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수익률 구조 악순환 반복 우려
실물이전서비스...미래에셋 등 자금 몰려
퇴직연금 시장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도입 이후 적립금이 증가했고, 타깃데이트펀드(TDF)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지만, 여전히 초저위험 상품에 자금이 몰리는 모습이다.
2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4년 12월 말 기준 디폴트옵션 적립금은 전년 동기 대비 219% 증가한 40조원을 기록했다. 2022년 7월 디폴트옵션이 도입된 이후, 2023년 12월 말 기준으로 디폴트옵션 적립금은 약 12조5520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별도의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도 사전에 설정된 방식으로 자산이 자동 투자되는 제도로,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디폴트옵션의 대표 상품인 TDF는 투자자의 은퇴 시점을 기준으로 주식과 채권 비중을 조정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은퇴 시점이 멀수록 주식 비중을 높이고, 가까워질수록 채권 비중을 늘려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이에 금융사들은 각기 다른 운용 전략을 적용한 TDF 상품을 경쟁적으로 출시하며 시장 점유율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이달 11일 기준 국내 TDF 시장 전체 규모는 11조5000억원으로 알려졌다. 이중 미래에셋이 운용하는 TDF 자산은 4조3000억원으로 약 40% 점유율을 차지했다. 미래에셋운용은 ‘미래에셋ETF로자산배분TDF2040’ 등을 운용 중이다. 같은 기간 삼성자산운용은 TDF 자산으로 1조7543억원을 운용하고 있다.
디폴트옵션 적립금이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초저위험 상품에 자금이 과도하게 몰리고 있다. 퇴직연금의 본래 목적은 장기적인 자산 형성을 통해 안정적인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선호하면서, 수익률 상승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홍원구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12월 ‘퇴직연금 사업자의 역할: 퇴직연금 펀드 선택을 중심으로’이란 제목의 이슈보고서를 발간하며, “퇴직연금 적립금의 대부분은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운용되고 있어 실적배당형 상품, 즉 퇴직 연금 펀드의 수익률이 높아져도 전체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홍 연구위원은 “퇴직연금 사업자의 역할 강화를 위해서 앞서 제기된 퇴직연금 사업자의 이해상충적 행동의 정도와 심도에 대한 판단과 그러한 경향이 존재한다면 그에 대 한 개선 방향도 동시에 모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익률 개선을 위해선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한시적으로 가입하게 하거나 투자 비중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퇴직연금 수익률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24년 말 기준, 국내 퇴직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약 2.5%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소폭 상승한 수치이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특히, 원리금 보장형 상품의 비중이 전체 운용 자산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어, 수익률 제고에 한계가 있다.
미국의 경우, 401(k)와 같은 퇴직연금 제도를 통해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하고 있다. 해당 제도는 근로자가 급여의 일부를 세전 또는 세후로 적립하고, 이를 주식, 채권, 펀드 등 다양한 금융 상품에 투자하여 퇴직 이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연금 시스템이다. 지난해 미국 퇴직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약 8%를 기록했다. 이는 국내 수익률의 3배 이상 규모다. 호주 또한 슈퍼애뉴에이션(Superannuation) 제도를 통해 연평균 7%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디폴트옵션 적립금은 40조원을 넘어섰다. 가입자 수는 630만명 이상이다. 전체 가입자 중 84%는 가장 투자 위험이 적은 ‘초저위험 상품’을 택했고, 여기에 몰린 돈도 전체 적립금의 88%를 차지했다.
정부는 이런 원리금보장상품 쏠림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올해부터 위험 등급별 적립금 판매 비중을 공개하기로 했다. 또 기존 ‘위험’ 대신 ‘투자’를 강조해 상품 명칭을 변경할 계획이다.
한편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가 금융사 간 퇴직연금 경쟁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는 퇴직연금 가입자가 기존 금융사에서 다른 금융사로 자산을 이전할 때, 현금화 없이 실물 자산 그대로 이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기존에는 퇴직연금 자산을 이전하려면 먼저 자산을 현금화한 뒤, 새로운 금융사에서 다시 재투자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이 과정에서 시장 변동성에 노출되면서 손실 위험이 있었고, 시간과 비용도 상당했다. 그러나 이번 실물이전 서비스 도입으로 이러한 불편함이 해소되면서, 가입자들이 보다 자유롭게 금융사를 선택하고 자산을 이전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미래에셋증권 등 다양한 투자 상품과 우수한 운용 성과를 보유한 금융사들이 이번 서비스의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래에셋증권은 실물이전 서비스 도입 이후 한 달 만에 약 1000억원 이상의 자산과 3000여 개의 계좌를 수탁했다. 이전된 자산 중 ETF가 2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고객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 상품을 선택하는 흐름이 감지됐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도입 이후 ETF와 같은 투자 상품에 대한 고객들의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며 “당사를 찾아준 고객들에게 기존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중장기적 수익률 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