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히 진행할 것, 재판 협조해달라"
헌법재판소가 2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첫 변론준비기일을 열고 본격적인 심판 절차에 들어갔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첫 변론준비기일은 양측 대리인이 참석해 향후 재판의 쟁점과 증거를 40여분간 논의한 뒤 마무리됐다.
심리는 쟁점 정리를 주도할 수명재판관인 이미선·정형식 헌법재판관이 진행했다. 주심은 정 재판관이다.
윤 대통령 측은 국회의 탄핵소추가 적법한지 여부부터 앞으로 재판에서 따지겠다고 밝혔다. 이어 송달 문제도 지적했다.
정 재판관이 윤 대통령 측에 "탄핵심판 청구의 적법 요건을 다툴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윤 대통령의 대리인 배보윤 변호사는 "네, 있다"며 "구체적인 건 답변서로 제출하겠다"고 답했다.
탄핵심판 청구의 적법성을 다투겠다는 것은 지난 7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에 따른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되자 국회가 14일 유사한 내용의 탄핵소추안을 다시 의결한 과정이 적법한지 여부부터 따져묻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다시말해 탄핵심판의 출발점부터 따지겠다는 것이다.
송달 과정과 관련해 윤갑근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의) 송달이 적법했냐 하는 부분에 대해 (말하자면) 적법하지 않다"며 "오늘 피청구인 측이 소송에 응했으므로 하자가 치유됐느냐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고 했다.
윤 대통령 측은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계엄이 선포됐고 포고령이 발표됐다는 정도의 표면적 사실관계는 인정했다.
다만 계엄 선포의 경과, 국무회의 회의록과 포고령 발표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은 "설명할 내용이 있다"며 추후 정리해 밝히겠다고 했다.
대통령 측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통해 밝힌 내용에 대해 "그게 전부가 아니다"라며 이 부분 역시 구체적으로 서면을 통해 보강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대통령 측은 계엄 선포 과정에 헌법과 법률 위반이 없었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위반은 아니라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정 재판관은 이날 탄핵심판 쟁점과 관련해 국회 탄핵소추 의결서상 소추 사유로 든 계엄 선포, 계엄사령부 포고령 1호 발표, 군대와 경찰을 동원한 국회 활동 방해, 군대를 동원해 영장 없이 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 위헌위법한 비상계엄 선포 관련 군대 동원한 행위 등 5가지의 헌법·법률 위반을 주장하는 게 맞는지 국회 측에 확인한 뒤 군대 동원 행위는 별도 사유로 보기보다는 다른 4개 사유를 판단하면서 같이 판단하고자 한다며 국회 측의 동의를 받았다.
사실상 탄핵심판 본안에 해당하는 대통령의 직무집행상 위헌·위법에 관해서는 4가지로 정리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셈이다.
다만 국회 측은 이에 더해 계엄군이 중앙선관위 직원들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한 내용도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측은 이에 관해 "소추 의결서를 기준으로 진행하는 게 맞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정 재판관은 "휴대전화를 압수했다는 게 증거에 의해 인정이 된다면 소추 사유 확장이 아니라 특정이라고 볼 수 있다"며 "완전히 다른 부분에 대해 한다면 (인정이) 안 될 것이고 적절히 판단하겠다"고 정리했다.
국회 측은 이날 검찰과 경찰, 군검찰이 지닌 피의자들의 구속영장 청구서, 피의자 신문조서 등 서류를 헌재가 각 기관에 요구(촉탁)해달라고 요청했다.
국회 측은 헌재에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과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 등 증인 15명을 우선 신청했다. 헌재는 평의에서 논의한 뒤 채택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재판 진행과 관련한 논의도 있었다. 윤 대통령 측은 "소추인 측에 비해 변호인단(대리인단) 수도 적고 저희가 충분히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저희 입장을 고려해서 기일을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정 재판관은 "피청구인 요구 사항을 충분히 반영해서 심리를 진행할 것"이라면서도 "그 대신에 협조를 해주셔야 한다. 필요 이상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안 하시거나 이런다면 그거에 대해 제재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대통령 탄핵 사건이 어떤 사건보다도 중요하다"며 "앞 사건부터 처리하는 게 아니라 가장 시급하고 빨리해야 하는 것부터 하는 것"이라고 했다.
헌재는 다음 변론준비 기일을 다음 달 3일 오후 2시에 열기로 했다. 이미선 재판관은 "기일이 촉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사건 탄핵심판이 국가 운영과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의 심각성, 중대성을 고려해 기일을 정했다"고 했다.
한편 이날 서울 종로구 헌재 앞에서는 탄핵 찬반 단체가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오후 1시 기자회견을 열고 “계엄 선포가 헌법 절차와 내용을 준수하지 않은 내란 행위임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며 “헌재는 조속한 심리를 거쳐 윤석열 대통령을 즉각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에게 완전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헌법재판관 9명이 모두 임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즉시 재판관을 임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상행동의 기자회견 후 탄핵을 반대하는 ‘탄핵반대범국민연합’도 같은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시간 엄마부대 등 보수단체도 헌재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소추를 기각할 것을 촉구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이제항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