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9월 3일, 광주 브리티 갤러리
차별화된 시선으로 독특한 수묵의 경지를 탐구해 온 한국화가 허달용 작가의 개인전이 화단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지난 4일 광주 브리티갤러리(서구 대남대로)에서 오픈한 전시는 9월 3일까지 관객을 맞는다
‘예레미아의 슬픈 노래’ 라는 전시의 표제가 우선 의미심장하게 다가선다. 작가는 ‘내 눈은 눈물샘 같아서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멈추지 않는다’(예레미야애가 3:49)는 잠언에서 발상이 싹텄다고 밝혔다.
허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역사는 반복되지만 고통은 언제나 새롭다” 며 “예레미아는 무너져 가는 예루셀렘을 바라보며 울었고, 그 통곡은 시간의 심연을 지나 오늘의 우리에게도 닿아있다”고 전시 표제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오늘은 복잡한 통증으로 가득차있다. 그 속에서 나는 예술가로서의 책무를 생각했다” 며 “(이 각성은)기록으로서의 탄식,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슬픔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한 사람의 다짐이다” 고 ‘오늘의 우리’를 바라보는 자신의 속내를 밝혔다.
전시장 전체를 지배하는 톤은 조용하다. 전시된 총 43점의 작품은 대다수가 백과 흑의 경계의 구도로 발현되는 이미지로 다가선다. 그래서 전시는 전체적으로 삭제와 침묵, 부재와 지워짐의 키워드로 읽히며, 찬찬히 바라보다 보면 가슴 한편에서 기억과 애도의 느낌이 차오른다.
고개숙인 까마귀를 오브제로 삼은 작품은 그같은 키워드의 의미가 밀도 높게 형상화돼있다. 새의 몸은 먹으로 치밀하게 덮여 있으며, 그 주위에 그 어떤 구체적 배경도 없다. 배경이 삭제된 2차원의 캔버스 속에서 고개를 떨군 채 슬퍼 보이는 새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새는 울지 않고 다만 그 자리에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마치 까마귀는 슬픔의 화신이자 공동체 붕괴의 증인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불규칙하게 번진 먹의 흔적만 남기고 배경이 지워진 고요를 통해 ‘기억되지 않은 비극’의 무게를 전하고 있다.
흰 배경위에 손가락으로 지운듯한 회화적 흔적을 형상화 한 작품은 인간의 존재가 문명 속에서 마모되어가는 상징으로 다가선다. 표현이 아니라 ‘지워짐’이 강조되는 이러한 조형적 전략은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같은 회화의 구조적 전략은 사회현실‧참사‧침묵‧은폐‧망각 등을 은유하고 있다.
침묵으로 말하고, 지움으로 채우며, 부재로 존재를 증명하는 작업들은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말하는 시대에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질문으로 작동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달용 작가는 남화의 본산 진도 출신으로 전남대학교 예술대학을 졸업했다. 다수의 개인전, 그룹전, 기획전에 참여했으며 원진미술상을 수상했다.
[스트레이트뉴스 광주=박호재 기자]
