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vs 영풍·MBK 경영권 분쟁 분수령 전망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전초전이 될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가 나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번 주총에서 영풍·MBK파트너스 측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 중 어느 쪽이 승기를 잡을지 눈길이 쏠린다.
고려아연 주총에 앞서 영풍의 주총이 하루 먼저 진행된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이 각자 다른 의견을 내고 있는 가운데 '캐스팅보트'가 된 일반주주들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주목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 하루 전날인 27일 영풍이 정기주주총회를 연다. 영풍 역시 최 회장 측 계열사인 영풍정밀의 주주제안을 받으며 분쟁이 한 차례 있을 전망이다.
영풍은 이번 주총에 ▲재무제표 승인 ▲주식 액면분할 ▲사내이사 및 사외이사 선임 등 안건을 상정했는데, 여기에 영풍정밀은 ▲현물배당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 ▲사외이사 선임(김경률) 안건을 제안했다.
이 중 핵심은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이다. 본래 과반이 넘는 58.84%의 지분을 보유 중인 영풍이 이사 선임을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면 영풍정밀 측 추천 후보가 이사회에 진입할 수 있다.
영풍 측은 이와 관련해 "현재 지분 구조로는 집중투표제로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주주가 1대주주와 2대주주로 한정된다"며 "영풍정밀 제안은 일반주주 보호와 무관하고,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활용할 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하지만 글래스루이스는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시 소수주주의 목소리를 키울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로 일반적으로 도입에 찬성한다"며 "영풍이 주장하는 현 주주 구성상 효과적이지 않다는 주장의 명확한 근거는 찾지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ISS는 영풍정밀이 제안한 집중투표제 및 현물배당 도입 등 안건에 대해 "설득력 있는 근거가 부족하다"며 전부 반대 의견을 냈다.
이처럼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의견이 엇갈리면서 이번 정기주총에서 일반주주들의 선택도 쉽지 않게 됐다. 다만 일반주주들은 영풍과 손잡은 MBK파트너스가 최근 홈플러스 사태로 보여준 모습으로 인해, 영풍정밀 쪽 의견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음날 이어질 고려아연 주총에서 최 회장이 승기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되는 가운데, 여기서도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먼저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PIRC는 고려아연 경영진이 제안한 '이사 수 상한 설정 등 정관 변경 안경에 대해 모두 찬성을 권고했다. 특히 PIRC는 '이사 수 상한 설정'과 관련해 MBK파트너스·영풍 측 제안대로 20명 이상의 후보를 무더기로 선출할 경우 "과도한 이사회 구성으로 인한 비효율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MBK·영풍 측 추천 후보 17명에 대해서는 "독립적인 인물로 간주되지 않는다"며 전원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적대적 M&A를 주도하고 있는 김광일 MBK 부회장과 강성두 영풍 사장은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사 중 각각 한 곳을 제외하고 전부 반대 권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ISS(의결권 자문사)는 최 회장 측이 제안한 △이사 수 상한 설정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장 선임 △분리 선출이 가능한 감사위원 수 상향 등 모든 정관 변경 건에 대해 찬성 의견을 냈다.
글래스루이스도 비슷한 의견이다. 핵심인 이사 수 상한 설정에 대해서 이사 수를 19명까지 늘리되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도록 양측 비율을 조율해야 한다는 점에서 조건부 찬성이다. 현 이사회가 최 회장 측근으로 구성된 것을 고려하면 MBK에 유리한 입장이란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MBK 손을 들어준 것도 아니라는 평가다. 주요 의결권 자문사인 ESG연구소와 서스틴베스트 역시 비슷한 의견을 냈다.
변수는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이 최근 홈플러스 사태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MBK를 비판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글래스루이스는 “영풍의 운영 손실 충당을 위해 MBK가 고려아연의 자산을 매각할 가능성도 있다"며 MBK가 차입금 상환을 위해 홈플러스 자산을 잇따라 매각한 것처럼 고려아연의 자산을 매각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스틴베스트도 MBK 측 추천 이사 후보 반대 이유로 홈플러스 사태를 거론했다. MBK가 홈플러스 신용등급 하락을 인지하고도 채권을 지속적으로 발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등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았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최근 홈플러스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 MBK가 고려아연 이사회를 장악하면 결국 기업은 빈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영풍의 의결권 행사 여부를 결정할 법원의 가처분 결과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법원이 영풍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면 본래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영풍·MBK 측이 이사회 장악 속도를 높일 수 있는 한편 법원이 영풍 의결권 제한을 인정하면 최 회장 측이 이사회 주도권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영풍 의결권 행사 허용 가처분 심문을 마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판사 김상훈)은 이날 양측이 제출한 막판 자료까지 검토했다. 해당 자료는 재판부가 24일 오후 2시까지 제출하라고 요청한 추가 자료다. 재판부는 영풍 주총이 열리기 전인 25일과 26일 사이 가처분에 대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영풍 측이 최 회장 측 이사를 해임시킨 후 이사 수를 늘리는 방법도 예상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상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다. 이사 해임은 주총 특별 결의 사항이기 때문이다.
특별 결의는 발행 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가능한데, 의결권 기준으로 고려아연 지분율은 영풍 측 46.7%과 최윤범 회장 측 39%으로 어느 한 쪽이 반대하면 특별 결의 통과는 힘든 구조다.
이에 이번 고려아연 주총에서 영풍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면 최 회장 측은 당분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 향후 영풍 측이 주총 결의 효력 정지 가처분 등 법적 대응에 나서면 양측 분쟁 국면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다가오는 주총에서 소액주주들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주목되고 있다. 고려아연 측은 "주총에서 주주들의 지지에 힘입어 기업가치 제고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