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28일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고려아연 제공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28일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고려아연 제공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최윤범 회장이 승리를 거뒀다. 치열한 격전지가 될 것으로 예상했던 정기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의 이사회 장악 시도를 막아냈다.

28일 주총이 열리기 직전까지도 25% 지분을 가진 영풍의 의결권 행사를 놓고, 양측이 가처분과 기습 배당, 장외 매수 등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인 끝에 고려아연이 영풍의 의결권 행사를 확실하게 제한하면서 승기를 잡았다. 

다만 주총에서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을 비롯한 영풍·MBK 측 이사 3명이 고려아연 이사회에 새로 진입하면서 불씨가 계속 커질 위험도 남았다. 업계에서는 홈플러스 사태를 일으킨 김광일 부회장과 영풍 석포제련소 환경 문제의 주범인 강성두 영풍 사장이 고려아연 이사회에 진입함에 따라 고려아연 기업 가치가 크게 손상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28일 제51기 고려아연 정기 주총이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고려아연 지분 25.42%를 보유한 영풍의 의결권이 제한된 상태로 진행됐다.

고려아연 지분은 본래 영풍·MBK 측이 40.97%, 최 회장 측이 우호 지분을 합해 34.35%로, 영풍·MBK 측이 높다. 그러나 이날 주총 직전 상호주를 형성한 데 따라 영풍의 의결권이 제한되면서 영풍·MBK 측 지분이 15.55%로 축소돼 최 회장이 유리한 구도를 확보한 상태로 시작됐다.

주총 핵심 안건인 '이사 수 상한 설정안'은 출석 주식수의 71.11% 찬성으로 가결됐다. 해당 안건은 최 회장 측이 제안한 것으로, 현재 제한이 없는 고려아연 이사회 이사 수 상한을 19명으로 설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풍·MBK 측이 이번 주총에서 17명의 신규 이사를 이사회에 진입시켜 고려아연 이사회를 장악하려 했는데, 이같은 시도에 나설 발판을 제거하기 위해 내놓은 안건이다.

이어 '집중투표제'로 표결이 진행된 이사 선임 표 대결에서는 최 회장 측 추천 후보 5명과 영풍·MBK 측 추천 후보 3명 등 총 8명이 이사로 선임됐다.

최 회장 측 후보 중에서는 이달 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 권순범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 김보영 한양대 교수 등 3명이 재선임됐으며, 제임스 앤드루 머피 올리버 와이먼 선임 고문, 정다미 명지대 경영대학장 등 2명이 신규 선임됐다.

영풍·MBK 측 이사 후보로는 강성두 영풍 사장, 김광일 MBK 부회장, 권광석 우리금융캐피탈 고문 등 3명이 신규 선임됐다. 이에 따라 현재 이사회 멤버인 장형진 영풍 고문을 포함해 4명의 영풍·MBK 측 이사가 이사회에서 활동하며, 고려아연 경영에 관여할 수 있게 됐다.

이밖에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로는 최 회장 측이 추천한 서대원 BnH세무법인 회장이 '3% 룰'에 따라 진행된 분리 투표를 통해 선임됐다.

이에 따라 주총 직전까지 최 회장 측 5명, 영풍·MBK 측 1명으로 '5 대 1'이던 고려아연 이사회 구조는 '11 대 4'로 재편됐다. 최 회장 측이 11명으로 우위를 점했다.

이같은 주총 결과는 상호주 관계를 형성한 것이 주효했다. 전날 법원은 고려아연이 자회사인 썬메탈홀딩스(SMH)를 통해 영풍 지분 10%를 확보해 상호주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해 영풍·MBK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영풍은 전날 열린 주총에서 주식 배당을 통해 SMH의 영풍 지분율을 10% 아래로 떨어뜨리면서 "상호주 관계를 끊었다"며 반격했다. 그러자 고려아연 측은 이날 오전 장외매수를 통해 최 회장 측이 케이젯정밀(옛 영풍정밀)을 통해 보유한 영풍 주식을 사들여 SMH의 영풍 지분율을 10.03%로 높이는 대응을 성공시키며 최종적으로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했다.

영풍·MBK 측 의결권이 제한되자 이날 주총은 본래 예정됐던 오전 9시보다도 2시간 30분가량 늦은 11시 33분쯤 시작됐다.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의장을 맡은 가운데 의안 표결을 진행하기도 전부터 영풍 측 법률대리인이 이의를 제기하는 등 제동을 걸었다. 영풍 측 법률대리인은 SMH의 영풍 지분 확보에 대해 "언제, 어떤 경로로 취득했는지 밝혀달라", "영풍은 관련 서류를 받지 못했다" 등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이 같은 발언으로 주총 진행을 끊으면서 참석한 주주들의 원성을 들어야 했다. 한 주주는 "의장에게 분명하게 요구드린다"며 "더 신속하게 주총이 진행됐으면 좋겠다. 계속해서 진행을 방해하는 사람은 의장의 권한으로 퇴장시켰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말하기도 했다.

결국 영풍 측 대리인은 "영풍에 대한 의결권 제한이 위법하다"며 법적 조치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이날 주총은 고려아연의 승리로 끝났지만 경영권 분쟁은 장기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영풍·MBK 측이 추후 지속적으로 신규 이사를 이사회에 진입시켜 이사회 장악을 시도하겠다는 방침을 내놨기 때문으로, 법적 공방 및 임시주총 개최 등이 예상된다. 

고려아연 측은 '제2의 홈플러스 사태'를 막기 위해 MBK의 경영권 진입은 반드시 저지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국회에서도 영풍과 MBK의 적대적 M&A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편 이날 주총이 열린 서울 용산 몬드리안 호텔 인근에서는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 노조원들이 '홈플러스 회생 MBK가 책임져라', 'MBK는 홈플러스 사태 책임져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

고려아연 노조원들 역시 주총장에서 '자본시장 하이에나 MBK 경영 참여 철회하라', '국민이 반대한다 국가산업에서 철수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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