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양 정책기획 전문기자, 경제학 박사)
23일, 창원시 해양항만수산국이 발표한 3분기 정책 브리핑은 화려한 슬로건도 없었지만 기자는 직감했다. “이건 단순한 행정 보고가 아니다”라고.
브리핑에서 조성민 국장은 짧지만 결정적인 한 문장을 남겼다. “진해신항을 중심으로, 북극항로 시대의 국제물류 전략을 창원이 선점하겠다”
이는 사실상 창원이 ‘부산의 배후 도시’라는 기존 인식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국가 전략의 새로운 중심축이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기자는 이 발언이 단지 지역적 야망이 아닌, 구조적으로 완성된 계획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느꼈다.
북극항로는 더 이상 이론적 가능성이 아니다. 기후위기와 해빙은 유럽과 아시아 간의 수에즈 운하 대체 항로를 현실화시켰고, 국제 해운·물류·에너지 기업들은 이미 그 경로에 따른 투자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다.
국가 단위의 전략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핀란드, 노르웨이, 러시아는 북극 연안 도시와 항만 개발을 강화했고,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에 북극 루트를 편입시켰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북항 재개발, 북극연구소의 남해안 이전 검토 등 정부 차원의 대응이 본격화되는 중이다.
그러나, 이 변화의 중심에 과연 부산만이 있어야 하는가? 본 기자는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마주한 대답은 ‘창원’이었다.
창원시는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트라이포트(항만+공항+철도) 인프라를 실현할 수 있는 도시다. 타당한 논리는 이렇다.
진해신항은 부산항을 대체할 수 있는 심층 항만으로 포화 상태에 이른 물동량을 흡수할 수 있는 접안 능력과 배후지를 보유하고 있다.
가덕도신공항은 단순 공항이 아니다. 전자상거래, 바이오, 반도체 같은 시간 민감형 고부가가치 물류를 담당할 수 있는 핵심 허브다.
여기에 철도망은 창원국가산단과 수도권을 하나로 잇는다. 단지 물류뿐 아니라 ‘제조+물류+유통+연구’를 통합하는 일체형 공급망 운영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것이 기자가 주목한 창원의 ‘물리적 기반’이다. 그 어느 도시도, 이처럼 집약된 입지를 갖추지 못했다고 단언한다.
더욱이 기자는 창원시 내부에서 준비 중인 전략적 청사진을 확인했다. 단순한 추상 계획이 아닌 매우 구체적이고 실행력 있는 로드맵이었다. 그 핵심은 다음 다섯 가지다.
첫째, 스마트 물류 정보 플랫폼 구축
입출항, 항공, 철도, 통관 데이터를 통합한 IoT 기반 플랫폼. 전자상거래 기업과 글로벌 GDC 유치를 위한 전제조건.
둘째, 제조+물류+R&D 융합단지 조성
현재 배후지엔 제조 시설이 없다. 자유무역지구, 항만, 국가산단을 하나의 복합 단지로 설계하는 구조 개편이 필요.
셋째, 진해–가덕도–창원산단 간 전용 고속 인프라 건설
물류 고속도로와 복합철도망 확충. 수송 효율성뿐 아니라 인구 유입과 균형발전 전략으로 연결.
넷째, 지방정부 외교로서의 북극권 협력 강화
핀란드 오울루, 노르웨이 나르비크, 러시아 무르만스크 등과 지방정부 차원의 MOU 체결, 북극포럼 유치.
다섯째, ‘창원 북극항로 전략센터’ 설립
정책 연구, 기업 유치, 국제 네트워크를 통합하는 중장기 컨트롤타워를 설립해야 한다.
이 다섯 가지는, 단순한 지역 계획이 아니다. 국가 전략의 빈 구멍을 메우는 완성형 제안이다.
이제 창원시에서 출발하는 북극항로 루트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창원(진해신항) → 동해 → 러시아 북극 연안 → 노르웨이/핀란드/북유럽 루트이다.
진해신항 → 동해 진출
진해신항은 심해접안이 가능한 대형 항만으로, 동해 남부에서 러시아 극동지역(블라디보스토크, 나홋카) 또는 사할린 인근까지 항로를 연결한다. 이는 기존 부산항과 동일하거나 오히려 러시아 연안 도달 거리에서 단축효과를 가질 수 있다.
러시아 북극항로(NSR: Northern Sea Route) 진입
극동에서 시작해 러시아 북부 연해주 해안선을 따라 북극해 루트(NSR) 진입하는 것이다. 주요 경유지는 무르만스크(Murmansk), 사베타(Sabetta), 아르한겔스크(Arkhangelsk) 등이다.
NSR은 러시아 영해를 따라 항행 허가가 필요하지만, 국제물류 협약 또는 지방정부 단위 MOU 체결 시 우회 협력이 가능하다.
노르웨이 . 핀란드 등 북유럽 도달
러시아 북극 루트를 지나, 노르웨이 나르비크(Narvik) 또는 핀란드 오울루(Oulu)와 같은 북유럽 항만에 도달하는 루트이다. 여기서 유럽 내륙 철도망과 연결해 독일, 프랑스, 동유럽 국가로 진입이 가능하다.
기존 항로를 보면 수에즈 경로 약 20,000km이며, 30~35일을 항해 해야 하고 혼잡하며 해적 출몰과 중동정세 불안이 항상 잠재돼 있다. 북극항로(NSR)는 약 13,000~14,000km이며, 20~23일로 약 10일이 단축된다.
따라서 창원에서 진해신항–NSR–북유럽까지 운송 거리는 부산과 유사하거나 오히려 짧을 수 있다.
이제 현실적으로 창원시에 전략적 제안을 하고자 한다. 루트 활성화 방안을 위해서는 정부에 기댈것이 아니라 지방정부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노력이 앞서야 한다.
◆러시아 북극 루트(Murmansk–Sabetta 등) 항로 개척 전담 조직 구축 ◆북극항로 전략센터 내 ‘NSR 담당 부서’ 필요 ◆핀란드·노르웨이 지방정부와 직접 MOU 체결 ◆국가 외교 대신 지방정부 차원의 실무협정 추진 ◆가덕도–진해신항–철도 간 트라이포트 연결 ◆빠른 내륙 배송과 ‘도어 투 도어’ 유럽 물류 루트 구현 ◆극지 전용 화물선/얼음돌파선 확보를 위한 민관 투자 연계 ◆코리아 쉬핑 가스(LNG 운송 관련 선사) 팬오션 등과 공동선대 운영 가능성 검토이다.
창원에서 출발하는 북극항로 루트는 단지 상상의 노선이 아니다. 진해신항이 있기에 가능한 현실적 루트이며, 러시아 북극 해안–노르웨이–핀란드를 거쳐 유럽을 단축 연결하는 대한민국의 ‘극지 경제 대동맥’이다.
이제 창원이 더 이상 ‘부산의 배후 도시’로 불리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진해신항은 부속물이 아니며, 창원은 보조축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부산과의 대결이 아니라, ‘역할 분담을 전제로 한 전략적 동행’이다. 부산이 대륙 연결의 동해안 초점이라면, 창원은 극지 연결의 남해안 중심이다.
이 이중축 전략이 대한민국을 북극 시대의 선도국으로 이끌 수 있다.
지금이 바로, 창원이 ‘대한민국의 변두리’에서 ‘전략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할 역사적 시점이다.
[스트레이트뉴스 경남=김태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