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포함 전체 PF 익스포저 231조원
위기 부르는 핵심 ‘낮은 자기자본비율’
‘제3자 보증’, ‘책임준공 확약’ 손대야
구조개선...저비용・고보증→고비용・저보증
‘사업성 평가’ 신뢰성 높일 공적 장치 필요
“대출 중심에서 자기자본을 넓히고, 단기 개발 중심 엑시트(exit)에서 개발자 영역을 종합적으로 확장시키며, 많은 정보를 듣고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정부의 세 가지 방향성이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2022년부터 전 세계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덩달아 오른 국내 금리에 원자재 값과 인건비 상승에 따른 공사비 급등 등의 요인이 건설부동산 경기 위축을 넘어 국내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과 전북 소재 제일건설에 이어 올해 초 시공능력평가 58위 신동아건설, 경남 2위 대저건설, 이달 24일 시공능력평가 71위 삼부토건까지 법정관리를 신청, 잇달아 위기를 겪고 있다.
그 중심에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있고, 사업 초기 위험도 높은 브릿지론에서 시작되는 위기가 건설부동산시장 경기 침체와 맞물리면서 금융권과 업계 전반에 여파를 미치고 있다.
이를 해결할 목적으로 정부는 지난해 11월 ‘부동산 PF 선진화 방안’을 내놨다. ▲자기자본비율 연동 규제 완화 및 수수료 할인, ▲CR 리츠에 현물 출자 시 양도세 이연 납부, ▲신탁사의 LP 유치 허용 등과 함께 ▲오는 2028년까지 자기자본비율을 20%로 끌어올리는 방안 등이다.
이중 자기자본비율을 20%로 높이는 방안은 금융사의 PF 대출 위험가중치(RWA)를 높여 대손충당금을 낮추고, 자기자본비율이 그보다 낮을 경우 PF 대출을 금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나 이런 방향성에도 부동산 PF발 위기가 줄어들기는커녕 건설사 연쇄 도산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건설사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시장의 불안심리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낮은 자기자본비율’과 ‘높은 보증 의존도’, ‘사업성 평가 부실’ 등 우리나라 특유의 PF 구조 체질 개선이 요구된다.
자기자본비율 끌어올려 리스크 낮춰야
미국, 유럽, 호주, 일본 등지의 부동산 디벨로퍼(시행사)들은 자기자본으로 토지를 미리 확보한 후 지분 투자자(LP)들을 유치해 PF를 운영하면서 사업을 진행하므로 건설사(시공사)가 보증을 서는 경우는 드물다. 이들의 PF 자기자본비율은 평균 30%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부동산 PF 구조는 다르다. 일단 자기자본보다는 브릿지론을 먼저 일으킨 다음 본PF로 전환하고, 그 과정에 현장이 멈춰서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5년 동안 344개 사업장(사업비 136조원)의 재무정보를 분석한 결과, 국내 시행사들의 평균 자기자본비율은 5.2%, 일반 사업장의 자기자본비율은 2.5%에 불과했다.
예를 들어 총사업비가 2000천억원 규모인 사업장의 경우, 시행사의 평균 자기자본비율은 100억여원에 불과하지만, 사업이 성공하면 수백억원의 이익을 챙길 수 있고, 실패할 경우 그 여파가 다른 분야로까지 확산된다. 그야말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구조인 셈이다.
업계에서는 PF 자기자본비율 확충을 위해 ▲한국형 디벨로퍼들의 역량 강화, ▲에쿼티(지분 투자) 금융시스템 구축, ▲PF 통합 통계시스템 구축 등과 함께 시행사의 자기자본비율 차등화, 즉 상업용과 수도권은 높이고 주거용과 지방은 낮추는 방식 등의 정책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한다.
책임준공 확약 등 높은 보증 의존도 개선 시급
만성적인 보증 의존도 역시 우리나라 PF 구조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다. 시행사의 낮은 자기자본비율에도 금융권의 대출이 가능한 배경에는 부동산 신탁사나 증권사 보증, 금융공기업 보증, 주택도시보증공사와 같은 공공기관 보증 등 제3자 지급보증이 있다.
그중 건설사(시공사)의 재무구조 악화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것은 ‘책임준공 확약’이다. 금융사는 이와 같은 각종 보증을 토대로 비교적 쉽게 PF 대출을 실시하지만,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업성이 좋지 않은 상황에 시행사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금융사는 모든 책임을 연대보증한 건설사에 즉시 떠넘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2011년 저축은행 30여개사의 뱅크런 사태, 2013년 비은행권 PF 익스포저(대출, 증권사 보증) 증가, 2019년 증권사 PF 보증채무 급증, 2022년 강원 레고랜드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황순주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저희가 최근 5년 동안 344개 사업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민간이나 공공의 보증이 전혀 없이 사업을 추진한 사례는 단 한 건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금융권에 의하면, PF 익스포저(대출, 증권사 보증)는 2019년 100조원에서 2023년 151조원으로 치솟았다. 여기에 유사 PF 익스포저(토지담보대출, 새마을금고대출, 전 금융권 보증 등)까지 합치면 총 231조원 규모다.
업계에서는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하는 방안으로 ‘에쿼티 금융시스템 환경 조성’을 꼽는다. 이진 한국부동산개발협회 연구위원은 “미국은 부동산 개발사업 중 24.4%가 에쿼티로 들어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분 투자자를 구성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외부 투자자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이런 환경을 조성하려 해도 두 가지 규제가 막아서고 있다. 하나는 은행이 장기 임대업을 하려 해도, 지분증권 15% 이상을 소유할 수 없도록 한 은행법이다. 또 하나는 금융사가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에 5%를 출자하도록 한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이다. 이와 같은 업권별 출자제한제도의 개정이 필요한 셈이다.
이밖에 업계에서는 PF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PF 관련 신규 평가지표 개발, ▲인허가 리스크 완화, ▲지주공동사업 활성화, ▲앙도세, 취등록세 감면 확대 등을 포함한 세제 혜택,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의 지방 시행 유예 및 차등 적용, ▲잔금 납입 전 중도금 대출 거치 기한 연장 등을 제시한다.
시행사의 낮은 자기자본비율과 높은 보증 의존도는 시행사 난립으로 이어졌다. 2022년 기준, 시행사는 무려 6만여 업체가 넘는다. 이중 상당수 업체는 아파트 등 주거용 부동산 사업장을 중장기적으로 운용하는 대신 선분양을 통해 손을 터는 ‘즉시 엑시트(exit)’에 매달린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이 ‘단기 개발 중심 엑시트(exit)에서 개발자 영역을 종합적으로 확장시키는 방향성’에 대해 언급한 이유다.
전반적으로 2011년 이후 15년 동안 수시로 위기를 몰고 왔던 우리나라 부동산 PF 구조는 ‘낮은 비용-높은 보증’이었는데, 이를 ‘높은 비용-낮은 보증’ 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의례적인 사업성 평가, 부실 부채질해
낮은 자기자본비율과 높은 보증 의존도에 더해서 의례적인 ‘사업성 평가’ 문제도 손질이 필요하다.
개인이 대출받을 때 대부분 부동산을 담보로 맡기지만, 부동산 PF의 담보는 미래에 지어질 건물이다. 매우 치밀한 사업성 평가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신용평가사를 시행사가 의뢰하고, 그 신용평가사가 사업성을 평가하는 구조라서다. 이와 관련, 맹성규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은 사업 주체의 자기자본비율 증가, 금융기관 건전성 규제 강화와 함께 “사업성 평가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공신력 있는 평가기관에 의한 사업성 평가 등 다자 검증체계 마련, 시행능력평가제를 통한 사업 건전성 평가, 정부 주도 종합관리시스템에 의한 리스크 파악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중 금융권에서 가장 효과가 큰 것으로 간주하는 방안은, PF 위험가중치(RWA)를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안에 대한 업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PF 위험가중치를 강화할 경우 부동산 개발사업이 급감할 수 있다는 의견과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개발협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PF 위험가중치를 높일 경우,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사업장 수가 지금보다 40% 수준으로 줄어들어 공급 감소로 시장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위험가중치를 건드리기보다는 적극적인 금융지원이 해결 방안이라는 시각이다.
반면 황 연구위원은 지난 5년의 시계열 자료를 분석한 결과, PF 규모 감소가 100% 공급 부족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고 전제하고, “PF 위험가중치를 강화해도 인허가와 착공이 매번 감소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강영수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과장은 지난 20일 국회에서 개최된 ‘부동산 PF 선진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금융당국은 정상 사업장에는 자금 공급을 철저히 하고, 부실 사업장은 재구조화 및 정리에 나서서 전반적인 사업성을 개선하자는 것”이라며 “금융사 입장에서도 사업성 평가가 괜찮으면 위험가중치를 높이더라도 투자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기본취지”라고 설명했다.
‘낮은 자기자본비율’과 ‘높은 보증 의존도’, ‘의례적인 사업성 평가’에 따른 리스크가 현실화할 경우, 시행사의 위기는 고스란히 시공을 맡은 건설사의 재무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뿐 아니라, 관련 금융기관과 공공기관, 정부에 연쇄적으로 작용한다.
이런 구조적인 부동산 PF 문제 해결에 ‘낮은 자기자본비율 상향’과 ‘높은 보증 의존도 개선’, ‘사업성 평가의 객관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어 보인다. 관건은 어느 정도의 목표를 설정하고 어느 정도의 속도로 추진해 나가는지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민생경제점검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건설투자와 지역 개발사업 활성화 유도를 위해 내달 ‘책임준공 확약’ 관련 개선방안과 건설업 유동성 지원 강화 방안, 악성 미분양(준공 후 미분양) 해결 방안, 공사비 현실화 방안 등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스트레이트뉴스 김태현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