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한도 부적정해 반대표 적극 행사했지만
부결 안건 찾기 힘들어…표 모으지 않는 국민연금
퇴직연금도 기금화 추진…국민 노후자금 관치에 쓰나

국민연금 개혁 대응 전국 대학 총학생회 관련 학생들이 3월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 합의 국민연금 개혁안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 개혁 대응 전국 대학 총학생회 관련 학생들이 3월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 합의 국민연금 개혁안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스트레이트뉴스 이재영 기자] 국민연금이 올 정기주주총회에서 SK, 롯데, 한화 등 대기업집단 계열 상장사 보수한도 안건에 대거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표는 그러나 힘을 쓰지 못했다. 국민연금은 보수가 과다하다고 지적했으나 부결된 안건은 찾기 힘들다. 스튜어드십코드에 따라 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하지만 표를 모으는 적극성이 부족해 부결에 이르지 못하는 등 주주활동이 형식적인 선에 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처럼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활동 성과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데다 기금 고갈 이슈에 청년세대 부담을 높인 개혁안까지 논쟁이 뜨겁다. 여기에 정부는 퇴직연금까지 기금형으로 전환한다고 나서 논란을 키울 전망이다.

◆보수한도 반대표에도 '거수기 통과'

9일 국민연금 등에 따르면 올 주총에서 기업집단 계열 상장사의 보수한도 안건에 대한 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가 많았다. SK, 한화, 롯데 계열사가 특히 집중포화를 맞았다.

4대그룹 중에서 보면, 구광모 회장이 유일하게 보수를 받는 지주회사 LG는 보수한도에 대해 연금이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LG전자, LG화학, LG이노텍이 보수가 과다하다고 매를 맞은 게 눈길을 끈다. 삼성은 삼성전자에만 연금의 반대표가 행사됐다. 현대차는 현대글로비스 정도만 확인된다.

반면, SK, 롯데, 한화는 지주사(또는 지배회사)부터 계열사까지 다수가 반대표를 맞았다. SK, SK네트웍스, SK디스커버리, SK바이오사이언스, SK바이오팜, SK스퀘어, SK아이이테크놀로지, SK오션플랜트, SK케미칼,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이다. 또 롯데지주, 롯데쇼핑, 롯데정밀화학, 롯데칠성음료에서 반대표가 확인됐다. 한화, 한화생명보험, 한화손해보험, 한화솔루션, 한화시스템, 한화투자증권도 보수한도가 보수금액에 비추어 과다하거나 보수금액이 경영성과 등에 비추어 과다하다고 지적받았다.

그밖에 복수 이상의 계열사에서 반대표가 확인된 기업집단은 CJ, HD현대, 효성, OCI, 애경, 세아 등이다. 애경은 대형 항공기 참사가 일어난 제주항공이 보수한도가 높다고 연금 반대표를 맞아 눈총을 샀다.

◆“선택적 표 행사”…퇴직연금도 관치용 우려

상장사 임원 고액보수는 해묵은 이슈지만, 최근 경제개혁연대가 DB그룹 총수일가 등에 대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해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연금은 올 DB하이텍 주총에서도 보수한도에 대한 반대표를 던졌으나 안건은 통과됐다. 보수지급금액 공시대상 임원 수행업무보고에 대한 주주제안도 있었으나, 연금은 회사 영향 등을 고려해 동의하지 않았고 안건은 부결됐다.

지배주주 지분이 부족한 상장사에서도 국민연금 반대표는 무용지물이었다. 특수관계인지분이 20%(국민연금 7.35%)에 불과한 SK하이닉스도 반대표를 맞았으나 통과됐다.

국민연금의 적극적 반대표 행사는 스튜어드십코드에 근거한다. 코드는 연금의 소극적 수탁자책임 활동이 기금 운용 수익 부족, 기금 고갈 등으로 연결된다는 사회적 비판 아래 활성화됐다. 하지만 통상 기관투자자가 반대표를 행사할 때는 부결되도록 다른 주주들을 설득하나, 연금은 그런 적극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른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워싱(실제로 ESG경영을 하지 않으면서 하는 것처럼 홍보)”이라며 “국민연금은 반대해도 (안건이) 통과될 때 반대하고 반대 시 통과 안 될 것 같으면 찬성하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여 왔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위해서 다른 소수주주를 설득하고 홍보하는 일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퇴직연금도 기금화를 추진한다. 국민연금처럼 전문적인 기관이 퇴직연금 운용을 통해 수익률을 높인다는 취지다. 하지만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국무위원과 부처 차관들로 구성되는 것처럼 퇴직연금이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관치 및 정치적 개입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또 기존 퇴직연금 운용방식에 비해 손실이 날 위험성도 커 걱정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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