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입차 관세 15% 확정…현대차·기아, 日 토요타·혼다와 동등한 조건
하이브리드차 판매 집중·가격인상 없이 현지 생산 비중 확대 등 돌파구 마련
현대자동차·기아가 지난달까지 미국에서 누적판매 3000만대를 기록하는 등 미국 시장에서 위기를 넘고 있는 가운데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일본 완성차 기업들과의 경쟁을 시작할 전망이다. 종전보다 한국 완성차의 미국 시장 판매 조건이 악화된 상황에 현대차·기아가 토요타, 혼다 등을 방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지난달 미국 시장에서 총 15만7353대를 판매해 전년 동월 대비 13.2% 늘어난 호실적을 거뒀다. 현대차가 8만6230대로 14.4% 늘었고 기아는 7만1123대로 11.9% 증가했다. 현대차·기아의 소매 판매 기준 점유율도 11.5%(현대차 6.3%, 기아 5.2%)로 전년 동기 대비 0.7% 늘었다.
이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점으로는 차량 '가격 동결' 정책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현대차·기아는 미국의 관세 영향에도 관세 부담을 최대한 흡수하면서 차량 가격을 인상하지 않는 전략을 펼쳤다.
지난달 판매량도 호조를 보이면서 현대차·기아는 미국 시장에서 지난달까지 총 3010만7257대를 판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1986년 현대차가 미국에 진출한 이래 39년 6개월 만에 세운 기록이다. 현대차 1755만2003대, 기아 1255만5254대다.
특히 이는 일본 토요타와 혼다보다도 더 빠르게 달성한 기록으로, 토요타는 1958년, 혼다는 1970년 현지에 진출해 각각 54년 만인 2012년, 47년 만인 2017년에 누적 판매 3000만대를 넘긴 바 있다.
이런 가운데 하반기에는 현대차·기아가 미국 시장에서 토요타, 혼다와 정면승부를 본격적으로 펼칠 전망이다. 한·미의 관세협상의 최대 쟁점이었던 자동차·부품 관세가 15%로 확정되면서 기존의 한미 FTA 효과가 사라져 일본 업체들과 동등한 관세율을 적용받게 됐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기존에 2.5%의 미국 수입차 관세를 적용받았지만 한국은 한미 FTA로 무관세 혜택을 누려왔다. 그러나 이번 미국이 각국 관세협정을 맺은데 따라 일본과 한국 모두 '수입차 관세 15%'를 적용받게 됐다.
기존에도 일본 토요타가 미국 시장에서 판매량 순위를 앞서고 있었고 혼다가 뒤에서 빠르게 쫓고 있었던데 따라 현대차·기아 입장에서는 상황이 더욱 악화된 셈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미국 자동차 내수 시장에서 토요타는 133만2661대 판매로 2위를, 혼다는 73만9151대로 5위였으며 현대차·기아(제네시스 포함)는 89만3152대로 4위였다.
이에 현대차·기아의 판매조건이 악화된 점에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특히 토요타, 혼다의 경우 미국 현지에서 만들어 파는 비중이 높다는 강점까지 갖췄다. 15%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 물량이 더 많다는 것이다.
하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이 각각 43.0%, 41.9%로, 경쟁사(일본) 대비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토요타, 혼다, 닛산 등은 미국 현지 생산 비율이 50%를 이미 넘었다. 특히 혼다는 지난해 142만4000대 판매 중 114만4000대(80.3%)를 미국 공장에서 생산했다.
또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정체) 여파 및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 등이 하반기 예정돼 있어 하이브리드차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주요 쟁점이다.
전기차 보다 하이브리드차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토요타, 혼다는 올해 상반기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이 모두 성장했는데, 하이브리드차량 판매 실적이 주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양사 모두 미국 현지서 인기가 상승 중인 하이브리드차 시장에 적극 대응하면서 가격 인상 등을 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현대차ㆍ기아,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토요타ㆍ혼다와 정면 승부
이에 현대차·기아가 하반기 미국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일본 완성차 기업들과 하이브리드차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다만 토요타 등이 하이브리드차 분야에서 오래 축적해 온 노하우와 신뢰도가 있는 만큼 빠르게 앞서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긍정적인 점은 지난달 현대차·기아 모두 하이브리드차 판매가 늘었다는 점이다. 지난달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하이브리드차 모델 1만6842대와 1만1891대를 판매하면서 전년 동기 대비 36.4%, 68.9% 성장했다.
관건은 현대차·기아가 미국의 관세에 따른 부담을 흡수하면서 최대한 가격 인상 없이 하이브리드차 판매 확대와 이를 통한 미국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다.
일단 앞서 미국의 자동차 관세 25%때도 가격인상 없이 관세 충격을 자체 흡수했던 만큼 이번 15%로 낮아진 상황에서도 가격인상 없이 유연한 생산 전략 변화로 현지 점유율을 늘린다는 전략이다.
이승조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은 "시장점유율을 방어하는 선에서 손익을 최대한 유지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승준 기아 재경본부장은 "세액공제 폐지로 전기차 판매가 줄어들 전망인 점에 따라 하이브리드차와 내연기관차 판매를 강화해 상반기 5.1%인 점유율을 6%로 확대 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HMGMA(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의 생산능력을 50만대까지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36만대), 기아 조지아 공장(34만대)과 합산해 최대 120만대 생산 체제가 가능해진다. 지난해 판매량 기준으로 120만대 생산이면 현지 생산 비중을 70%까지로 끌어올리는 셈이다.
특히 당초 전기차 전용공장으로 지었던 HMGMA의 일부 생산라인을 하이브리드차 전용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새로운 개념의 하이브리드차인 'EREV(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도 내년 말까지 북미에서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하이브리드 모델 없이 가솔린과 전기차 모델로만 운영해오던 현대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도 내년에 하이브리드차 모델을 처음 투입한다.
또 관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현대차는 부품 소싱 다변화 태스크포스(TF)도 가동한다. 이를 통해 200개의 차량 부품 현지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으로, 현지에서 가격 경쟁력을 지키겠다는 목표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현대차·기아의 현지 부품 조달률은 48.6%고 토요타는 53.7%로 소폭 차이가 난다.
송선재 하나증권 연구원은 "15%로 관세가 조정된 결과, (25% 관세 대비) 4조원 이상의 비용이 감소한다"며 "현지 생산을 확대하는 등의 노력이 실행되면 최종 비용은 이보다 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