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WM시장…시작점인 브로커리지 점유율 경쟁 ‘불꽃’
시장을 지키려는 기존 강자 VS AI 흐름 타고 새로 진입하는 도전자
증권사들의 가장 기본 서비스이자 고객 확보의 기준이 되는 위탁거래(브로커리지) 시장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파이를 지키려는 기존 증권사와 뺏어오려는 도전자 사이에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양상이다. 특히 수수료가 무료에 가까운 국내 시장보다 짭짤한 수익원인 해외주식 거래를 두고 사활을 건 승부가 펼쳐지고 있다.
◆ 전통의 1위 키움증권 주춤…메리츠증권의 부상
전통적으로 국내 위탁거래 시장에서 키움증권의 아성은 견고했다. 60개에 달하는 증권사 중 키움은 30%를 넘는 시장점유율로 수년째 1위를 수성해 왔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조금 다르다. 금융감독원 금융정보통계시스템 거래대금 기준으로 키움의 국내 위탁거래 점유율은 2022년 19.6%, 2023년 20.6%, 지난해 다시 19.2%로 정체 상태다.
그 사이 업계에 큰 변화는 없었다. 새로운 플레이어로 토스증권과 카카오페이증권이 들어왔지만 카카오페이증권은 아예 존재감이 없고, 토스증권도 국내 위탁 부문에선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않았다.
다만 업계의 지각변동은 메리츠증권에서 시작되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11월부터 내년 말까지 약 2년여 동안 '슈퍼365' 계좌 고객 대상으로 국내외 주식거래 수수료 전면 무료를 선언했다.
국내주식 거래는 이미 증권사들이 은행연계 계좌개설 등을 통해 MTS 등 온라인 거래시 세금과 유관기관 수수료를 제외하곤 제로에 가까운 수수료율을 유지했다. 메리츠의 선언에 ‘타격감’이 크지 않았던 이유다.
한 증권사 온라인마케팅팀장은 “한번 한 증권사가 수수료 무료 캠페인을 벌이면 도미노처럼 캠페인을 이어가 고객을 뺏고 뺏어오는 일을 반복해왔다”며, “어느 정도 학습 효과가 있기 때문에 위탁매매 점유율이 낮은 메리츠증권의 조치에 크게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 핵심은 해외주식 거래…시장에 파문을 던진 토스증권
미국시장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해외주식 거래가 보편화 되면서 시장점유율 구도는 기존 증권사들의 국내 위탁매매 시장점유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통의 자산관리(WM) 강자들이 상위권을 점하며 미래에셋증권, 키움증권, 삼성증권이 빅3를 형성했다.
계열사로 국내 최대 운용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을 두고 대우증권까지 인수한 미래에셋의 파워, 전통의 위탁매매강자 키움, VIP 자산가 고객을 다수 보유한 삼성이 자웅을 겨뤘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국내에서 최초로 시차가 있는 미국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22시간 거래 시스템을 들여왔고, VIP고객들이 해외주식에 대한 정보와 접근성에서 앞서는 만큼 거래 편의 제고를 통한 갈증 해소가 초기 시장 확대에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도 “해외시장 진출에 가장 적극적인 미래에셋이 글로벌 리서치 제공, 적기에 시장이 원하는 ETF 소개, 퇴직연금 시장 확대와 AI를 활용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더하면서 총체적으로 해외 위탁매매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달라진 것은 토스증권의 등장이다.
지난해 10월 전체 해외 외화증권 위탁거래 중 토스증권은 키움증권을 제치고 1위에 등극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후 산정 기준을 두고 업계에 시비가 일며 점유율을 공식적으로 집계하지 않고 있지만, 실적 공시에 나타난 이들의 해외 위탁매매 수수료를 보면 그 윤곽이 드러난다.
각 사가 금감원 전자공시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2024년 연간 외화증권 수수료 수익은 미래에셋증권(2701억원), 삼성증권(2202억원), 키움증권(2088억원) 순이다. 눈에 띄는 것은 4위에 이름을 올린 토스증권(2080억원)이다. 전통의 빅3와 함께 나란히 2000억원대 수익으로 업계를 놀라게 했다.
2021년 12월 말에 위탁매매 서비스를 시작한 토스증권이 불과 3년째 되는 해에 정상권 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파란을 일으킨 셈이다. 지난해부터 키움증권 내부 회의에서는 토스증권 이야기만 나온다는 것이 업계 전언이다.
올해 1분기엔 이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주요 증권사 외화증권 수수료 수익에서 1위 미래에셋증권이 976억원의 수수료를 거두는 동안 토스증권은 861억원으로 2위 자리를 꿰찼다. 삼성증권이 676억원, 키움증권이 674억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2위 그룹인 NH투자증권(395억원), 한국투자증권(363억원), KB증권(391억원), 신한투자증권(291억원) 등과의 격차는 상당하다.
한 증권사 홍보팀장은 “토스증권이 핵심 기능에 집중해 가벼우면서도 감각적인 UI와 UX를 내세워 서학개미로 불리는 새로운 고객의 등장에 적시타를 때렸다”며, “특히 해외주식 소수점 거래 서비스를 실시간 제공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토스증권 관계자는 “2022년 4월에는 국내 증권사 중 처음으로 ‘실시간’ 방식의 해외주식 소수점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며, 1000원부터 소액으로 미국의 우량 주식들을 부담 없이 투자해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며, “이후로도 국내 및 해외주식을 일정 주기에 따라 적립식으로 투자할 수 있는 ‘주식모으기’, 투자자간 건전하게 투자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 서비스 등이 빠른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해 7월에는 모바일(MTS)을 넘어 PC에서도 토스증권만의 직관적인 투자경험을 이어갈 수 있도록 WTS(Web Trading System)을 선보였고, 올해 3월에는 애프터마켓 거래 시간을 연장해 현지 시간에 맞춰 시장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였다”며, “최근에는 금융에 특화된 번역모델을 통해 투자자들이 해외 기업들의 뉴스, 투자 관련 정보 및 콘텐츠들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도록 실시간 번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타사들의 공세에 대해 내부에서도 긴장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양한 고객들의 니즈를 맞추다 보니 키움 MTS가 타사 대비 조금 무겁다는 평가가 있어 연내 ‘간편모드’를 개발해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선보인 키움AI를 통해 금융상품 추천 기능을 강화했고, 해외주식 관심종목 서비스, 애널 종목추천 및 수익률 공개, 해외주식 적립식 투자 캠페인 등을 통해 적극적인 점유율 방어와 확대를 이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 차별화된 거래시스템으로 고객 붙잡아두려는 메리츠증권
메리츠증권은 지난 14일 제로 수수료 프로모션에 돌입한 자사의 ‘슈퍼365계좌’의 고객 자산이 7조원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1분기 실적 설명회에서 장원재 리테일 부문 대표는 “월간 해외 주식거래 약정이 10조원을 넘어서며 디지털 채널 고객 확대가 순조롭다”고 말했다. 고객이 늘수록 수수료 부담이 있지 않냐는 애널리스트의 질문에 “2026년까지 약 1000억원 수준으로 책정해 뒀는데 그 일정에 맞게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심은 이처럼 늘고 있는 고객을 어떻게 메리츠증권에 붙잡아둘 수 있냐에 모인다. 더 이상 수수료 무료를 이어갈 수 없게 될 때 타사에 고객을 뺏기지 않을 자물쇠(Lock-In) 전략이 필요한 셈이다.
메리츠증권은 그 답을 내년 상반기께 선보일 ‘차별화된 거래 플랫폼’에서 찾고 있다.
이장욱 이노비즈센터가 이끄는 자체 개발팀은 약 30명으로 구성됐다. 국내 플랫폼 시장을 뒤흔든 네이버, 카카오, 토스 출신들로 팀을 짰다. 이들은 토스가 성공한 이유를 커뮤니티 활성화로 보고 거래시스템의 플랫폼화로 연관 비즈니스를 파생시켜 수익원을 다변화한다는 전략이다. AI를 활용한 초개인화 서비스를 글로벌로 확장해 단순히 내수용이 아닌 금융사들의 해외진출 파트너로 기능한다는 포부를 내세우고 있다.
한 증권사 IT본부장은 “아직 지켜봐야겠지만 증권사 거래 시스템에 커뮤니티 기능을 더한다는 아이디어는 이미 10여년 전에 다른 증권사에서도 시도하다 접었던 모델”이라며, “당시엔 선행매매 위험성 등을 들어 감독 당국이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지만, AI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두된 지금 메리츠가 어떤 플랫폼을 개발할지 관심이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 새롭게 출사표를 낸 우리투자증권
도전자는 메리츠증권만이 아니다. 우리금융그룹이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를 선언하며 그 선봉에 선 우리투자증권의 출사표도 만만치 않다. 지난 3월말 우리WON MTS를 선보이며 AI기능을 탑재한 새로운 거래를 표방한 우리투자증권은 “쉽고, 투자에 언제나 도움이 되는 MTS”를 내세우고 있다.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기능 구성을 위해 자주 쓰는 기능은 전면에, 이용 빈도가 낮은 기능은 후방에 배치해 이용자의 피로도를 낮췄다. 고객의 행동데이터를 분석해 그에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초성만 넣어도 원하는 정보 검색이 가능하게 구현했다.
보유종목과 관심종목에 대해 AI가 알아서 필요 정보를 요약해서 보여주고, 해외주식의 경우 관련 종목 리포트와 공시까지 찾아서 제시한다.
우리투자증권 관계자는 “가장 늦게 만들어진 MTS인 만큼 기존 증권사 시스템의 장단점을 모두 분석해 가장 최적화된 시스템으로 구현했다”며, “향후 해외주식, 채권, 연금, AI기반 자산관리 서비스는 물론 그룹의 강점인 IB와의 연계를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증권사 리테일본부장은 “한때 증권사들이 규모를 키워 투자은행(IB)으로의 전환을 빠르게 추진했지만 부동산PF, 해외상업용 부동산 투자 실패 등을 겪으며 자산관리 시장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며, “저출생, 고령화와 맞물린 성장의 퇴보, 개인 자산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변화로 WM 시장 성장이 이어질 것인 만큼 그 시작이 되는 위탁매매 시장에서의 혈투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