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율 관세에 중국 저가 출혈 경쟁 등 글로벌 완성차 시장 혼란 심화
현대차·기아, 미국 관세 주시하는 한편 유럽·중국 등 주요 시장 공략 속도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와 중국의 저가 전기차 공세,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수입차 고율 관세 등 삼중고가 겹치면서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따라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전략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특히 최근 중국발 전기차 가격 인하 출혈 경쟁이 벌어지고 GM(제너럴모터스)의 한국 사업장 철수설까지 거론되는 등 완성차 업체들이 생존방안을 모색에 나서면서 현대차·기아도 분주해지는 모습이다.
30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4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자동차 수출액은 208억4221만달러(약 28조67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6.8% 감소했다. 특히 지난달 수출액은 55억8417만달러(약 7조680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11.2%나 줄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수출 감소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여파인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수입 자동차 대상 고율 관세는 지난달부터 본격 적용됐다. 산업연구원은 미국 관세 영향으로 올해 한국의 자동차 수출이 "전년 대비 8%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에 대해 미국 법원의 제동이 걸리면서 관세 철회 기대감도 높아졌지만, 이에 제기한 트럼프 대통령의 '판결 효력 정지' 요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상황이다.
지난 28일(현지시간) 미 연방국제통상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전 세계 상대국에 부과한 상호관세 등에 대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 그러한 무제한적 권한을 부여한다고 해석하지 않으며 이에 따라 해당 관세 조치를 무효화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트럼프 측이 항소심에 나섰고, 항소법원이 1심 재판부인 국제통상법원의 판결 효력 발생을 일시 중단시키면서 항소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관세 정책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유예기간은 2주지만 트럼프 측이 1심 판결을 맹비난하며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만큼 관세 철회가 실행될 수 있을지 업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GM의 한국 사업장인 한국GM은 29일 부평공장 일부과 직영 서비스센터 9곳을 매각한다는 발표를 하면서 국내 철수설이 크게 떠오르고 있다. 한국GM은 생산 물량 대부분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이처럼 최대 완성차 시장이었던 미국 수출길에 다소 장애물이 생기면서 글로벌 완성차 시장이 흔들리는 가운데 국내 대표 완성차 기업인 현대차·기아의 전략에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현대차·기아는 미국 시장을 대상으로 완성차 가격 인상을 검토하는 한편 중국 시장 재도전과 유럽 시장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유럽은 전기차 성장 속도가 빠른 시장으로 꼽혀 관세 장벽인 미국보다 글로벌 업체 집중도가 높아지고 있는 시장이다. 시장조사업체 자토 다이내믹스에 따르면 지난달 유럽 28개국에서 전기차가 총 14만4200대가 팔려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했다. 같은 기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도 7만4520대로 31% 늘어나는 등 친환경차 중심의 차량 판매가 늘고 있다.
다만 문제는 '저가'를 무기로 한 중국 업체들이 유럽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는데다 더욱 빨리 수요를 확대하고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 출혈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상하이자동차(SAIC)는 지난달 누적 유럽 판매량이 10만대를 돌파했으며 BYD는 지난달 7000대 이상을 유럽서 판매해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넘는 실적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현대차·기아의 유럽 현지 판매량은 다소 감소했다. 지난달 현대차는 전년 대비 3.3% 감소한 4만5227대를 판매했고 기아는 0.2% 줄어든 4만4663대를 판매했다. 판매량 기준으로는 현대차·기아가 시장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중국 기업들의 판매 확대 속도가 빨라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특히 '저가 출혈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 큰 위협으로 번지고 있다. BYD는 '시걸', '돌핀', '씰' 등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차량 총 22개 모델을 다음달 말까지 최대 34% 등 대폭 할인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BYD가 시작한 가격 인하 움직임은 중국 전기차 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창안자동차 역시 10% 이상 가격을 낮춘다고 밝혔으며 립모터는 일부 모델의 가격을 30% 이상 인하했다. 지리자동차도 7개 차종을 최대 18%까지 할인 판매하기로 했다.
중국 업체들이 시작한 저가 경쟁으로 유럽 및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려가면서 유럽 완성차 업체들의 설 자리도 좁아지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그룹은 실적이 악화돼 이례적인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등 큰 변화를 겪는 중이다. 최근 2030년까지 독일 내 생산능력을 절반으로 줄이고 인력을 3만5000명 감축하기로 결정했는데, 폭스바겐그룹은 이미 올해 초 직원 7000명을 감축한 상태다.
중국 업체들이 장악한 중국 시장 재도전도 풀어야 할 과제다. 현대차와 기아의 중국 내수 시장에서의 성적은 아직 미미한 상황이다.
30일 중국승용차시장정보연석회(CPCA)에 따르면 현대차 중국 합작법인 베이징현대는 지난달 중국에서 1만1대(점유율 0.48%)를 판매했다. 중국 내수 판매 순위 39위에 그쳤다. 기아 중국 합작법인 위에다기아는 7056대(점유율 0.33%)를 기록하며 47위였다.
반면 중국 내수 1위는 24만32116대를 판매한 BYD였으며, 폭스바겐과 토요타는 각각 14만6468대와 12만4951대를 판매해 2위와 3위에 올랐다. 이어 ▲지리 프리미엄 브랜드 갤럭시(9만1173대) ▲지리(7만9172대) ▲우링(7만5268대) ▲창안(6만2801대) ▲혼다(4만3569대) ▲체리(4만3016대) ▲BMW(4만805대) 등 대부분 중국과 일본, 유럽 등의 업체들이 앞순위를 차지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기아도 '가성비'를 무기로 현지 맞춤 차종을 통해 유럽과 중국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기아는 싱가포르에 준중형 전기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인 EV5를 출시하고 전기차 판매 증대를 꾀하고 있다. 첨단 전기차 생산 공장인 현대차그룹 모빌리티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에서 EV5를 만들어 싱가포르에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EV5는 기아가 지난해 중국에서 세계 최초로 선보인 차종으로, 지난해 중국 판매량 1만대를 돌파하며 시장 재도전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다. 이같은 EV5가 중국에 이어 싱가포르에서도 인기를 끌 것으로 기대하는 중이다.
현대차는 기술력을 앞세워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개발을 서두르며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유지웅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의 경우) 2026년부터 시장성이 높은 주행거리연장형전기차(EREV) 양산으로 친환경차 수요를 상당 부분 흡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