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이민 추방 실적 부진, LA시위 도화선
연방요원 과격진압, ‘영장 없이 체포·구금’
군대동원, 주방위군 2000명·해병대 700명
미국 법조계, “비상조치 법적 근거 없어”
트럼프의 국면전환·당내단합용 의심 있어
시위확산 여부, D데이 6월 14일 주목해야

11일(한국시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이민자 체포·추방에 반발해 시작된 로스엔젤레스(LA) 시위가 5일째 계속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인 오는 6월 14일 미 육군 창설 250주년 열병식 행사를 기점으로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시카고 등 최소 24개 도시로 시위가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평화와 질서, 국가 주권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다. (중략) 외국 국기를 든 폭도들이 우리나라를 침공하고 있다. 로스엔젤레스는 통제되지 않은 이민으로 썩은 오물 구덩이가 됐다.”

10일(현지시각)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 육군기지를 찾은 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다. 그는 시위 참가자들을 ‘짐승’, ‘폭도’, ‘침략자’, ‘돈을 받은 내란 선동자’, ‘중남미 범죄조직’이라 표현하며 비난했다.

또한 “외국인들 때문에 미국 경제가 비상사태를 맞았다”고 했다.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언급이다. 그는 LA에 주방위군을 투입한 이유는 이민 단속을 벌이고 있는 연방 법집행관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도 했다.

10일 로스앤젤레스 내 다운타운을 행진하는 시위대. Reuter/연합뉴스
10일 로스앤젤레스 내 다운타운을 행진하는 시위대. Reuter/연합뉴스

불법이민 추방 실적 부진에 ‘과격 체포’


‘불법이민자 체포·추방’은 지난 대선 트럼프 후보의 ‘2025년 플랜’에 명시된 핵심 공약이다. 하지만 미 월스트리트저널(WSJ)과 AP통신 등의 10일(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1월 20일 취임 이후 불법이민자 추방 실적이 전임 조 바이든 정부에도 못 미치는 하루 평균 650여 명으로 부진하자, 과격한 체포 방식이 동원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달 말,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 설계자인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미국 전역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고위 당국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주문했다.

“ICE는 하루 최소 3000명을 체포해야 한다. 그냥 나가서 불법 체류자를 체포해야 한다. 불법 체류로 의심되는 이민자 목록을 작성할 필요는 없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주로 모이는 홈디포나 세븐일레븐 편의점을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

지난 6일 ICE가 라틴계 주민 밀집지역인 로스앤젤레스 웨스트레이크 지역 홈디포 매장 단속에 나선 것이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전역에서 발생한 시위의 도화선이다.


비상계엄 방불케 한 시위 진압


트럼프 정부의 이민 단속은 예전과 달리 과격했다. 민간인으로 위장한 연방정부 요원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ICE 요원들은 불법체류 혐의자들이 가족이나 변호인에게 알릴 시간도 주지 않고, 영장도 없이 체포·구금했다. 신원도 밝히지 않았다. 이민심리에 출석한 불법체류 의심자들을 덮어놓고 체포하는 게 일반화됐다.

지난 9일 로스앤젤레스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9일 로스앤젤레스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있다. EPA/연합뉴스

ICE 요원들의 마스크가 문제되자, 톰 호먼 백악관 국경정책 담당자는 언론 브리핑에서 “ICE 요원들이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얼굴을 가리는 이유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둘러댔다.

물론, 불법이민자 체포에 대한 시위는 트럼프 행정부 초기부터 있었지만, ICE의 과격한 체포 방식에 시위대는 과격해지고 규모도 커졌다.

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은 본격 진압을 위한 군사작전이었다. 그는 8일 비상조치를 발동,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반대를 무시하고 주방위군 2000명 투입을 명령했다. 경찰과 ICE 요원들, 주방위군은 시위대 앞에서 고무탄, 최루탄, 섬광 수류탄을 사용했다.


개빈 뉴섬, “비상조치 법적 근거 없어”


“트럼프는 군대를 시민들에게 돌리고 있다. 법원은 이 불법적 조치를 중단시켜야 한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9일 개빈 뉴섬 주지사는 법원에 트럼프 행정부의 LA 내 군대 배치를 막아달라는 긴급 가처분을 신청했다. 연방정부는 외국의 침공이나 미 정부의 권위에 대한 반란, 연방법 시행 불능 상태 등의 불가피한 상황에 한해 주방위군을 동원할 수 있지만, 로스앤젤레스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10일 뉴욕타임스(NYT)는 연방정부의 ‘주방위군 투입’이라는 비상조치는 법적 근거가 없으며, 트럼프 본인의 권력 확대가 목적이라는 법조계와 법학계의 비난 기사를 게재했다. 조지메이슨대 법대 일리아 소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확대하고 헌법을 훼손하며 시민의 자유를 파괴하기 위해 완전히 날조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면 LA는 불바다가 됐을 것”이라며 “그들(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캐런 배스 LA 시장)은 무능하고, 골칫덩이들과 선동꾼들, 반란자들에게 돈을 지불했다. 범죄자들의 도시 점령을 의도적으로 돕고 있다”고 응수했다.

지난 9일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주방위군이 투입된 가운데, 시민들이 불법이민단속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9일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주방위군이 투입된 가운데, 시민들이 불법이민단속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백악관 테일러 로저스 공보담당이 NYT에 반박하며 모든 책임을 민주당 전 정부로 돌리자, NYT와 백악관 사이에 반박과 재반박이 오갔다.

시위는 진압되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밤(한국시간) 추가로 해병대 700명을 투입시켰다. 11일(한국시간) 찰스 브레이어 연방법원 판사는 개빈 뉴섬 주지사의 긴급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트럼프의 노림수, 국면전환·당내 단합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불룸버그(Bloomberg)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주방위군과 해병대 투입에 정치적 셈법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하나는 하버드대 외국인 학생 문제, 관세, 감세와 저소득층 복지혜택 축소, 일론 머스크와의 갈등 등 모든 이슈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국면 전환용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예견된 일론 머스크와의 갈등은 두 가지 함의가 있다. 머스크는 재정적자를 줄일 목적으로 정부효율부(DOGE)라는 없던 장관자리까지 꿰찼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정책으로 재정적자가 오히려 늘어났다고 성토했다. 불법이민자 체포·추방 문제도 건설업, 식당업 등에 값싼 노동력이 없어서는 안 되는 현실을 무시했다고 맹비난했다.

이런 머스크의 입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극우 중 극우인 스티브 배넌(트럼프 대통령 책사 겸 전 수석 보좌관), 스테판 밀러(백악관 부실장)처럼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에 취한 핵심 참모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불법이민자는 '문명의 적'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정치적 셈법은 감세나 관세정책, 불법이민자 체포 등에 브레이크를 거는 당내 일부 세력을 잠재워 단합을 얻기 위함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미국 의회는 공화당이 상원과 하원을 모두 장악한 상태라, 불법이민자 문제에 제동을 걸 경우 배신자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 '트럼프의 꽃놀이패'에 민주당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지난 9일 시위 관련 기자회견하는 캐런 배스 로스엔젤레스 시장. AFP/연합뉴스
지난 9일 시위 관련 기자회견하는 캐런 배스 로스엔젤레스 시장. AFP/연합뉴스

시위 확산 조짐, D데이는 6월 14일


이런 가운데, ICE 단속에 저항하는 시위가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등 여타 도시로 확산될 조짐이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미 수천 명이 참가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고 보도하면서 시위가 최소 24개 도시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인 오는 6월 14일을 시위 확산의 분수령으로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육군 창립 250주년 행사 때 워싱턴 시내에서 열병식을 연다고 발표해서다. 앤비씨(NBC) 보도에 의하면, 100여 개 이상 시민단체 수백만 명이 1,500곳이 넘는 도시에서 ‘노 킹스(No Kings)’ 시위를 동시다발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노 킹스(No Kings)’는 ‘트럼프는 왕이 아니다’라는 의미다. 해당 웹사이트의 대문에는 “그들은 우리 법원을 무시했고, 미국인들을 추방했으며, 사람들을 거리에서 내쫓고 시민권을 공격했다. 왕좌나 왕관, 왕은 없다. 6월 14일, 우리는 일어나 싸울 것이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시위 확산과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가 오기 전까지는 병력을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며 “만약 열병식에서 시위가 발생한다면, 엄중한 무력(heavy force)으로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좌고우면 없는 폭주를 선언한 셈이다.

미국 정가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LA뿐 아니라, 민주당 우세지역, 즉 블루스테이트 지역으로 시위를 확산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시위가 폭동으로 발전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1807년 제정된 내란법(Insurrection Act, 인서렉션 액트)’ 적용까지 발동할 것이라며 경고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우리나라의 계엄령 선포 상황과 거의 같아진다.

현재 LA 도심에는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야간 통행금지령이 내려져 있다. 시위가 소요 사태로는 발전하지 않았지만, 트리거형 사고만 발생한다면 언제든 번질 수 있다.

무리한 정책 추진과 과도한 집행, 어려운 경제 상황에 대한 책임 전가, 반대자를 향한 무차별 공격, 주지사 요청 없는 군부 동원, 한쪽으로 치우쳐 좌고우면 없는 고집, 국면전환과 당내 단합을 위한 노림수, 열병식, 왕(King), 내란법, 어쩐지 기시감이 드는 건 기자만의 생각일까. 미국 시민권자들의 ‘행동하는 양심’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스트레이트뉴스 김태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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