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경기 침체와 업황 악화, 고물가에 따른 수요 위축 등 경영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실적 부진의 길을 걸었다.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 한 해를 보낸 가운데 내년을 앞두고 위기 대응을 위한 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위기 돌파에 나서고 있다. '위기 속 기회'라는 전환의 시기를 맞은 지금, 주요 기업 총수의 한 해 경영 행보를 돌아보고 당면 과제를 알아본다. 편집자주
K푸드, K뷰티, K컨텐츠 등 한국의 'K문화'를 이끄는 CJ그룹이 올해 고물가와 소비위축 장기화라는 어려운 시기를 지나온 가운데 본격적으로 본업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 이와 관련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올해 2월 장고 끝에 늦은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던 CJ그룹은 2025년 정기 임원인사는 9개월 만인 11월에 실시하면서 빠르게 대기업 인사 포문을 열었다.
특히 공석이었던 CJ그룹 경영지원 대표 자리에 정통 'CJ맨'인 허민회 대표를 앉히면서 수익성 개선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허 대표는 그간 CJ푸드빌과 CJ올리브네트웍스, CJ오쇼핑, CJ ENM 등에서 구원투수 역할을 한 그룹 내 '재무통'이다. 최근 CJ CGV 대표 시절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영화관이 침체기인 상황에서도 수익성 개선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밖에도 CJ ENM 커머스 부문, CJ CGV 대표 등 주요 자리를 교체했으며, 이에 앞서 정기 임원인사 실시 전부터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CJ제일제당과 CJ대한통운의 대표도 교체했다. 그룹 내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톡톡히 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CJ올리브영은 이선정 대표를 유임시켰다.
인사 폭은 크지 않았지만 이재현 회장의 칼날이 매서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룹의 핵심 가치인 '온리원(Only one)' 정신을 재건하는데 초점을 맞춰 '성과'에 따라 주요 계열사 대표들을 새롭게 선임했기 때문이다. K푸드와 물류, K뷰티, K컨텐츠 등 본업 경쟁력 강화에 집중한 모습이다.
이같이 이 회장이 '본업 경쟁력 강화'를 내건 이유는 CJ그룹의 올해가 유독 '다사다난'한 탓으로 풀이된다. 그룹의 역점 사업이었던 CJ라이브시티 사업이 좌초된데 이어 핵심 계열사들의 실적이 약화된 것이다.
특히 CJ제일제당은 내수 시장이 위축되면서 본업인 식품사업의 실적이 기대치보다 낮아졌다. CJ제일제당 식품사업부의 올해 3분기 영이익은 전년 동기(2341억원) 대비 31% 줄어든 1613억원에 그쳤다.
또 다른 축인 CJ ENM은 2022년 초 인수한 피프스시즌(옛 엔데버콘텐트)이 올해 3분기까지 누적 859억원의 순손실을 내는 등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이에 영화사업부의 경우 2년 연속 구조조정 칼바람도 부는 중이다.
CJ ENM의 커머스 부문인 CJ온스타일은 케이블 TV업체와의 갈등을 빚으며 일부 채널을 대상으로 '블랙아웃(송출 중단)'을 선언한 상태다. 홈쇼핑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 송출수수료가 과도하다는 입장으로, 협상이 원만히 진행되지 않자 송출 중단까지 강행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물론 CJ그룹 내에서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곳들도 있다. CJ올리브영이 대표적으로, 올해 명실상부 뷰티업계 1인자로 등극하면서 연매출 4조원 돌파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현재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3조5214억원으로, 전년 동기(2조7971억원) 대비 26%나 성장한 상태다. 올해 매 분기마다 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데 이어 4분기에도 올리브영페스타 등을 통해 4조원을 넘길 전망이다.
CJ제일제당 외 식품계열사인 CJ푸드빌의 약진도 돋보였다. CJ푸드빌은 한 때 매각 대상일 정도로 영업손실이 이어졌지만 올해 뚜레쥬르의 브랜드를 8년 만에 재단장하고 해외 진출 공략에 속도를 내면서 실적이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해외 시장 비중을 늘린 덕에 올해 3분기까지 CJ푸드빌의 누적 매출은 6538억원으로 전년 대비 7.1% 증가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82억원으로 33.6%나 늘었다.
이같은 성공 사례처럼 이 회장의 '본업 경쟁력 강화' 주문이 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CJ올리브영의 승승장구와 CJ푸드빌의 성장세에 이어 CJ대한통운과 CJ제일제당, CJ ENM 등 주요 계열사의 반등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 사촌 기업인 신세계그룹의 SSG닷컴과 CJ대한통운의 협업도 더욱 확대될 예정인 가운데 주 7일 배송 갈등 등 해결해야 할 숙제도 남아있다.
내년에도 내수 위축과 고물가, 고환율 등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CJ그룹을 둘러싼 경영환경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는데 당면 과제들을 해결하고 본업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CJ제일제당은 유럽과 미국 등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생산시설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헝가리에서는 부다페스트 근교 두나버르사니에 공장 부지를 확정하고 설계에 들어갔다. 미국에서는 냉동식품 자회사인 슈완스가 사우스다코타주 수폴스에 오는 2027년 완공을 목표로 '북미 아시안 푸드 신공장' 건설에 나섰다.
CJ대한통운 역시 해외 물류 역량 확대에 속도를 내는 중으로, 미국 조지아주 게인즈빌의 약 2만5000㎡ 규모 콜드체인 물류센터를 건설하고 있으며 인도, 동남아시아, 중동 등지로도 확대를 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경기 불황에 공사까지 좌초되면서 CJ가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며 "CJ올리브영의 성공 사례처럼 K문화를 선도하는 국내 대표 문화·유통기업으로서의 본 위상을 다시 한번 살리는 기회가 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