운데 여성 임원 확대를 통한 여성 리더십 강화는 성에 따른 차별을 타파하고 사회적 책임, 투명한 지배구조를 실현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숫자만 늘리는 '생색내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WIN과 리더스인덱스가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여성 등기 임원의 증가율이 더욱 가파른데, 증가한 등기 임원은 대부분 경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없는 사외이사였다. 사내이사 비중은 상대적으로 크게 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대기업의 여성 임원 증가는 분명히 나타나고 있긴 하나 의무적인 성격도 있다"며 "아직 기업 CEO도 손에 꼽는 상황인데,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기업에서 여성 임원 후보자를 양성하기 위한 장치들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