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완화 기대감 있지만 韓경제 경쟁력 하락 우려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환대 속에서 210억달러(31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등 한국 기업들의 대미 정책 대응이 분주해지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이같은 노력으로 고관세 위기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가 되는 한편 한국 경제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24일(현지시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미국을 방문 중인 가운데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한 발표 행사에 참석해 "향후 4년간 (미국 내) 210억 달러 규모의 추가 신규 투자를 기쁜 마음으로 발표한다"고 말했다.

오는 2028년까지 3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으로, 여기에는 현대차의 완성차 생산 체계 확대, 현대제철의 자동차 강판 생산용 전기로 신설,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에너지 협력 등이 주요 내용으로 포함됐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현대차에는 관세 없다", "진정 위대한 기업인 현대차와 함께하게 돼 큰 영광"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크게 만족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기업들의 대미투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 변화로 한국 기업들의 숨통을 트일 수 있을지 주목되는 한편 한국 기업들의 대미투자 추진도 빨라지고 있다.

앞서 대한항공도 327억달러(48조원) 규모의 미국산 여객기·엔진 구매 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미국 보잉의 항공기와 GE에어로스페이스의 엔진 도입에 속도를 내기로 하고 '3사 협력 강화'에 서명한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과 보잉은 2033년까지 보잉 777-9 20대, 보잉 787-10 20대를 도입하고 향후 비슷한 조건으로 항공기 10대를 추가 도입하기로 했다.

또 대한항공과 GE에어로스페이스는 총 78억달러(11조4000억원) 규모의 예비 엔진 8대(옵션 엔진 2대 별도) 도입과 보잉 777-9용인 GE9X 엔진 정비 서비스 협력을 조속히 이행하기로 합의했다.

대한항공과 보잉 및 GE에어로스페이스 간 '3사 협력 강화 서명식'이 열린 지난 21일에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직접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미국의 관세 전쟁 기획에 깊숙이 관여하는 하워드 장관이 해외 기업의 자국 상품 구매 행사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현재 대미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업계는 반도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으며 여기에 추가로 투자를 확대할지 주목되고 있다.

현재 미국 현지 반도체 생산 거점 건설에 삼성전자는 370억달러(54조원) 이상을, SK하이닉스는 38억7000만달러(5조6000억원을)를 각각 투자하기로 한 상태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내년 가동 개시를 목표로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2028년 양산을 목표로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반도체 패키징 생산기지를 짓고 있다.

양사는 일단 미국 투자 계획을 변함 없이 그대로 추진하되 통상 정책 동향을 예의주시 하면서 다각도로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중이다.

포스코도 미국이 수입산 철강에 대해 관세장벽을 높이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포스코그룹 철강 자회사인 포스코는 미국에 '상공정' 분야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공정은 고로나 전기로를 통해 철광석을 녹여 반제품을 만드는 공정이다. 미국 현지 생산을 통해 관세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을 모색 중인 상황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하면서 조달한 자금을 미래 투자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가운데 8000억원은 미국 시장 등을 겨냥한 해외 조선 투자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조선업 재건을 추진하는 것을 기회로 본 행보다.

아울러 최근 단행한 호주 조선사 오스탈 지분 투자처럼 해외 조선 시설 및 지분 투자도 적극 검토할 예정이다. 오스탈의 경우 미국 함정 시장에서 소형수상전투함 부문 시장점유율이 40%에 달하는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미국에도 사업장을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 기업들이 '미국 제조업 르네상스'와 '바이 아메리카'를 핵심 정책으로 내건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키는 선물을 건네는 모습들이 연출되면서 관세 완화 등 대한 통상 압력을 낮추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에 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관세 완전 면제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이 주요 경쟁국 대비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다만 기업들의 대미투자를 놓고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25일 현대차그룹이 31조원 규모의 대미 신규 투자 계획을 밝힌 것을 두고 "한국 경제의 미래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 전 의원은 이날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인 페이스북에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트럼프 2기 관세장벽을 우회해 북미 시장을 겨냥한 현대차의 전략적 선택이자 글로벌 전략으로 이해한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31조원의 투자가 국내에 이뤄진다면 수많은 양질의 일자리가 우리 청년들에게 희망을 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외 기업의 국내 투자는 고사하고 우리 기업들의 투자를 두고도 우리는 미국, 중국, 유럽, 동남아 등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냉정한 현실"이라며 "투자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규제개혁과 노동개혁, 토지·용수·에너지 등 인프라 지원,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 지원 등 새로운 산업정책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