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질주'.. SK·롯데·LG, CDMO 등 바이오 역량 강화 '속도'
R&D 투자 비용이 '발목'.. '희망' 본 롯데·LG 실적 개선 관건
'3세' 롯데 신유열·SK 최윤정 '전진배치'.. 경영능력 입증 주목
주요 대기업이 '새 먹거리'로 앞세운 바이오 사업에 더욱 힘을 줄 전망이다.
배터리, 철강, 석유화학 등 대부분 산업이 경기 불황으로 침체기를 겪는 가운데 바이오는 내년 사업 전망도 밝은 편으로, 장래성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 대기업은 오너 3세의 경영 성과와도 직결될 것으로 예상돼, 내년 각 사의 바이오 사업 추진 전략에 관심이 모인다.
지난 11일 대한상공회의소가 11개 주요 업종별 협회와 함께 실시한 2025년 산업 기상도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바이오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조선, 기계 업종과 함께 '대체로 맑음'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내년 미국 트럼프 정부 재출범과 관련해서도 바이오는 다른 산업보다 수혜를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생물보안법' 통과가 유력한 상황인데다 트럼프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기조, EU(유럽연합)·미국의 교체 처방 장려 등으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진출 기회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대기업들도 바이오 사업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는 추세다. 앞서 사업을 시작한 삼성과 SK뿐만 아니라 LG 역시 바이오를 3대 신성장동력으로 삼았으며 롯데도 그룹을 살릴 구원투수로 바이오를 낙점했다. HD현대도 바이오 사업을 본격적으로 키운다고 선언한 상태다.
먼저 대기업 바이오 계열사 중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압도적으로 시장 입지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CMO(위탁생산)·CDO(위탁개발)·CDMO(위탁개발생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수주잔고가 67억3800만 달러(9조4332억원·최소구매물량기준)에 달한다. 특히 지난달에는 유럽 소재 제약사와 총 9304억원 규모의 CMO 계약을 체결해 올해만해도 5조3000억원의 수주 성과를 냈다.
생물보안법과 관련해 법안 통과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관측에도 무게가 실린다. 중국 최대 유전자 분석업체 BGI그룹과 중국 대표 CDMO 기업 우시바이오로직스 등이 미국으로부터 안보 우려 기업으로 규정돼 판매가 제한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 빈틈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차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이선경 SK증권 연구원은 "연이은 대규모 수주는 글로벌 파트너사로부터 글로벌 CMO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안정적인 매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 지표"라며 "생물보안법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CMO·CDMO 사업의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텐데, 단기 매출 영향은 없으나 추가 수주 계약에 따른 중장기 성장에는 긍정적"이라고 진단했다.
이외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자회사로서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전개 중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비중도 커질 전망이다. 약제비가 비싼 바이오의약품을 바이오시밀러로 대체하고자 하는게 미국 트럼프 정부의 보건복지 분야 핵심 정책이기 때문이다.
SK그룹도 바이오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SK의 바이오 사업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이끄는 지주사 SK(주) 아래 SK바이오팜과 SK팜테코,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이끄는 SK디스커버리 아래 SK케미칼과 SK바이오사이언스, SK플라즈마 등 총 5개의 계열사가 담당하고 있다.
이 가운데 SK바이오팜과 SK바이오사이언스를 중심으로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 중이며, 특히 SK바이오팜은 최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이 주도적으로 사업을 이끌고 있다. 최 본부장은 올해 인사에서 SK그룹의 미래 성장 사업 발굴 조직을 추가로 담당하게 됐다. SK(주) 내에 성장 지원 조직을 신설하고 그 조직의 '성장 지원' 담당을 최 본부장이 겸직하게 된 것이다.
이에 최 본부장이 SK바이오팜을 이끌면서 바이오 사업을 그룹의 성장동력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SK바이오팜은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4개 분기 연속 흑자를 내고 있다. 올해 3분기 연결기준 SK바이오팜의 매출액은 1366억원, 영업이익은 193억원이다. 자체개발 뇌전증 신약인 '세노바메이트(미국명 엑스코프리)'의 미국시장 판매가 호조세인 덕분이다.
SK바이오팜은 내년부터 중국과 일본 뇌전증 치료 시장에 진출하면서 추가 매출 성장을 노린다는 계획이다. 현재 중국 시장은 글로벌 투자사 6D 캐피탈과 설립한 합작법인 이그니스 테라퓨틱스가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에 세노바메이트의 NDA를 제출한 상태로, 내년에 본격적으로 허가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다만 SK그룹의 다른 바이오 한 축인 SK바이오사이언스는 실적이 아쉬운 상황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1107억원이나 영업손실은 877억원이다. 4가 세포배양 독감 백신인 스카이셀플루, 대상포진 백신 스카이조스터 등 자체 백신 판매 사업을 활발하게 하고 있으나 막대한 투자 비용이 영업손실로 이어진 모습이다. 실제로 SK바이오사이언스가 올해 3분기에 투자한 R&D 비용은 매출 대비 49.9%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SK바이오사이언스는 주요 백신에 대한 글로벌 인허가 가속화를 통해 공격적으로 해외 판로를 개척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인도네시아 식품의약감독국(BPOM)으로부터 스카이셀플루 품목허가를 최종 승인받기도 했다. 오너 3세인 최 본부장이 SK바이오팜을 이끌면서 그룹의 성장 지원 역할까지 맡으면서 향후 SK바이오사이언스와 시너지를 내며 그룹 바이오 사업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너 3세가 바이오 사업에 승부를 거는 기업은 또 있다. CDMO 사업 확대를 내건 롯데그룹이다. 롯데는 2022년 6월 롯데바이오로직스를 출범하며 본격적으로 바이오 사업 영역을 확대를 꾀하는 중으로, 그룹 차원에서 3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롯데바이오로직스에 총 5732억원을 지원하는 등 전폭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대기업 중 바이오사업 후발주자이기 때문에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수주량이 부족해 아직 실적은 낮은 편이다. 올해 2분기 매출 1537억원, 순이익 22억원을 기록했는데 이어 3분기에는 200억원 가량의 순손실을 내며 적자전환했다. 송도 캠퍼스 설립 등으로 인한 적자전환이라는 게 롯데바이오로직스 측의 설명이다.
실제로 롯데의 바이오 투자 규모는 매우 큰 편이다. 현재 송도 캠퍼스 1공장을 착공 중으로, 2030년까지 4조6000억원을 들여 3개 공장을 지어 메가 글로벌 수준의 바이오 캠퍼스를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공장 착공이 모두 완료되면 총 36만ℓ 규모의 항체 의약품 생산 시설을 갖추게 된다.
롯데는 롯데바이오로직스를 그룹의 새 성장동력으로 삼고 전폭적인 지원을 위해 이번 인사에서 제임스 박 전 지씨셀 대표를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신임 대표로 선임했다. 지씨셀은 세포·유전자치료제 전문 기업으로, 지씨셀의 대표였던 제임스 박 신임 대표는 글로벌 제약사 머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을 거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글로벌영업센터장(부사장)을 역임한 바이오 전문가다.
이 가운데 신동빈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부사장의 역할론도 크게 대두되고 있다. 이미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에서 글로벌사업 부문을 이끌고 있던 가운데 내년부터는 부사장 직함을 달고 본격적으로 신사업과 글로벌 사업을 진두지휘하게 됐기 때문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추구하는 CDMO 사업은 글로벌 수주가 중요한 부분인인 만큼 시장 개척이 신 부사장의 큰 과업이 될 전망이다. CDMO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후발주자가 경쟁력을 갖추는 게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지원 흥국증권 연구원은 "CDMO 기업의 핵심 역량은 생산능력과 다국적 제약사와의 트랙 레코드"라며 "트랙 레코드는 후발주자가 바이오의약품 CDMO 시장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장벽"이라고 진단했다.
LG그룹은 LG화학을 통해 바이오 사업 추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기존 기초화학 부문이 업황 불황으로 위기를 겪자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3대 신성장동력으로 친환경 소재, 전지 소재, 신약을 내세우면서 위기 돌파에 나섰는데, 그 가운데 신약 개발을 담당 중인 생명과학사업본부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특히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가 개발한 당뇨병 치료제 '제미글로'는 지난해 144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등 판매 호조세를 보였다. 관련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23%에 달한다. LG화학은 제미글로를 비롯해 성장호르몬, 소아마비백신 등 주요 제품의 서장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LG화학 역시 바이오 사업을 근래 들어 시작한 만큼 R&D 투자비용을 늘리면서 영업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올해 3분기까지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가 쓴 누적 R&D 비용은 332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4% 늘었다. 이에 올해 3분기에는 영업손실 10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당장은 영업이익이 높지 않지만 향후 바이오 사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LG화학은 대규모 투자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신약 파이프라인의 퀄리티 제고와 글로벌 임상개발 및 사업을 가속화하고 신약개발 R&D 투자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사업 전망을 보고 국내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사업에 진출하는 모습"이라며 "다만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바이오 사업을 추진한다고 '장밋빛 전망'이 펼쳐질 것은 아니라고 보이기 때문에 기술적 차별화로 확실한 경쟁력을 갖추는 게 가장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