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이슈 불구하고 경기 침체 의식한 듯

한국은행이 11월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베이비 컷(기준금리 0.25% 포인트(p) 인하)을 단행했다. 시장에선 환율 이슈 탓에 이번달 금통위에서 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으나, 예상을 깨고 통화정책을 완화한 것이다. 

28일 한국은행은 금융통회위원회 본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종전 대비 0.25%p 내린 3.00%로 결정했다.

금통위는 2022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기준금리를 7회 연속으로 인상했다. 이후 지난해 2월부터 8월까지 기준금리를 13회 연속 동결하며 3.50%를 유지했다. 10월에 이어 이번달 금통위에서도 기준금리 0.25%p 인하하며 금리는 두달 만에 0.50%p 낮아졌다.

당초 시장에선 환율 이슈 탓에 11월 금통위가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주 초반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웃돌았기 때문이다. 달러 힘이 강하고 원화가 약한 상태에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게 되면, 투자자 입장에선 투자 매력이 떨어지고 결국 높은 이율을 찾아 나서는 이들 탓에 외화가 이탈될 수 밖에 없다.

외화 여건이 불확실한 가운데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를 결정한 건 그만큼 내수가 침체가 우려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날 한국은행은 금년 및 내년 성장률을 각각 2.2% 및 1.9%로 전망했다. 이는 8월 전망치(2.4%, 2.1%)를 밑도는 수준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통위 후 기자간담회에서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지만, 물가 상승률이 안정세를 보이고 가계부채 증가세 둔화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성장의 하방 압력이 증대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금통위 참석 위원들은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해 경기 하방 리스크를 완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대외 여건에 대해 “세계 경제는 완만한 성장세를 유지했으나, 미국 신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에 따른 경기 및 인플레이션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의 경우, 부동산과 소비 부진, 수출 둔화로 인해 당초 예상보다 낮은 성장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총재는 “대내적으로 국내 경제 성장 흐름이 예상보다 약화되었다”며 “내수 회복이 더디고, IT 부문과 주력 업종에서의 경쟁 심화로 수출 증가세가 둔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석유류 가격 하락 등으로 전년 동월 대비 1.3% 올랐다”며 “인플레이션 상승률은 안정적인 모습이라고”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환율 상승이 물가에 상방 압력을 줄 수 있지만 국제유가 등 공급 측 요인 완화와 수요 압력이 크지 않아 물가는 안정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의 경우 거시건전성 정책효과로 둔화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며 “향후 통화정책은 성장, 물가, 금융 안정 측면의 상충 관계를 면밀히 검토해 추가 금리 조정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해외에선 한국은행의 금리인하가 예상을 깼다는 반응이다. 아키노 후쿠다 무디스 수석 대외 커뮤니케이션 전략가는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한 것은 예상 밖이었다”고 평가했다.

후쿠다는 “특히 금통위가 지속적으로 가계부채 문제를 포함한 금융 안정성을 우려해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며 “최근 원화 약세와 미국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금리 인하는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기준금리 인하가 경제에 필요한 활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올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간신히 역성장을 면했다. 경제 부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금리 인하가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국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국내외 수요 부진을 지적했다.

후쿠다는 “소비자 지출 감소와 낮은 기업 신뢰도로 인해 국내 수요가 약화되고 있으며, 수출 부진 역시 경제 성장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귀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국의 관세 인상과 미중 무역 마찰 재개로 공급망과 상품 흐름에 새로운 장애물이 생길 수 있다”며 “미국과 중국의 주요 교역국인 한국이 그 가운데 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4분기부터 안정화된 인플레이션 상승률도 금리 인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9월과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각각 전년 대비 1.3%를 기록했다. 이는 2021년 1월 이후 최저치다. 특히 식료품 가격 하락과 교통비가 감소했으며, 핵심물가 상승률 역시 2021년 9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후쿠다는 “2025년 1분기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국은행의 중기 목표인 2%에 가까워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부동산 시장에선 이번 금리 인하에도 실거래 약세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주택담보대출 중심의 가계부채 증가폭은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9월 전체 금융권의 가계대출 규모는 8월 대비 5조3000억원 증가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센터장은 “9월부터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를 시행했고, 금융권의 가계대출 총량관리, 12월 수도권의 디딤돌론 대출 등 여신규제가 강화되며 수도권 주택가격이 약보합을 보이고 거래량이 크게 꺾이자 부동산시장 불안보다는 경기둔화 우려에 방점을 찍어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함 센터장은 “2024년 내는 겨울 계절적 비수기에 금융권 여신 태도도 보수적일 전망이라 2차례 걸친 연이은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주택 거래시장의 숨 고르기와 수요자 관망이 계속될 전망”이라며 “연말 주택 거래 총량은 2023년 말 수준까지 감소하고 가격흐름도 보합 또는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 총재는 최근 국무총리 임명 가능성이 불거진 것에 대해 “경제상황이 녹록치 않은 만큼 중앙은행 총재로서 맡은 바 현재 업무에 충실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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