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기업들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과 경제 변동성에 대비해 발 빠른 대응과 전략 수립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주력 수출 산업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 시장에서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새로운 도전에 나선 기업들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 편집자주
오는 20일(현지시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트럼프 2.0' 시대가 도래한다. 이 가운데 한국 수출의 22%를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이목이 집중된다.
2017년 '트럼프 1.0' 시대보다 더욱 강력한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로 인한 피해가 우려되는 한편 치열한 반도체 경쟁에서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입지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도 관심이다.
올해 반도체 시장은 HBM(고대역폭메모리)을 제외하고는 다소 먹구름이 낀 상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각 매출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범용 메모리의 가격이 하락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메모리 업체들이 자국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고 구형 D램 가격을 대폭 낮추고 있는 영향이 크다.
낸드플래시 부문에서는 매출 성장세를 견인하던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의 가격 하락도 전망되고 있다.
이에 HBM 시장을 높은 점유율로 차지하는 것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양사는 트럼프 2기 정부에서 달라지거나 추가되는 새로운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행히 양사 모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전인 지난해 12월 반도체 보조금 규모를 확정지었다. 이번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반도체 보조금 지원법 폐기나 축소가 예상되면서 수조원의 투자가 무색해질 가능성이 거론됐으나 한 차례 위기를 넘긴 셈이다. 삼성전자는 최대 47억4500만 달러(6조8778억원), SK하이닉스는 최대 4억5800만 달러(6634억원)를 받을 예정이다.
이는 미국 내 투자에 따른 결과로,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오는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에 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기지와 R&D(연구개발)센터를 건설하고 2028년 하반기부터 HBM 등을 생산할 예정이다.
관건은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 방향과 그에 따른 공급망 확보, 중국향 물량을 상쇄할 공급처 확대 등이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추가 부과 정책을 펼치려는 상황이며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격화하면서 중국 수출길도 막힐 수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구형 HBM 제품 일부를 중국 등에 공급해왔는데, 로이터는 소식통을 인용해 "삼성이 HBM 매출의 약 20%를 중국에서 창출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비중이 높지만 중국향 물량 축소시 공급처가 획일화될 우려가 있다.
이 가운데 업계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확정된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대신 미국 현지 기업에 대한 지원 비중을 늘리거나 동맹국을 대상으로 한 가드레일 조항 및 보조금 지원에 대한 추가 조건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밖에도 미국 마이크론, 인텔 등의 반도체 기업 입지가 다소 흔들림에 따라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향하는 시선도 더욱 따가워질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이렇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대응을 위한 전략 마련에 분주하다. 삼성전자는 대외업무를 담당하는 글로벌퍼블릭어페어스(GPA)팀을 실 단위로 승격했다. SK하이닉스도 그룹 북미 대외 업무 컨트롤타워인 SK아메리카스의 대관 총괄 자리에 폴 딜레이니 부사장을 선임하는 등 역량을 강화했다.
향후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자급률을 높이고 미국에서의 공장 가동 속도를 높이면서 확정된 보조금 지급을 앞당기는데 주력할 전망이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중 전략경쟁 격화와 탈중국 기조하에서는 새로운 소재·부품·장비 공급망과 생산·판매 지역 다변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