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탄핵정국 당장 여파 없어.. 권력공백 장기화 시엔 '우려'
방산 빅4, 계약 이행·추가 수주·공장 건설 등 계획 예정대로 추진

현대로템 K2 전차. 현대로템 제공
현대로템 K2 전차. 현대로템 제공

내년 1월 미국 트럼프 정부 재출범을 앞두고 국내 방산기업들이 '호재'를 맞이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지만 국내 비상계엄 여파로 중앙정부 공백이 우려가 커지면서 분위기가 반전된 양상이다. 당장 큰 여파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는 가운데 국내 방산 빅(big)4는 정부의 조속한 안정화를 예의주시하며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비상계엄·탄핵정국 여파로 업계에서는 당장에 큰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기도 했다. 연내 계약 체결 예정이었던 현대로템과 폴란드 간 K2 전차 2차 계약에 차질이 생겼다는 관측이 나왔다. 당초 이달 중 계약 완료를 목표로 추진 중이었으나 계약이 길어지던 차에 비상사태로 중앙정부 공백이 생기면서 일정이 더 밀렸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에 대해 현대로템 측은 "현 사태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탄핵정국과 관련없이 원체 큰 규모의 계약 건인 만큼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아 일정이 예상보다 조금 지연됐다는 설명이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현지화 등 세부적인 협상 과정으로 계약 일정이 본래 예정보다는 늦어지긴 했으나 순차적으로 차질없이 진행 중"이라며 계약건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탄핵정국 여파가 당장에 K방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물론 업계 관계자들 역시 현재 대통령의 빈 자리와 향후 대통령 선거 일정 등의 불확실한 부분들이 남아 있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부 공백이 장기화 할수록 방산업계에 악영향이 있을 가능성은 높다고 입을 모은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당장에 탄핵사태 여파로 인한 계약 차질 등 피해는 없지만 방산업 특성상 해당 국가와의 계약에서 우리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권력 공백이 장기화 된다면 대외 신뢰도 하락 등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직접적인 타격이 있다고 말할 부분은 없으나 향후 탄핵 과정, 대통령 선거 일정 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상황이 불안정한 탓에 방산사업과 관련해 방한하기로 했던 각국 대통령, 총리 등은 일정을 취소한 상태다.

최근 방한한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본래 지난 4일 KAI(한국항공우주)의 경남 사천 사업장 방문 일정이 잡혔지만 이뤄지지 못했다. 당초 자파로프 대통령이 KAI의 한국형 기동헬기 생산 현장을 둘러볼 계획이었으나 비상계엄 다음날 조기 귀국한 것이다.

K방산에 관심을 보였던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도 국내 업체들과 비공개 면담 일정을 취소했다. 일정은 무기한 연기된 상태로, 사태 수습 후를 기대해야 하는 상태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에서도 권력 공백을 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폴란드 군사 전문지 ZBiAM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석종건 방위사업청장이 지난 9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 파베우 베이다 국방부 차관과 긴급 회담을 가졌다. 현지 매체는 양측이 K2 전차 2차 계약을 중점 논의했으며 조속한 계약 체결에 협력한다는 의사를 표했다고 보도했다.

이밖에도 방사청은 이날부터 오는 18일까지 이틀간 국내 주요 방산업체의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 만찬 회동을 열기로 했다. 업계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현 시국과 관련해 한국의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인한 방산 수출 악영향 등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첫째 날에는 방산 대기업 9곳이 참석한다.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 주원호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대표, 강구영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표이사 등이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오른쪽)과 K10 탄약운반차.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오른쪽)과 K10 탄약운반차.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불안정한 상황이지만 국내 방산업체들은 기존에 추진 중인 사업, 로드맵 등을 예정대로 수행해나간다는 계획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폴란드 최대 민간 방산업체 WB그룹과 합작 공장을 내년 하반기에 짓기 위한 준비를 진행 중이다. 여기에 앞서 주요 수출국인 루마니아에서도 내년 상반기 K9 자주포 등을 생산할 공장 설립을 추진 중으로, 방산 수요가 높은 유럽 내 현지 생산 거점을 마련하는데 속도를 내고 있다.

이밖에도 지난 8월 호주 질롱에 완공한 'H-ACE'를 통해서도 무기 생산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H-ACE는 한국 방산업체 최초의 해외 생산기지 설립 사례로, 이곳에서 AS9 자주포와 AS10 탄약운반차 등이 양산되고 있다. 레드백 궤도형 장갑차도 추후 생산될 예정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현지 생산 시설을 짓는 것이 글로벌 방산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며 "현지 국가와 관계도 돈독히 하면서 서로 이점을 얻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로템은 최근 페루 육군 조병창과 K2 전차 및 K808 차륜형 장갑차 등 지상무기에 대한 총괄 협약을 체결했다. 총괄 협약은 페루 육군 조병창의 획득 절차상 향후 진행될 개별 실행계약 체결 이전에 하는 절차로, 지상무기 공급 사업의 총 물량과 사업 규모를 결정하고자 체결됐다. 향후 현대로템이 지상무기체계 전반을 공급할 전망이다.

KAI는 지난 9일 미국 보잉사와 'B737맥스 항공기 미익 공급 계약'을 맺었다. 지난달에는 페루 국영 항공전문 기업인 SEMAN과 KF-21 부품 현지 공동생산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일단 KAI는 페루 공군의 전투기 획득사업에 다목적 전투기 FA-50과 차세대 전투기 KF-21로 구성된 패키지를 제안한 상태다. 페루는 노후 항공기 교체를 위한 차세대 전투기 사업 후보 기종으로 KF-21과 FA-50을 검토 중으로, 만일 페루가 KF-21과 FA-50을 함께 도입하면 두 기종을 같이 수입한 첫 국가가 된다. KAI는 페루를 국산 항공기의 중남미 시장 개척을 위한 교두보 국가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LIG넥스원은 지상방산에 한정됐던 통합전투체계 사업을 함정 및 잠수함으로 확장하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최근 HD현대중공업과 함정용 지휘통제, 전자전, 통신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LIG넥스원 전투체계가 탑재되는 첫 대형 함정이 사용될 국가는 다른 방산3사도 주목하고 있는 페루다. HD현대중공업과 페루 해군이 공동 건조하는 호위함(3400t급)과 원해경비함(2200t급)에 설치될 통합전투체계 대부분이 LIG넥스원 제품으로 채워지게 된 것이다.

이밖에도 앞서 지난 9월 이라크 국방부와 체결한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궁-Ⅱ'의 공급 계약도 차질없이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권력 공백에도 K방산이 문제 없이 수출 성과를 내고 체결한 계약을 마칠 수 있도록 방사청 등 정부 기관들이 본래보다 더 신경을 써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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