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의 성장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환상을 깨는 ‘직격(直擊)’
탈성장(Degrowth) 사회 구현을 위한 ‘구체적 실천 방법과 대안’ 전해

                                                      사진 장석진 기자.
                                                      사진 장석진 기자.

지난해 말, 해가 바뀌면 정년을 맞이하는 타 언론사 선배가 “각종 경제지표가 좋지 않아 대한민국의 미래가 걱정스럽다”는 후배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꼭 성장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머쓱해하는 후배 사무실로 반년 뒤 책 한 권이 날아들었다. 「성장이라는 착각」.

이 책은 30여년 세월을 경향신문에서 경제와 환경 문제에 천착해온 안호기 기자의 ‘인생작’이다. 안 기자는 진보를 대표하는 언론사에서 경제부장과 경제에디터를 거쳐 편집국장과 사회경제연구원장을 지냈다. 현장을 발로 뛰며 자본주의의 명과 암을 검증해낸 기자의 인생이 이 책에 녹아 있다.

책은 쉽지 않은 내용들로 가득 차 있지만, 메시지는 간명하다. 유한한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키고 병들게 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성장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자는 것. 저자는 소수의 계층이 독점한 불평등한 지배 구조를 깨고, 측정되지 않는 ‘돌봄’의 가치를 환기시킬 수 있게 기본소득을 통한 공공성의 확대를 주장한다.

「성장이라는 착각」은 기득권을 가진 힘 있는 계층에게 ‘미움받을 용기’를 내서 집필한 책이다.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財源)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장악한 소수에게 나와야 한다. 가장 힘있는 사람들의 ‘조세저항’이 있을 것임은 당연하다.

이러한 주장이 개인적인 꿈이 아님을 설파하기 위해 지은이는 세계적인 석학들의 집필을 모으고 언론사 연례 포럼을 4회 총괄하며 만났던 지식인들의 생각을 한땀 한땀 엮어내는 수고를 들였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럭셔리’다. 럭셔리의 정의는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지 않아도 돈을 내서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비록 이 럭셔리 도서의 표지가 재생펄프를 함유한 친환경용지로 만들어졌지만 말이다.

평소 지켜본 저자는 ‘언행일치’를 실천해온 ‘참기자’이다. 책의 집필 작업은 본인의 집 근처 ‘상동도서관’에서 1년 넘게 주말마다 이뤄졌다. 소유하지 않고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공공도서관에서 ‘탈성장’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기자의 노작(勞作)이 이뤄졌다. 평소 홀로 낡은 SUV를 몰고 산에 텐트를 친 채 밤하늘의 별 보기를 즐긴다는 노기자의 고집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전 세계에서 자본주의 시스템 위에 민주화를 통해 2021년 선진국에 진입한 유일한 국가 ‘대한민국’에서 탈성장을 말하는 것에는 적지 않은 용기가 따른다. 하지만 OECD 최고 수준의 자살율과 합계출산율 0.7명이라는 숫자는 선진국 대한민국의 삶이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방증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저자가 제안하는 탈성장의 삶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만 강요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다. 10년전 파리기후협약에 전세계 리더들이 모여 합의했지만 세계 최고 패권국 대통령이 여기서 빠져나와 관세전쟁을 선포하며 야만적 제국주의의 발톱을 드러낸 이때, 우리만 ‘저녁이 있는 삶’을 말할 수 있을까? 내수시장이 무너지고 제2금융권의 연체율이 올라가지만 강남 아파트가 100억원을 넘기고 있다. 사람들에게 ‘탈성장’을 말하는 것이 ‘수인(囚人)의 딜레마’에 빠지게 할 위험은 없을까?

하지만 저자는 이상주의에 빠진 돈키호테가 아니다. 특히나 “기존 시스템이 변화하는 것을 싫어하는 상위 1% 부자들이 정부 정책을 쥐락펴락 하고 있어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현실인식이 책 속에서 발견된다. 이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혜택을 보기 때문에 변화를 원치 않는 다수의 저항과 변화가 가져올 모호한 그림만으로 변화를 일으키기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게 어렵다고 말한 마키아벨리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의 행동이 어떤 방향으로 조금씩 바뀐다면 결국 극적으로 변화한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믿음이다. 사회는 개인의 선택과 행동이 쌓여 변화하고 교육 시스템 강화를 통한 미래 인재 양성과 글로벌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 작업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저자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간디가 강조한 사회악 7가지 중 첫째가 ‘원칙 없는 정치’다. 정치는 시민의 삶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의사결정 과정이라고 했다. 이제 일주일 뒤면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일이 다가온다. 선거가 정치행위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올바른 철학과 원칙을 가진 지도자가 누구인지 두 눈을 뜨고 잘 찾아보자.

도서출판 들녘.320쪽. 1만9800원.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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