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성 확보·책임경영 내세워 오너 3·4세 경영 전면에
'성과 없는 고속 승진' 비판..사원 대비 15년 이상 빨라
경영능력 '의문'.. 신사업 중심 '체질개선' 숙제 풀어야
국내 기업들이 경기 침체로 수익성 확보에 사활을 거는 가운데 위기대응을 위한 쇄신 인사 단행으로 오너 3·4세를 경영 전면에 배치했다.
'젊은 피'를 수혈해 침체된 기업 내 새 바람을 불어넣고 책임경영을 강화하며 신사업으로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의 반영한 것으로, 승계 속도가 빨라지는 모습이다. 다만 성과 검증이 없이 이뤄진 '기습 인사'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먼저 롯데그룹은 최근 유동성 위기 논란을 잠재우고자 오너 3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설장실장 겸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한 지 1년 만에 한 계단 더 오른 고속 승진이다.
현재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 대부분이 영업적자를 내는 등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가운데 신 부사장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진 상황이다. 그룹의 위기를 타개하는 동시에 바이오 분야 신사업 발굴, 핵심 사업의 글로벌 시장 개척 등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범 LG 기업인 LS그룹과 LX그룹에서도 오너일가의 빠른 승진이 이뤄졌다. 먼저 LS그룹은 오너 3세 구동휘 LS MnM 부사장을 LS MnM의 CEO(최고경영자)로 선임했다. 지난해 부사장으로 승진한 지 1년 만에 대표 자리까지 올랐다. 경영 전면에 오너 3세를 배치한 모습이다.
향후 구동휘 부사장은 이차전지 양극재의 핵심 소재를 생산할 '전기차배터리소재(EVBM)'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추진해 LS그룹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은 배전반(배터리·전기차·반도체) 사업 중 배터리 소재 분야를 주도적으로 이끌 예정이다.
LX그룹 역시 구본준 회장의 장남인 구형모 LX MDI 대표가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앞서 구형모 부사장은 2022년 12월 LX홀딩스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신생 계열사 LX MDI의 초대 대표이사를 맡았는데 이번에 사장으로 승진하며 그룹 내 위상과 영향력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특히 LX MDI가 그룹 차원의 미래 준비를 위한 경영개발원 역할을 하는 곳인 만큼 그룹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발판을 다지는 동시에 승계 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식품기업에서도 경영 승계에 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해 오리온, 삼양식품(삼양라운드스퀘어) 등은 80년대 중후반~90년대 초중반 어린 오너 3세들이 승진한 데 이어 올해는 농심 오너 3세 신상열 상무가 전무로 승진했다. 신 전무는 1993년생이다.
특히 'K라면'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승진으로 주목받고 있다. 경쟁사인 삼양식품의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총괄(CSO) 전략기획본부장이 지난해 상무로 승진하며 삼양식품 신사업본부장을 맡은 바 있기 때문이다. 전 상무는 1994년생으로 신 전무보다 한 살 어려, 양사가 본격적으로 정면대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외에도 식품과 함께 화학사업을 영위 중인 삼양그룹은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의 장남이자 오너 4세인 김건호 삼양홀딩스 전략총괄사장을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소재)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화학2그룹장을 맡기는 인사를 단행했다.
기존 화학그룹을 화학1그룹과 화학2그룹으로 분리하되 김 사장에게 그룹의 핵심 사업을 맡긴 것이다. 지난해 말 전략총괄사장으로 승진하며 지주사의 미래 전략과 재무를 총괄해온 그는 이번 인사로 생산 분야까지 전적으로 담당하게 됐다. 최근 화학업황이 침체기를 겪는 가운데 스페셜티 사업 확장, 미래 전략 구상 등을 직접 이끄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이 위기 상황에 오너일가 자제를 경영 전면에 앞세우며 돌파구 마련에 나선 상황으로, 시장에서는 각 기업들의 분위기 쇄신을 위한 세대교체 발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오너일가 특권으로 이뤄진 고속 승진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구체적이고 뚜렷한 성과가 없이 이뤄지고 있는데다 일반 사원과 비교했을 때 승진 속도 차이가 확연히 크다는 지적이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지난해 12월 국내 자산 순위 100대 그룹에 재직 중인 총수일가 중 사장단에 포함된 199명의 이력을 살펴본 결과, 오너일가 자제들은 평균적으로 28.9살에 입사해 5.4년 뒤인 34.3살에 임원으로 승진하고 이어 7.8년 뒤인 42.1살에 사장이 됐다.
이는 한국CXO연구소에서 지난 7월 발표한 일반 사원의 임원 승진 평균 나이와 크게 차이난다. 한국CXO연구소가 상위 100대 기업의 지난해와 올해 반기 보고서를 비교해 퇴직임원으로 파악된 38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일반 사원은 처음 임원으로 발탁된 평균 나이가 49.6살이었으며 임원에서 물러난 평균 나이는 54.2살로 조사됐다. 임원으로 일한 평균 재직기간은 5.6년이었다.
즉, 오너일가의 첫 임원 승진 평균 나이(34.3살)가 일반 사원의 첫 임원 승진 평균 나이(49.6살)보다 15.3살이나 어리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초고속 승진으로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우려를 잠재우고 경영 승계 단계를 밟아나가기 위해서는 기업의 미래를 이끌 신사업을 중심으로 오너일가가 기업의 체질 개선을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오너일가 3·4세는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 중책을 맡으면서 부담감을 떠안게 됐다"며 "경영 능력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나오는 만큼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